Temple of heaven in Beijing, 2024
베이징의 첫 여행지는 바로 천단 공원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는 천단의 원래 용도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입니다. 고대 중국의 전통적 신앙에 따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 외에도 땅에 제사를 지내는 지단, 태양에 제사를 지내는 일단이나 월단도 있습니다. 이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 바로 천단입니다. 천단은 오늘날의 베이징 모습의 밑그림을 그렸다 할 수 있는 명나라 영락제가 건설한 곳인데요, 사실 그 유명한 자금성도 영락제가 처음 건설한 것입니다. 자금성이나 천단공원 모두 엄청난 규모의 토목공사였을텐데, 당시 황제의 힘을 짐작하게 합니다.
천단공원은 그 거대하다는 자금성의 약 3배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공원 자체의 규모가 그렇고 주요 건축물만 빠르게 본다면 2시간 정도면 충분히 관람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천단공원을 베이징의 첫 여행지로 선택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요. 이왕이면 첫 번째 관광지는 베이징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역사유적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처음 도착해서 가장 체력이 좋을 때, 가장 힘들 것 같은 곳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생각하니 대표 유적인 자금성, 이화원, 천단 등이 물망에 올랐습니다. 다만 자금성은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서 보고 싶었기 때문에 제외했고, 이화원은 이동 거리가 너무 멀어 자연스럽게 천단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식당에서 나와 천단공원 매표소까지 걸어가는 1분 남짓한 순간에도 벌써 온 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베이징의 더위는 서울의 더위와 사뭇 다른데, 서울의 더위가 온도 자체가 높기보다 특유의 습함으로 인해 힘들게 느껴진다면, 베이징의 더위는 강렬한 햇살로 인해 상대적으로 덜 습하지만 매우 뜨겁게 느껴집니다. 서울의 더위가 오븐 형태라면 베이징의 더위는 직화 같다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5분만 걸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때문에, 남성의 경우 대부분 기능성 라운드 티에 반바지를 입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나마 그 티셔츠도 땀에 흠뻑 젖어 있구요. 한국에서 입던 대로 티셔츠 위에 다시 셔츠를 입었던 저는 5분만에 후회하기 시작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 와중에도 경복궁에 한복을 입고 온 사람들처럼 청나라 전통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꽤 볼 수 있었는데, 정말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등학생 내지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린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들이 모두 전통 복장을 차려 입고 있는 것도 제법 볼 수 있었습니다. 베이징 여행을 하며 이렇게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새삼 우리나라의 출생율이 생각나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천단공원 요금은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공원 자체만 즐기는 표는 15위안, 내부의 유적지를 모두 돌아보는 표는 34위안입니다. 참고로 내부 유적지는 월요일에는 휴장합니다. 저희는 유적지를 모두 돌아보는 표를 구매했습니다. 중국의 유명 관광지에서 입장권을 구매할 때에는 대부분 여권을 제시해야 합니다. 다시한번 중국 특유의 통제가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여권을 특별히 철저하게 검사하거나 그 과정에서 특별한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냥 기계적으로 여권 번호를 입력하고 돌려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현지인은 위챗 등을 활용해서 온라인으로 예매를 하는 것 같고, 매표소를 이용하는 사람은 대부분 외국인인 것 같았습니다. 표에는 중국에서는 일상이 된 QR코드가 인쇄되어 있어 입장 시 이 QR을 찍고 들어갑니다.
