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o she tea house in Beijing, 2024
근대 중국의 소설가 '라오서'는 대표작인 소설 '낙타 상자'나 희곡 '찻집'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가난한 베이징 인력거꾼의 비참한 생활을 그려낸 '낙타 상자'는 라오서와 교류가 있던 대지의 작가 펄 벅이 번역하여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지요. '찻집'은 중국 현대 희곡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는 이러한 성과를 통해 현대 중국에서 최초의 신지식인으로 인정받을 만큼 생전에 이미 널리 인정받는 작가였습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들의 습격을 받아 조리돌림을 당하는 등 모욕을 받고, 분을 이기지 못해 그 다음날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라오서'는 다시 복권되어, 베이징에는 그의 고택을 개조한 라오서 기념관이 운영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관광객이 이 라오서의 이름을 들었다면, 아마도 '라오서 차관' 때문일 것입니다. 라오서 차관은 사실 생전의 라오서와 연관이 있는 공간은 아닙니다. 라오서 차관은 1988년에 개업했으니, 문화대혁명 시기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공간이지요. 이 라오서 차관은 베이징의 중심가라 할 수 있는 전문대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전문대가의 북쪽 끝이자, 진정한 베이징의 중심지인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으로 이어지는 정양문에서 화평문 쪽으로 걸어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지요.
이 라오서 차관은 베이징의 전통 다관, 그러니까 찻집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대규모의 문화 시설입니다. 건물 3개 층이 모두 이 차관인데, 1층은 일종의 홍보관, 2층은 차를 판매하는 부스와 전통 찻집, 각종 전시품 등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전통 찻집은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전통적인 고급 찻집 내지 정원의 풍경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3층은 오늘 제가 방문하고자 한 공연장입니다. 중국 정부가 신경 써서 관리하는 전문대가 일대에 이 정도 규모의 전통 공연장을 갖춘 것을 보니 정부와 연관이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1층 안으로 들어서자, 간략한 전통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두 명의 악사가 전통 악기를 연주 중이었는데요, 전통 현악기와 함께 물그릇으로 타악기를 만들어 연주를 합니다. 다양한 크기의 사발에 물을 각각 다르게 담은 다음 이 사발을 채로 울리는데요, 사발의 크기와 물의 양에 따라 음의 높낮이가 달라지기 때문에 마치 실로폰과 같은 소리가 납니다.
옆에는 이 라오서 차관에 방문한 외국인 중 가장 유명한 외국인이지 싶은 아버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아마도)차관 대표의 동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약간 정부에서 밀어주는 곳인가 싶은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요, 나중에 홈페이지를 찾아 보니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여러 가지로 정부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베이징의 전통적인 다관은 여섯 가지 형태를 보였다고 하는데요, 그 중에는 공연을 보며 차를 즐기는 형태의 다관도 있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읽은 책에 따르면, 전통적인 형태의 중국 음식점은 다관과 주루로 크게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양쪽 모두 음식을 팔았지만 다관의 경우 차와 어울리는 간식들을 주로 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딤섬이죠. 반면 주루는 술과 함께 먹는 음식들, 그러니까 좀 더 일반적인 요리의 형태로 음식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요즘에도 개화기 시절의 중국을 다룬 드라마를 보면, 이렇게 차를 마시며 경극 공연을 관람하는 다관들이 종종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라오서 차관에서는 요일과 시간에 따라 다양한 공연을 올리고 있는데요,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공연은 저녁 시간대에 하는 일종의 전통 기예 모음입니다. 여러 가지 중국 전통 기예들을 짤막하게 보여주는 것인데, 다양한 중국 기예를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광객이 가장 선호할 만 합니다.
