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 wei lou in Hangzhou, 2025
'동파육' 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중국 요리지만, 거의 한식의 반열에 오른 '탕수육' 에 비하면 이 명성은 비교적 최근에 얻게 된 것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유명 중식 셰프인 이연복 셰프의 시그니처 요리로 각종 매체에 언급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최근 흑백요리사의 임태훈 셰프도 이 동파육을 시그니처 메뉴로 내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동파육은 중국의 국민 음식이라 할 수 있는 홍소육의 고급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돼지고기를 단짠 양념에 찌고 졸이는 방식으로 조리하기 때문에 중국 사람뿐 아니라 한국 사람 입맛에도 잘 맞는 요리입니다. 이 동파육으로 유명한 식당이 바로 항저우 서호 인근에 위치한 루외루입니다. 택시에서도 '루외루' 라고만 말해도 데려다 주는 명소이기도 하죠.
서호 북쪽에 위치한 루외루는 건물 하나를 다 쓰고 있는 큰 식당입니다. 옆 건물도 루외루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요, 이 식당은 역사도 제법 오래되어, 청나라 도광제 시기인 1848년, 그러니까 조선 헌종 시절 창업한 식당입니다. 그 역사만큼이나 이 식당을 찾은 사람들도 쟁쟁한데요, 장제스나 저우언라이 같은 정치가, 루쉰 같은 문학가도 이 식당을 찾았을 만큼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루외루의 가장 널리 알려진 요리가 '동파육' 입니다. 그래서 루외루가 동파육의 원조라고 알려져 있기도 한데요. 제목에도 그렇게 적기는 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파육의 원조는 아닙니다. 왜냐 하면, 루외루도 오래된 식당이지만 동파육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소동파는 그보다 몇백년 전인 북송 시대 사람이기 때문이죠.
식당 내부는 말 그대로 호화롭습니다. 1층은 거의 전 공간이 이렇게 정원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한켠에는 루외루 상표를 단 각종 레토르트 식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유명 식당들과 비슷한 모양새입니다.
식사를 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계단 전체를 멋진 목각 부조로 장식해 놓았는데, 소동파가 동파육을 나눠 주는 모습을 장면마다 조각해 놓았습니다. 단순히 음식점에서 장식용으로 가져다 두었다기에는 아주 정교하고 규모가 큰 조각입니다.
아마 가운데 위엄 있게 선 사람이 소동파겠죠? 최고의 시인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겼지만, 서호의 '소제', 그러니까 제방을 쌓을 당시의 소동파는 치수공사를 담당하는 관리였습니다. 흔히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동파육은 이 소동파가 항저우 서호의 제방을 쌓으면서, 혹은 항저우에서 백성들을 먹이고자 동파육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이 식당의 부조는 제방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에게 동파육을 나눠주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장면쯤이 아닐까 싶은데요. 사실 소동파가 돼지고기를 즐겼다는 것은 기록에도 나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미식가로서 맛있는 요리를 구상하고 또 즐겼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소동파가 직접 동파육과 관련된 기록을 남긴 것은 없습니다. 동파육이 처음 등장하는 기록은 명나라 시기라고 하는데요, 명나라 시기에도 이미 불멸의 명성을 얻어 숭상받던 소동파를 기리기 위해 명나라 관료들이 이 요리를 '동파육' 으로 부른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명나라 시절에는 존재했던 요리이니 청나라 시절 개업한 루외루의 동파육이 원조라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식당에서 직접적으로 동파육의 원조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 것 같았고,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동파육으로 유명한 식당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불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현대적인 레시피로 동파육을 재구성하여 판매하기 시작한 최초의 식당이라면 또 나름대로 '원조' 라는 의미가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다만, 동파육의 원조 여부를 떠나 루외루는 항저우 요리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유서 깊은 식당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소 호화로운 1층과 계단을 지나 2층 식사 장소로 들어오면, 생각보다 고풍스럽고 또 부담스럽지는 않은 공간이 나타납니다. 