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le of heaven in Beijing,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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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두 편으로 나누었습니다)
원구단 뒤로 돌아가면 둥그런 원형의 건물이 보입니다. 이곳 천단의 건물이 다른 문화유적에 비해 독특해 보이는 이유는 모두 이러한 원형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건물은 황궁우. 제천의식을 준비하는 사당입니다. 사당답게 하늘, 바람 등 자연신의 위패와 역대 8대 황제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 내부는 관람할 수 없습니다. 평소에 황궁우에 보관된 위패들은 제사를 지낼 때 제단으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이 황궁우 구역은 이 건물보다 다른 것이 더 유명합니다. 바로 삼음석과 회음벽입니다. 회음벽은 이 황궁우 구역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인데요, 역시 소리공학적인 설계로 인해 한쪽에서 벽을 향해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벽을 타고 한바퀴 돈다고 합니다. 반대쪽에 있는 사람도 이 벽을 타고 돌아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원리는 어린 시절 한번쯤 만들어 본 실로 만든 손전화와 같다고 합니다. 역시 황제의 기원이 만백성을 모두 돌아 하늘에 전달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삼음석은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일종의 바닥돌입니다. 황궁우 앞에 깔려 있는 세 개의 돌인데, 역시 소리가 반사되도록 만들었다고 하여 가이드들이 그 위에서 설명하며 바닥을 두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날이 워낙 더운지라,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그나마 몇개 없는 전각이 만드는 그늘 아래 들어가 있었습니다. 녹지로 조성된 곳이야 오래 된 나무들이 만든 그늘이 많이 있지만, 전각이 있는 곳들은 대부분 하늘을 그대로 바라보도록 했기 때문에 햇살을 그대로 맞아야 합니다. 사실 이 황궁우 좌우 전각들도 다 의미가 있는데, 동쪽에 있는 동배전은 황제를 상징하는 북두칠성을 비롯한 태양계의 별들을, 서쪽의 서배전은 달, 비, 바람, 천둥 등 자연현상을 신격화하여 각각 모시고 있는 곳들이라고 합니다. 달이 동배전이 아닌 서배전에 들어간 것이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이 황궁우 구역을 돌아 나가면, 작은 매점이 있습니다. 날이 워낙 더운지라 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각종 아이스크림과 차, 음료 등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섭니다. 저희는 중국에 온 기념으로 아이스 티를 주문했는데, 아이스크림 다 만들고 만드는지 순서가 한참 뒤로 밀려 더위에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형 카페처럼 주문하는 곳과 음료 나오는 곳이 달라 누가 주문했는지 모르니 특별히 외국인 차별은 아닐 것이고...
이 곳에서도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나이가 약간 있어 보이는 중년인이 탄산음료를 추가 주문하기 위해 주문대 앞에 줄을 선 제 앞으로 새치기를 했습니다. 중국어도 모르고 날이 더워 드잡이하기 싫어 그냥 있었는데, 주문대에 젊은 점원이 단호하게 뭐라고 말을 하더군요. 익히 들었던 중국의 새치기를 현장에서 본 것도 흥미로웠고, 의외로 점원이 뒤로 돌려보내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아이스 티보다 한참 늦게 주문한 콜라는 바로 주었습니다.)
이 매점 옆으로는 수백년 가까이 된 측백나무 고목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황궁우를 건설하면서 심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중 유명한 나무가 구룡백입니다. 구룡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천자가 생각나는데요, 중국에서 용은 천자를 상징하고 숫자 9는 가장 상서로운, 길한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는 특유의 생김새 때문에 구룡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제 다시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천단공원 하면 떠오르는 가장 웅장한 건축물, 기년전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기년전을 만나러 가는 길은 360m 정도의 흰 대리석 다리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넓이가 넓고 길이는 짧아 그냥 지나가면 다리라고 느끼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단폐교라고 불리는 이 다리에는 세 갈래의 길이 있는데요, 보통 자금성에서 가장 가운데 길이 천자가 다니는 길이기 때문에 여기서도 천자가 다니는 길이 가운데 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제사를 모시는 천단. 따라서 천자보다 더 높은 신이 다니는 길이 바로 가운뎃 길입니다. 그래서 가운데 길을 천제가 다니는 신도, 동쪽 길을 황제가 다니는 어로라고 합니다. 기년전을 향해 가는 길은 약간 경사지게 되어 있는데요, 하늘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건축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데요. 지금도 각종 동음이의어 등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전통이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단폐교를 건너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거대한 전각이 등장합니다. 천단을 대표하는 건물인 기년전입니다. 황제가 정월마다 풍년을 기원하던 제단으로, 자세히 보면 하단은 앞에서 본 원구단과 동일하게 생겼습니다. 사실 천단의 주 목적인 하늘과의 소통은 앞서 보았던 원구단에서 하는 것이지만, 이 건축물의 웅장함 덕분에 실제로 천단공원의 상징은 이 기년전이 되었습니다.
