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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by Sep 01. 2024

탕후루와 함께 즐기는 베이징 전통 기예(2)

Lao she tea house in Beijing, 2024

(1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bdd405509cfe455/44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다도에 대한 간단한 공연이었습니다. 라오서 차관의 공연은 모두 중국어로 진행됩니다. 대신 무대 양 쪽에 작은 스크린을 띄워 영어로 장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합니다. 다만 모든 대사를 영어로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라서, 중국어를 못한다면 아무래도 공연 자체를 보는 것에 조금 더 의의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두 번째 공연은 중국 전통 악기 연주였습니다. 악기가 연주되는 와중에도 점원들이 테이블 사이사이를 부단하게 돌아다니며 찻물을 더 가져다 줍니다. 연주의 수준을 제가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전통적인 중국 선율을 좋아하는 편이라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다음 공연은 '디아볼로' 라고 번역하였는데, 아마 전통 기예 중 작은 항아리 등을 가지고 줄 묘기를 하거나 저글링을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현대적인 요요로 바꾸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는데, 어른이 보기에도 멋진 기예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서커스 등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서커스에 동반된 특유의 기괴한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전통 기예는 기괴한 느낌보다는 사람이 열심히 연습해서 하는 느낌이라 거부감이 들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순서는 중국의 전통 극 중 하나인 인형, '목우'를 사용한 극이었습니다. 인형의 움직임이 상상 이상으로 정교하여, 인형과 인형 간 손을 맞잡는다거나, 인형의 긴 소매를 마치 사람이 조작하듯 원하는 대로 조종하는 모습은 아주 감탄스러웠습니다. 인형극이라고 해서 아동용 극을 상영한 것은 아닙니다. '양산백전' 내지 '양산백과 축영대'로 알려진 전통 극인데,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기도 하는 비극입니다. 다만 이 짧은 시간에 전체 극을 공연하지는 않고, 양산백과 축영대가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누는 짧은 단락을 시연합니다.


그리고 다음은 정확히 뭐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는데, 공연자 한 명이 나와서 입으로 여러 가지 소리를 흉내냅니다. 예전 우리나라 코미디 프로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던 묘기인데요, 특히 전투기 소리나 발걸음 소리 등의 흉내가 재미있었습니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 등도 잘 흉내내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이 공연자가 흉내내는 것이 다름아닌 중국의 열병식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받들어 총!' 하면 전체 군인들이 구령을 붙이는데, 이것이 방송에서는 마이크로 잡은 것이 아니니까 약간 뭉개지며 울리는 듯한 소리가 됩니다. 


이 살짝 뭉개진 소리를 따라하는 식입니다. 전투기 또한 열병식과 연관이 있죠. 군인들이 발걸음을 딱딱 맞춰 걷는 소리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런 공연을 했다면 상당히 의아했을 것 같은데, 중국에서는 이러한 공연이 특별히 의아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라오서 차관이 중국을 홍보하는 역할을 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사진들로 인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지금 오늘 공연의 관객은 가족 단위 내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음에도 말이죠. 물론, 정치적인 이야기를 배제하고 기예 그 자체로 감상한다면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다음 순서는 드디어 경극입니다. 수호지의 한 단락인 호삼랑전을 연기하는데요, 호삼랑이 양산박의 여러 호걸들을 격파하는 장면입니다. 사실 전통적인 형태의 경극은 모두 남자 배우들이 연기했습니다. 다만 현대에 와서는, 특히 문화대혁명 이후에는 여성 역할은 여자 배우들이 담당하는 경우가 좀 더 보편화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영화 패왕별희를 보신 분이라면 쉽게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장국영이 연기한 '청데이'가 바로 여자 역을 전문으로 하는 배우죠. 화장을 진하게 하고 경극 특유의 높고 카랑카랑한 발성을 하기 때문에 정확히 알아보기는 약간 어려웠으나, 호삼랑 역할을 담당한 배우 또한 남자 배우로 보였습니다. 


극의 내용은 사실 단순한데, 호삼랑이 호가장에 쳐들어온 양산박의 여러 호걸들을 차례로 격파하다가, 결국 양산박 내에서 손꼽히는 영웅인 임충에게 사로잡히고, 양산박의 두령인 송강의 주선으로 자신이 승리를 거두었던 왕영과 결혼하는 내용입니다. 임충은 양산박 두령 중 가장 강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런 임충이 나서기 전까지 다른 두령들을 모두 격파하는 호삼랑의 뛰어난 무예를 창술을 비롯한 다양한 동작과 높은 발성, 마치 꽹과리 소리 같은 타악기의 긴장감까지 더해져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만들어 냅니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한바탕 시끌시끌하고 신나는 경극이 지나간 다음에는, 차와 다기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펼칩니다. 라오서 차관의 퍼포먼스 팀은 별도 대회에서 수상을 할 정도로 기예가 뛰어나다고 하는데, 이러한 대회가 따로 있을 만큼 중국에서는 전통 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주둥이가 아주 긴 주전자를 마치 창처럼 이리저리 휘두르며 물을 따르는 것은 그야말로 '묘기'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전통 음악에 맞추어 마치 춤처럼 다기와 다구를 다루는데요, 앞서 보여준 디아볼로 묘기와 같은 사람이 시연하는데, 도구는 다르나 동작에서 일부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다만 디아볼로는 조명을 번쩍이며 클럽 음악 같은 느낌의 배경음악과 함께 한다면, 이번 공연은 좀 더 빠르게 편곡한 중국 전통 음악과 함께합니다.


