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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by Aug 18. 2024

베이징 덕의 원조는 이런 맛

便宜坊烤鸭店(鲜鱼口店) in Beijing, 2024

(1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bdd405509cfe455/43



편의방의 본점 격인 선어구점은 전문대가 가장 끝쪽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멀지 않은 곳에 전취덕 본점도 위치하고 있습니다. 선어구점은 편의방 호텔 지하 1층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규모가 굉장히 큰 편입니다. 물론 가장 큰 전취덕의 허핑먼점은 2,000여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5시 30분 경에 방문했더니, 자리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베이징의 레스토랑들은 대부분 '따종디엔핑' 등의 현지 어플로 예약을 해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딱 두 곳, King's Joy와 Duck de Chine만 이메일을 통해 예약을 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그냥 찾아갔습니다. 그 덕분에 아쉽게도 베이징 전통 스타일의 훠궈는 먹어보지 못했어요. 3시간을 기다리라고 하는데, 시간이 금보다 귀한 여행객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저 안쪽에 그 유명한 화로가 보입니다. 역시 문이 달려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가게 내부에는 자랑스럽게 국가 유산으로 등재된 오리구이라는 내용을 적어 놓았습니다. 메뉴판을 가져다 주었는데, 다행히 영어로도 설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베이징에서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소개한 예약이 가능했던 두 곳, 그러니까 해외 여행객의 예약을 받는 업무가 일상적인 곳에서조차 모든 직원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Too much?' 정도의 표현도 대부분 통하지 않습니다. 오리 한 마리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어, 고민 끝에 오리 한 마리와 해산물 요리 하나, 야채 볶음 하나를 주문하기로 합니다. 베이징 덕 한 마리를 주문하니, 탕이 같이 나온다고 합니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자니, 한켠에서 노릇하게 잘 구워진 베이징 덕을 잘라내고 있습니다. 베이징 덕 한 마리를 주문하면 보통 테이블 앞에 오리를 가져와서 잘라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서양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게리동 서비스라고 하여 이렇게 조리의 마지막 부분이나 한 과정을 테이블에서 완성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과거 왕의 식사를 준비할 때, 왕에게 무엇을 먹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베이징 덕도 비슷한 절차를 거치는 셈입니다. 


다만 편의방은 카트를 테이블 앞까지 가져오기에는 공간이 다소 좁은 편이라, 한켠에 별도 테이블을 마련해 놓고 그 쪽에서 계속해서 오리를 잘라냅니다. 대신 자신의 오리를 손질할 차례가 되면, 그 손님에게 지금 손질하고 있는 것이 당신의 오리이니 원하면 가까이 가서 보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줍니다. (다른 손님의 오리도 가서 봐도 됩니다.)



역시, 가장 먼저 채소 볶음 요리가 나왔습니다. 오크라와 은행, 그리고 백합을 볶았습니다. 백합을 볶았다고 하면 백합조개를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서 말하는 백합은 식물입니다. 중국에서는 단 맛이 나는 란저우 백합을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먹어 보니, 약간 토란이나 감자의 식감 같으면서도 양파와 같은 단 맛이 납니다. 생김새도 양파와 비슷하구요. 넷플릭스의 '풍미 원산지' 에서도 이 란저우 백합을 다루고 있죠. 오크라와 은행, 백합을 중식 특유의 '센 불에 빠르게' 볶아 냈는데, 대부분의 경우 중국에서 야채볶음은 실패하지 않는 맛입니다. 특히, 맛을 내기 위해 닭 육수를 첨가하여 볶아내는 경우도 많은데 이 오크라 볶음 또한 닭 육수를 사용한 것 같았습니다. 여러모로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도 잘 맞을 것 같은 맛입니다.



