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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 전 사찰의 오늘날

항저우 영은사&비래봉

by Kirby

항저우는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는데요, 서호와 함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영은사에도 들러 보기로 했습니다. 영은사는 무려 326년에 창건된, 그러니까 거의 2천년이 되어 가는 사찰입니다. 물론 지금의 건물이나 유적이 2천년 된 것은 아니지만요. 그래도 송나라 시기의 유적들부터 볼 수 있으니, 천 년은 족히 넘은 고찰입니다.


영은사는 동진 시기에 인도 승려인 '혜리' 가 건립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 중국 불교 10대 고찰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고, 선종불교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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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사에 가기 위해 일찍 나와 택시를 탔는데요, 영은사에는 차가 바로 올라갈 수 없고 환경오염 때문인지 지정된 버스만 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산이라고는 해도 큰 도로가 잘 나 있고, 상점가 등도 형성되어 있는 대형 관광지입니다. 친절한 택시기사는 버스 정류장에 내려 주면서 직원에게 영은사 가는 외국인이니 안내해 달라고 인수인계까지 해 줍니다. 항저우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친절한 것 같다는 인상을 다시 한번 받았습니다.



영은사 가는 버스는 2위안. 사람이 차면 출발하는데, 사람이 워낙 많아 금방 출발합니다. 사찰 입구는 그야말로 관광단지. 고즈넉한 산사는 아닙니다. 대형 상점가 중 한 곳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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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해 보이는 가게를 하나 골랐는데, 우연히도 상하이에서 잘 나간다는 셩젠바오 체인인 소양생전이었습니다. 셩젠바오는 우리나라에는 덜 알려졌지만 상하이에서는 샤오롱빠오 못지않게 유명한 음식인데요, 만두의 아래를 지져서 바삭한 식감을 살린 것이 특징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현지에서는 셩젠바오의 인기가 더 좋다고..)



셩젠바오 여섯 개와 닭고기 국물 소면 하나, 야채볶음 하나로 맛있게 아침 식사를 해결했습니다. 확실히 중국의 서민 음식 물가는 굉장히 낮은 편입니다. 닭고기 육수로 국물을 낸 소면 하나는 4천 원도 되지 않거든요. 사치품이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비싸지만, 일반 서민의 생필품은 굉장히 저렴한데, 이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물가 통제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배를 채우고 둘러보니 심지어 스타벅스 매장까지 보이는데, 날이 쌀쌀하여 어깨에 두를 수 있는 숄도 하나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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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사 내부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요, 우리나라 사찰과 가장 다른 부분은 자연 환경이나 유적을 그대로 보존한다기보다 현대적으로 꾸미고 즐길 거리를 최대한 마련한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이 절이 현재도 관광지뿐 아닌 사찰로도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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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영은사 옆 야트막한 봉우리인 비래봉의 다양한 석불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보호장치 없이 드러난 그대로 관람할 수 있는 비래봉 석불들은 송나라 시기부터 조성된 아주 오래된 유적들입니다. 밖에 드러나 있음에도 보존 상태가 좋아 보입니다. 비래봉 정상까지 올랐음에도 가장 유명하다는 포대화상은 찾지 못했지만, 다양한 석불들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영은사의 석불군은 상당히 독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중국 북방에서는 이러한 대규모로 조성된 석불군이 종종 발견되나 남부에서는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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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래봉도 인도에서 날아온 산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독특하게도 인근의 산들과 달리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정말 외부에서 날아온 것처럼 독특한 인상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산에만 이렇게 많은 석불들을 조각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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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자체도 상당히 큰 편입니다. 중국 사찰들을 몇 번 다니다 보니 재미있는 점을 알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 사찰과 달리 중국 사찰은 불상 뒤로도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통로와 작은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상 뒤로도 멋진 부조를 장식해 두곤 합니다. 부처님만 모신 것은 아니고, 이 절 출신인 것 같은 유명한 승려를 기념하는 공간도 있고, 한켠에서는 미술품도 전시하고 있었는데 제가 방문했을 때는 우리나라의 동국대와 협업해서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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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인상적이었던 부분. 많은 승려들이 머무는 사찰이라 그런지, 생활감이 묻어나는 공간들도 존재합니다. 유적지로서 시간이 멈춰 있는 공간이 아니라,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인상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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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백운관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백운관 또한 구처기가 창건한 유서 깊은 도관임에도, 현대의 도사들이 생활하기 위해 많은 부분이 현대화 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급식실까지 있었으니까요. 영은사 또한 천 년은 족히 넘은 사찰이지만, 오늘날에도 사찰로서, 그리고 승려들의 생활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현대의 덧칠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과거의 모습을 변화시켰다고만 하기에는 이 공간의 당초 취지를 오히려 더 잘 지켜나가는 부분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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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1,700년 전의 인도 승려는 이 절이 문화재로서 과거 자신이 만든 모습이 유지되기를 바랄까요, 아니면 과거 자신이 이 절을 창건할 때의 목적이 달성되기를 바랄까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절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사찰을 보러 오는 것일까요, 현대화 된 사찰을 보러 오는 것일까요. 이래저래 어려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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