공연장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중국의 차 문화에 대해 느낀 감상을 잠시 소개해 볼까 합니다. 중국인들이 차를 즐긴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차를 즐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영국의 차 문화 역시 중국을 통해 전래된 것이라고 하죠. 중국의 차 문화는 전한 시기, 그러니까 기원전부터 이미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그 역사가 깊고 오래 되었습니다. 이미 당나라, 송나라 시기를 거치며 차는 귀족의 사치품에서 기호품으로 대중화 되었습니다. 물론 현대 중국에서도 값비싼 명차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만큼, 모든 차가 저렴해졌다기보다는 일반인들까지 즐길 수 있도록 차 문화가 확산되고 대중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차를 즐기는 문화는 중국의 물이 좋지 않기 때문에 형성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을 끓여 먹어야 안전했기 때문에, 끓는 물에 차를 우려내는 문화도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는 것이죠. 다만 이는 정확한 근거는 없다고 합니다. 다만 현재까지도 아무리 더워도 가급적 찬 것을 먹지 않으려는 중국인들의 식습관으로 미루어 볼 때, 어느정도 이러한 중국인들의 기호가 차 문화의 확산에 기여하는 바는 있었을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차가운 커피를 주문하면 얼음이 두세 조각 정도 들어가 있는 커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처럼 컵의 절반 이상을 얼음으로 가득 채워 나오는 커피는 별도로 주문을 해야만 먹을 수 있구요. 한여름에도 아주 찬 음료를 먹으면 배탈이 난다고 하여 그렇게 즐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번 여행 도중 한 가지 더 흥미로웠던 내용이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압구정에도 들어와 유명해진 중국의 밀크티 전문점 'Hey tea'에 들러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대표 메뉴라고 하는 치즈 폼이 올라간 밀크티의 가격은 대략 20위안 정도로 대부분의 음료 가격이 20위안을 크게 넘지 않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4천 원에서 5천 원 정도입니다. 가장 저렴한 곳은 300ml 정도 되는 생수 하나에 2위안을 받았으니 절대적으로 값이 싼 것은 아닙니다만, 커피와 비교하면 굉장히 저렴한 편입니다. 가장 기본인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경우, 스타벅스에서는 한 잔에 약 40위안 정도로 우리나라보다 비쌌고,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36위안 정도로 밀크티보다 커피의 가격이 훨씬 비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거의 생필품 수준으로 저렴한 곳에서는 2,000원 정도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정확히 반대가 아닌가 싶은데요. 중국 정부는 생필품의 물가에는 대단히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생필품의 물가가 불안해지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치품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는데, 이는 사회 불안과는 크게 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저가 매장조차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가격이 한 잔에 5,000원을 넘는다면 사회적인 이슈가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니까요. 하지만 밀크티는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기호에 따라 마시는 음료에 가깝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겠죠. 중국에서는 이 위치를 아직도 차나 차와 연관된 음료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오서 차관으로 다시 돌아와서, 1층의 티켓 박스에서 표를 구매했습니다. 공연 티켓은 우리나라와 같이 무대에서 가까운 쪽 부터 가격을 매겨 뒤로 갈수록 표가 저렴해집니다. 가장 앞쪽은 580위안, 그러니까 한 장에 거의 10만원이 훌쩍 넘는 고가입니다. 앞쪽에는 좀 더 좋은 차와 별도의 다과가 준비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저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280위안의 좌석을 구매했습니다. 표 가격에 차는 포함되어 있지만, 별도의 다과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공연장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려고 보니, 이 라오서 차관을 방문한 유명인들의 사진이 쭉 걸려 있습니다. 새삼 중국에서 국가가 가지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우리나라라면 유명 정치인의 사진도 걸겠지만,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사진을 더 많이 걸어놓을 것 같은데, 정부와 연관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정부 행사들 위주로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유명 연예인의 사진도 있는데, 제가 알아볼 수 있는 연예인인 성룡의 사진도 있었습니다.
2층에는 경극과 관련된 간단한 전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라오서 차관에서 경극 공연도 하고 있기 때문에 제법 어울리는 구성입니다. 경극은 패왕별희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중국 특유의 오페라입니다. '경극' 이라는 의미 자체가 북경의 극이라는 의미이고, 그래서 영어로는 Peking Opera라고 쓸 만큼 베이징의 고유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 문화의 정수 중 하나라고 할 만큼 높게 평가되고 있으며, 유네스코에서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만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다만 문화대혁명 시기 많은 공격을 받으며 중국 내부에서 경극을 즐기는 전통이 쇠퇴하여, 지금은 이렇게 정부에서 후원하는 등 지원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처해 있기도 합니다. 영화 패왕별희를 보면, 문화대혁명 시기에 경극배우인 두 주인공을 포함하여 경극단 자체가 고초를 겪는 모습이 나옵니다. 마오쩌둥도 개인적으로 경극을 즐길 만큼 경극은 중국에서 일반적인 문화요소 중 하나였는데,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경극이 탄압당하고 변질되어 그 명맥을 잇는 정도로 쇠퇴한 것인데요. 크게 보면 문화대혁명 또한 정부에서 주도한 셈인지라 정부에서 탄압하여 변질되고 쇠퇴한 문화 요소를, 다시 전통 문화의 정수라 하여 국가에서 라오서 차관 같은 시설을 통해 보존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 합니다.