다음 요리는 새우와 배추, 그리고 소고기를 볶아 냈습니다. 배추를 넉넉히 넣었는데, 아마도 배추에서 나온 수분이 자작하게 국물처럼 나왔습니다. 애초부터 센 불에 강하게 볶기보다는 이런 형태를 유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미있는 것이, 국물을 먹으라고 만든 것은 아니지 싶은데 고기와 새우, 배추 국물이니 의외로 시원하니 제법 맛이 괜찮습니다. 이 국물 맛이 결국 배추에 배어든 셈이니 전체적인 요리의 맛은 배추의 달달한 맛과 새우의 감칠맛 등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배춧국의 농도보다는 당연히 (국물을 떠 먹으라고 만든 것이 아니니) 진한 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샤브샤브를 먹을 때 배추를 넣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여러모로 제가 좋아하는 맛입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베이징 덕이 준비됩니다. 편의방의 오리는 불에 직접 닿지 않았기 때문에, 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껍질의 바삭한 느낌은 덜한 대신 살이 부드럽고 촉촉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 때문에 좀 더 느끼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리를 손질할 때 보니, 과연 껍질의 두께가 상당합니다. 그리고 껍질이 바삭하다고만 표현하기는 어렵겠다 싶은 것이, 껍질의 겉면 아랫쪽으로 두툼한 지방층이 보입니다. 이를테면 겉 표면을 손으로 살살 긁어 보면 분명 바삭할 것 같지만, 그 아랫부분에 지방층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입 안에 넣고 씹으면 입 안에서 오리의 지방이 그야말로 터져나온다고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평소 느끼한 것을 잘 먹지 않는 우리 집 대장님은 한입 먹자마자 얼른 먹어보라고 재촉합니다. 



베이징 덕 4종 세트. 오리탕과 전병, 소스와 야채, 그리고 고기.

입 안에서 처음 느껴지는 식감은 역시 바삭보다는 차라리 약간의 아삭에 가깝습니다. 큰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고, 입 안에서는 그야말로 오리 맛의 폭풍이 몰아친다고 표현할 법한 맛입니다. 오리의 겉면에 발라 구운 엿당의 달달한 맛과, 오리기름의 풍부한 지방의 맛, 껍질 아래 살에서 느껴지는 단백질의 맛 (사실 살에도 기름이 충분히 올라 있습니다)까지. 그리고 구운 고기 특유의 향도 빠질 수 없는데, 같이 발라 구운 양념의 향 또한 같이 어우러져 식욕을 자극합니다. 복잡하게 음미하여야 하는 은근한 맛이 아닌,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강렬한 맛이라고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살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예전에는 베이징 덕이 껍질만 먹는 요리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베이징에 가서 직접 먹어본 분들의 경험담을 통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베이징 덕의 원조라는 편의방의 오리도, 이렇게 살을 같이 손질해서 먹도록 준비해 줄 뿐 아니라, 껍질이 붙어있지 않은 살 부분도 아랫쪽에 같이 준비해 줍니다. 다만 퍽퍽한 부분이나 다리, 날개 등은 없는 것으로 볼 때, 먹기에 적합하지 않은 부분은 탕 등으로 끓여 내고, 먹기 좋은 부분만 잘라서 내어 주는 것은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 먹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보니 베이징 덕은 고기는 먹지 않고 껍질만 먹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베이징에서 제대로 된 첫 번째 식사를, 대표 음식이라 할 수 있는 베이징 덕으로 할 수 있어서 더욱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정말 입맛에 맞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그 즐거움이 더욱 컸습니다. 저는 여행의 본질적인 즐거움 중 하나가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그 사람이 보고, 듣고, 느낀 경험들의 집합체라고 한다면, 여행은 평소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겪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인생을 보다 다양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날 때면, 가급적 우리나라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음식을 먹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베이징 덕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음식이고, 먹어보기도 했지만 본고장에서 먹는 맛은 더욱 각별했습니다. 앞서 다른 글에서 적었던 중국식 '작장면', 그들 발음으로도 우리와 거의 비슷한 '짜장미엔' 또한 본고장의 맛이 평소에 우리나라에서 먹던 맛과 달랐던 점은 베이징 덕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맛은 우리나라에서 먹는 짜장면이 좀 더 입맛에 맞는 편이었는데요. 경험의 확장과 다양한 경험이라는 즐거움은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맛에 대한 만족감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이징 덕의 경우 맛의 만족감까지 충분히 채울 수 있어 여러모로 대단히 만족스러운 식사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이 맛을 위해 다시 이 곳을 찾을 의향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 보고는 합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셋을 주는 조건이기도 하죠. 어떻게 보면 제 나름의 별을 매겨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오리 요리를 위해, 다시 베이징을 찾을 의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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