서호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서 식사하려면 아주 오래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식당의 가격대는 중국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가족 단위 손님들도 제법 있고 또 정말 부담스러울 정도의 인테리어와 호화로운 음식을 내오는 식당들에 비하면 접근이 불가능하다 싶은 수준의 가격을 가진 식당은 아닙니다. 서울 시내에 있는 살짝 비싼 중식당 수준이라고 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R코드 활용이 익숙한 중국답게, 자리에 앉아 QR코드로 음식을 주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외국인 관광객이라 그런지 와서 설명도 해 주고, 주문하는 음식의 양도 한번 봐 줍니다. 이 식당에서는 용정차를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은 가격에 주문할 수 있었는데요, 특이하게도 그냥 커피잔 같은 잔에 찻잎을 띄워서 가지고 옵니다. 다 마시면 그 위에 다시 뜨거운 물을 부어 주는 식으로 식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 차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요리는 '룽징샤런' 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루외루는 동파육 말고도 다른 항저우, 그리고 서호 요리들로 유명한데요. 이 새우 요리는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요리입니다. 다른 지역의 항저우 요리 식당에 가도 이 룽징샤런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요리가 특별해진 것은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용정차' 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민물새우를 볶을 때 용정찻잎을 사용함으로써, 맑은 차향이 은은하게 어우러지도록 한 것이 특징입니다. 용정차는 기본적으로 발효차들에 비해 그 맛이 맑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데요, 이 맛을 요리에까지 접목시킨 것이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청나라 건륭제가 이 용정차를 마음에 들어하자 현지 관리가 새우볶음에까지 용정차를 사용한 것이 시초라고 하는데, 크게 특색이 없어 보이는 요리지만 황제가 마음에 들어하여 이후 궁중 요리에까지 편입되었다고 합니다.
맛은 애피타이저로 먹기에 손색이 없는 요리입니다. 볶아 냈지만 다시 식혔는지 요리는 전체적으로 차갑고, 용정차는 맛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은은한 향 내지는 살짝 씹히는 찻잎 정도로 보조적인 역할을 합니다. 떫은 맛은 없습니다. 그리고 차게 식힌 볶은 새우는 탱글탱글한 식감이 아주 잘 살아 있구요. 윗쪽에 간장과 식초를 섞었지 싶은 소스와 함께 먹으면 달고 짜고 새콤한 맛과 식감, 은근한 향이 아주 조화롭게 느껴집니다. 양도 제법 되는 편입니다. 맛의 강도는 전반적으로 강하지 않고 은은하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국요리의 강렬한 맛은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먹기에 편안합니다.
다음 요리는 서호초어. 초어는 잉어 비슷한 물고기라고 보면 되는데, 사실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맞는 요리는 아닙니다. 민물고기 특유의 흙내가 있는 편이라서요. 다만 서호 하면 가장 유명한 요리 중 하나라 반마리만 주문해 보았습니다. 반마리도 제법 양이 되는데요, 초어 자체가 풀을 뜯어 먹는 습성을 가진 터라 향이 없을 수 없는 재료라고 합니다. 게다가 가시가 상당히 많아 먹기에 불편하다는 점도 있습니다.
이 요리는 사실 특유의 향이 강한 생선을 강렬한 향신료를 사용해서 조리했다는 것이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유명한 마라향의 향신료가 아니라, 생강과 새콤달콤한 소스를 이용해서 잡았습니다. 이쪽 지방 요리의 특징이라고도 합니다. 새콤한 소스가 생선의 향을 잘 잡아내다 보니, 그 특유의 향도 일종의 독특한 맛으로 느껴져 나름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이 조리법은 그대로 두고, 생선을 좀 더 고급 어종으로 바꾸어 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요리 또한 남송 시절부터 전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어부 형제가 탐관오리에게 시달리다 형이 먼저 죽고, 동생도 관아에 끌려가기 전, 집에서 마지막으로 초어를 이렇게 요리해서 먹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관리가 이 요리를 먹고 감동해 동생을 풀어주었다는 것인데요, 한편으로는 가난한 어부도 먹을 수 있을 만큼 흔한 재료를 잘 조리한 요리라는 의미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대망의 동파육. 동파육은 이렇게 작은 그릇에 한 덩어리씩 나옵니다. 양념 없는 빵도 하나 같이 나오는데요, 이렇게 하면 우리 돈으로 6천원 정도 합니다. 우리나라 동파육에 비하면 꽤 저렴한 편입니다. 두툼한 지방층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졸여질 때 넣은 소스가 이 음식의 맛을 좌우할텐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굴소스와 유사한 맛입니다.