다음 순서는 만담. 중국에서는 아직도 만담이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는데요, 옛날 우리나라의 개그콘서트와 같은 느낌입니다. 세 명이 간단한 스토리에 맞추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외국인 관광객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단순히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슬랩스틱 형식의 코미디를 가미하여 지루하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마술. 마술은 중간에 관객을 참여시켜 더욱 재미나게 흘러갑니다. 처음에는 손과 작은 소품을 이용해서 하는 간단한 마술을 선보이다가, 중간에는 관객 두 명을 올라오라고 하여 마술에 참여시키는데요. 이 날은 앞서 언급했던 단체 관람객의 인솔자들이 참여했습니다. 무대가 무대다보니 긴장감을 극적으로 끌어올리지는 못하지만, 재미있는 마술이었습니다. 특히 선정된 관객들과 손이 묶인 보조 출연자가 장막 뒤로 들어가 서로 위치를 바꾸는 마술이 하이라이트였는데, 어떻게 했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이제 두 개의 공연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공연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짧은 공연은 10분 남짓 정도이기 때문에 전체 공연 시간은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습니다. 다양한 공연을 즐겨볼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고, 특정 공연을 깊이 있게 보고 싶다면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연 자체의 컨셉이 다양한 중국, 특히 북경의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싶습니다. 다음 순서는 거대한 항아리를 가지고 하는 묘기입니다. 매우 큰 도자기 항아리를 머리 위에 이고 갖은 동작을 해냅니다. 사람 머리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커다란 항아리를 이마에 얹고 던졌다 다시 받는 것은 정말 고도의 기술입니다. 라오서 차관의 소개에 따르면, 이 묘기는 베이징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있는 기예로 큰 항아리는 무려 20근, 12kg가까이 나간다고 합니다. 국가 정상들이 방문했을 때도 빠지지 않고 공연되는 기예라고 하는데,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진진합니다.


마지막 공연은 중국 공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변검입니다. 변검은 익히 알려져 있듯, 얼굴에 쓴 가면을 바꿔 가며 하는 공연을 말합니다. 변검 자체가 얼굴이 바뀐다는 의미이구요. 사천 지방의 기예로 알려져 있으나, 워낙 유명하다 보니 라오서 차관의 공연에서도 하이라이트를 맡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얼굴에 여러 겹의 얇은 비단으로 된 가면을 겹쳐 쓰고 있다가, 음악에 맞춰 순식간에 가면을 하나씩 벗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다른 변검 공연에서는 맨 얼굴을 드러냈던 변검술사가 다시 가면을 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느다란 줄 등으로 가면을 벗는다고 하는데, 그 동작이 빠르고 화려하여 보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변검 공연을 두 번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의외로 중요한 포인트는 의외성이었습니다. 음악에 맞추어 동작을 하기 때문에, 음악이 고조되는 부분에서 긴 소매를 펄럭이며 부채를 얼굴에 가져가면 누구라도 이 대목에서 가면이 바뀌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가면을 잘 바꾸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짝 김이 샐 때쯤,  의외의 타이밍에 재빨리 가면을 바꾸면 관객의 환호는 더욱 커집니다. 한때 중국 정부에서 엄격히 그 기술을 관리한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 기예를 전승받는 것 자체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변검까지 종료되면 공연은 마무리가 됩니다.



공연을 제법 길게 묘사하기는 했습니다만, 사실 각각의 공연이 길지 않거나, 시간상 긴 공연은 진행 템포가 빨라 지겨울 틈 없이 진행됩니다. 중간중간 현대 중국의 체제가 만들어 낸 부분이 일부 보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중국 전통 문화를 수박 겉핥기로나마 감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기예로서의 난이도가 높은 인형극이나, 우리나라에서 접하기 어려운 경극의 대목 등도 접할 수 있어 한번쯤 볼 만 했던 공연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공연장에서 차와 간식을 먹으며, 어린 아이들도 함께 관람할 수 있는 문화가 제법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이들이 오페라나 뮤지컬 등의 공연에서도 이렇게 편안하게 관람하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공연을 볼 때 옆 사람과 대화는 물론 부스럭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경향이 있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을 보기는 너무 부담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아이들은 아이들을 위한 공연만 보게 됩니다. 


공연 종류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공연관람 에티켓을 완화해야 한다 이런 의미로 확장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종류의 공연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해 보며 하루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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