역시 천원지방의 사상에 따라, 네모난 담장 안에 원형의 제단과 건물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황제와 관련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모두 지붕을 황색 유리기와로 올렸는데요, 이 건물은 진한 남색 기와를 올렸습니다. 가장 꼭대기에 보이는 황금 장식은 3톤의 황금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기년전을 바라보고 있으면, 황제와 신의 압도적인 권위가 느껴집니다. 사실, 대부분의 종교적 건축물은 이렇게 신의 영광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프라하 성 내부의 성 비투스 대성당은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하늘 높이 솟아올라 있어 위압감을 줍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파리의 성 샤펠 성당 또한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장엄함을 연출하죠.
천단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러한 장엄함을 구현합니다. 천단 건물은 안정적인 원형을 이루고 있고, 엄밀히 말해 건물 자체의 규모는 유럽의 여러 대성당들보다 작습니다. 사실, 유럽의 여러 대성당은 많은 인원이 들어가 예배를 보는 것이 현실적인 목적이었기 때문에 내부 규모가 필요하지만 천단의 경우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극소수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굳이 크게 지을 필요가 없었겠죠. 대신 천단은 주변에 이 기년전과 견줄 수 있는 건물이나 나무 등을 모두 없애버림으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기년전만 있도록 배치했습니다. 하늘을 거대한 여백의 배경으로 사용한 기년전은 그래서 그 크기 이상의 위압감을 선사합니다.
기년전 내부는 직접 들어가 볼 수 없고, 이렇게 밖에서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건물 밖에서 보면 여러 층으로 구성된 것 같아 보이는데, 내부에서는 그렇지 않고 천장까지 층고가 대단히 높게 되어 있습니다. 이 높은 층고 덕분에 내부에서도 아주 웅장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들어갈 수 없다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살짝 바라보기만 해도 내부의 그 화려함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데, 기둥은 총 52개로 3열에 걸쳐 원형을 그리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가장 안쪽, 사진에 나타난 4개의 가장 굵은 기둥은 모두 금박으로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4개의 기둥을 특별히 세운 이유는 사계절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니, 건축물의 세부적인 요소 하나하나 모두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참고로 뒷편 기둥은 12개로 각각 열두 달을, 세 번째 줄의 36개 기둥은 24절기에 12를 더한 숫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기년전 안에는 사계절과 열두달, 24절기가 모두 포함되어 우주의 시간이 모두 이 안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양 옆으로는 작은 전각들이 위치하고 있는데, 내부에는 천단공원에 대한 이런 저런 전시물과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아직 중국 관광지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다소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영어로 설명이 되어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습니다. 전반적인 그림이나 모형을 쭉 돌아보고 나와, 서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약 20분 정도 천천히 걸어 나오면 서문이 보입니다. 나오는 길에 보면, 황제의 권위를 상징했던 거대한 천단은 공원화되어 나들이객들의 산책장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중국은 이런 넓은 광장이나 공원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태극권, 광장무 등 사람들이 다채롭게 활동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 날은 너무 무더워 그런지 광장무를 보지는 못했지만, 가족 단위나 연인 단위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나와 벤치나 나무그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천자의 제단에서 보통 사람들의 휴식처로 바뀐 천단공원. 끝없는 하늘만큼이나 높고 깊어 보였을 황제의 권력과 권위도 시간의 흐름 앞에 모두 먼지처럼 없어졌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 장소는 제 여행 목적 중 하나였던 전문대가의 오랜 베이징 덕 레스토랑. 편의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