진한 양념을 흠뻑 머금은 것 같은 색을 보면 굉장히 맛이 강할 것 같은데, 상당히 부드러운 맛입니다. 특히나 비계가 저렇게 큼직한데도 불구하고 기름지다는 느낌보다는 비계가 입 안에서 살살 풀어지는 것 같은 부드러움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비계의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함은 살리고, 기름지고 부담스러운 맛과 풍미는 덜어낸 것 같은 맛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 유명 중식당에서 동파육을 먹은 경험이 있는데, 고기 자체의 부드러움은 우리나라 동파육도 뒤지지 않지만, 비계를 이렇게 많이 썼음에도 기름지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고기 쪽은 비계의 맛과 부드러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맛이 조금 덜하고 부드러움도 떨어지는 편입니다.
동파육 위에 있는 것이 '송 부인의 수프' 라고 불리는 음식입니다. 역시 남송 시절 항저우에 살았던 송씨 부인이라는 사람의 탕에서 유래했다는 음식입니다. 송 고종이 이 요리를 먹고 감탄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역시 서호에서 구하기 쉬운 잉어 등의 생선의 살을 잘게 발라 넣고 걸쭉하게 끓인 탕입니다. 중국 후추로 맛의 포인트를 주었습니다. 이는 아까 서호초어에서 느껴지던 향이 없고 살짝 짭짤하기도 하고 톡 쏘는 매운맛도 약간 있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 입에도 잘 맞을 만한 맛입니다.
식사용으로 주문한 장어 국수. 사실 장어는 아니고 드렁허리라는, 우리 말로는 보통 논장어라고 부르는 것과 민물새우를 가지고 만든 국수입니다. 1인분이라기에는 너무 많고 2인이 식사 목적으로 먹거나, 아니면 4인쯤이 이렇게 요리와 곁들여 먹으면 될 것 같은 양입니다. 전형적인 깊고 진한 중식 국물 맛입니다. 면도 제가 좋아하는 동글동글하고 적당히 가느다란 면입니다. 드렁허리는 장어처럼 힘이 좋아 보양식 재료로도 많이 쓴다고 하는데, 가시가 없어 그냥 국수랑 같이 집어 먹으면 특별한 맛이나 향이 나지는 않습니다. 의외로 생김새와 달리 생물학적으로는 가물치나 붕어와 더 가깝다고 합니다.
주문한 요리들 한상 차림. 가만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튀김 요리는 없고, 대부분 조림 내지는 볶음 요리입니다. 항저우 지역, 그리고 절강성 요리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하는데요. 신선한 민물 재료들을 담백하게 사용하는 한편, 양념은 짭짜름하게 쓴다고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 이 전형에 들어맞는 것 같았습니다. 가장 세련된 요리라고 느낀 것은 새우였고, 동파육은 비계의 맛과 양념이 정말 좋았습니다.
엄청나게 독창적인, 창의적인 요리를 하는 식당이 아니기도 하고, 그보다는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과 전통이 더욱 강조되는 요리를 하는 식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외루의 요리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은 새우가 입 안에 들어왔을 때 기대하지 않던 차갑고 탱글한 식감과 날 듯 말듯한 용정의 향. 그리고 새콤한 소스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느낌. 그리고 또 말 그대로 젓가락으로도 먹을 수 있는 동파육 비계의 고소하면서도 단짠한, 부드러운 식감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분명히 입맛에 잘 맞는다고 하기는 어려운 서호초어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데요, 여행지에서의 식사라면 이렇게 생경한 음식도 한 번쯤 먹어보면 좋은 경험이, 그리고 경험의 확장이 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