천단공원 입구를 통과하면 넓은 대로가 펼쳐집니다. 이 길을 걸어가다 보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이 유명한 천심석이 있는 원구단입니다. 천단은 공원으로서의 역할을 같이 하고 있어서, 이 길 양 옆으로는 일반적인 공원 형태의 녹지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천단공원을 대표하는 건축물이기는 하지만, 막상 보면 주춧돌만 남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여기는 황제가 올라가 하늘에 제를 지내는 곳이기 때문에 이것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는 제법 높이가 있는데요, 원형의 제단은 고대인의 '천원지방',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낳다는 생각을 반영하여 만든 것입니다. 각 계단은 가장 좋은 수인 9의 배수로 이루어져 있고, 난간도 108개, 72개, 36개로 모두 9와 관련 있는 숫자들입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 원구단의 가장 가운데 위치한 천심석입니다. 황제가 제사를 지내는 자리인데, 독특한 구조로 인하여 이 천심석에 올라가 말을 하면 작게 이야기해도 이 원구단 내에 모두 크게 들린다고 합니다. 천심석 위에 올라서서 보면 위로는 탁 트인 하늘이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시야에 걸리는 것이 없도록 되어 있는데요, 하늘의 아들인 천자가 하늘과 맞닿아 소통할 수 있도록 걸리는 것이 없게 설계한 것입니다. 따라서 제단만 있을 뿐, 벽도, 지붕도, 기둥도 모두 없는 것이죠.
하지만 이 천심석은 제대로 볼 수 조차 없었습니다. 여기에 한번 발을 딛어 보려는 수 많은 인파로 인해서, 보는 것은 고사하고 발이나 한번 올려 보려면 정말 육탄전을 감행해야 하는 수준이었는데요. 그래도 한번 발이나 올려 보려고 땀에 젖은 몸을 부딪혀 가며 가운데로 들어가려다 문득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구단은, 굳이 역사나 건축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보더라도 건축의 의도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넓게 탁 트인 공간에 거대하게 자리한 제단. 집착에 가까울 만큼 숫자 9에 의해 설계된 구조와, 당시로서는 최첨단 공학이었을 소리에 대한 울림까지 고려하여 황제와 하늘이 단 둘이 만나는 공간을 구현한 것이 바로 천단입니다. 당연히 엄숙하고, 위압적인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이죠. 천심석은 황제가 홀로 올라 하늘과 마주하는 성역입니다. 고대에는 이렇게 하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선택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죠.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찰되는 인간의 특징입니다. 서양에서는 신의 대리인인 교황이, 중국에서는 하늘의 아들인 천자가 이런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들이 누리는 권력의 근거가 되었죠.
그런데 지금은, 수많은 중국의 장삼이사가, 황제가 밟았던 이 신성하고 엄숙한 돌을 한번 밟아보고자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서로의 발을 들이밀고 있습니다. 이제 이 공간에서 더 이상 황제의 권위가 주는 엄숙함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마치 '더 이상 황제는 없다' 라는 강한 웅변으로 느껴졌습니다.
중국은 시황제 이후 이천 년이 넘는 기간동안 하늘의 아들인 천자, 황제가 통치하는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왕이 있었지만, 우리의 왕 혹은 서양의 봉건군주와 중국의 천자는 가지는 권력과 상징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천자는 서양으로 치면 교황과 군주의 권력을 모두 틀어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경쟁자조차 없었습니다. 일단 천자로서 위상을 확고히 하면, 동등한 지위를 가진 자는 자신이 인지하는 세계의 범위에서는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중국 사극을 보면, 황제에게 '천하 만물의 주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황제는 하늘의 대리인으로서 천하 만물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사람이었죠.
하지만, 그런 천자만이 오를 수 있는 고요한 제단에 지금은 중국 전국에서 몰려온,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양한 신분의 후손들이 (그들의 기준으로라면 심지어 저는 오랑캐의 후손입니다) 발을 올려놓기 위해 시장통처럼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현대 사회가 가져온 극적인 정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사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었으니까요. 중국에서 천자만이 하늘과 소통하는 것이 당연했던 것은 수 천년, 천자가 아닌 누구라도 (입장료를 내기는 해야겠지만) 이 천심석에 발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100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현대 중국이 주장하는 '모든 인민의 나라' 의 한 단면이겠죠.
(글이 길어져 두 편으로 나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