3층으로 올라가서도 라오서 차관의 홍보(?)는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과 총리도 이 라오서 차관에 방문하여 전통 공연을 즐긴 적이 있는 모양입니다. 이외에도 서독의 총리였던 헬무트 콜, 키신저 등의 사진도 눈에 띕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정부에서 전통 문화의 보존을 위해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드러내 놓고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중국 정부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베이징에 방문한 세계의 귀빈들에게 이렇게 자신들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또 이러한 홍보 자체를 다시 일반 대중들에게 홍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3층 공연장으로 올라가면, 의외로 공연장은 시끌벅적하고 편안한 분위기입니다. 정사각형의 테이블이 여러 개 마련되어 있고, 무대쪽 변을 제외한 나머지 세 변에 두 개씩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한 테이블에 여섯 명씩 앉아서 공연을 보는 셈입니다. 자리가 꽤 많은데도 불구하고, 공연이 시작될 즈음에는 거의 모든 자리가 다 찹니다. 게다가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요. (물론 중국은 국내여행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어, '현지인 관광객' 도 아주 많다고 합니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티켓 가격을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리에는 전통적인 형태의 다완이 있고, 차가 한잔씩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다완 안에는 잎차가 들어 있고, 다 마시면 테이블마다 마련된 뜨거운 물을 부어 계속 마시면 됩니다. 물은 계속 가져다 줍니다. 잎차가 들어 있어 차 위로 잎이 뜨는데, 위의 뚜껑으로 살살 밀어 가며 마시면 됩니다. 중국 사극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항상 한쪽 손으로 뚜껑을 살짝 들고 찻잎을 밀어가며 차를 마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극장의 모습을 충실하게 재현하기 위함인지, 한쪽에서는 간단한 주전부리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 단체로 보이는 관람객들이 들어와서, 뒷쪽 좌석을 모두 채웠습니다. 다소 흥미로웠던 것은, 단체로 티셔츠를 맞춰 입은 학생 단체는 모두 뒤로 갔고, 가장 좋은 자리, 그러니까 무대 바로 앞 한가운데 테이블에는 그들의 지도자 내지 인솔자로 보이는 어른들이 앉았습니다. 아마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 만약 교사들만 가장 좋은 자리로 가고 학생들은 가장 나쁜 자리에 앉는다면 난리가 날텐데 아직 중국은 그렇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주전부리에도 흥미가 생겨, 탕후루를 하나 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탕후루가 얼마 전까지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었는데요. 지금은 인기가 시들해져 탕후루 가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폐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옛날 대왕 카스테라, 찜닭, 탕수육 같이 인기에 편승해 갑자기 늘어났다 없어졌던 수 많은 음식점들이 생각납니다. 원래 중국의 탕후루는 이 산사나무 열매로 만듭니다. 살짝 어석한 느낌의 식감을 가지고 있는데, 과일 치고는 별로 단 맛이 강하지 않고 신 맛은 제법 강한 편입니다. 신 맛이 강해 위장병이 있는 사람은 이 열매를 그냥 먹기보다는 조리해서 먹어야 한다고 할 정도인데요, 사실 그렇기 때문에 탕후루를 만들어 먹기 좋은 과일이라고 합니다. 애초에 단 맛이 강한 과일에 설탕물을 입히면 너무 단 맛이 강해지기 때문이죠. 한국에서 먹는 탕후루에 비해 설탕물을 듬뿍 끼얹어 놓았습니다. 사실 이 산사나무 탕후루와 함께 포도 탕후루도 주었는데, 포도 탕후루는 정말 단 맛이 강한 와중에 과즙이 터져 나오는 것이 맛있으면서도,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제 입에는 달아도 너무 달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반면 산사나무 열매로 만든 탕후루는 분명 달기는 굉장히 달았는데, 한편으로는 과육 자체에는 단 맛이 없어 왜 중국인들이 이 열매를 맛있게 먹기 위해 이런 방법을 썼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냥 먹기에는 시기만 하고 맛이 별로 없을 것 같았거든요. 이 탕후루 말고도 중국인들이 좋아한다는 해바라기씨 등의 간식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먹고 마시며 공연을 보는 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공연을 볼 때 조용히 하고 보는 것이 예의인데 여기서는 다소간의 소음 등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차와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보는 것이 문화인데, 음식을 먹으며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문화를 반영하듯, 상당 수의 관객이 어린 아이를 동반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공연 도중 소리를 지르거나 멋진 장면에 다소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아무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공연 내용은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