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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누리던 호사를 누려보자.

by Kirby

항저우의 양대 자랑이라는 서호와 용정차.

둘을 모두 즐기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서호에 위치한 다관에서 용정차를 마시는 것이죠. 이 호사를 누려보고자 다음 일정을 미뤄 가며 발걸음을 다시 서호로 옮겼습니다.


서호는 아주 넓은데요, 저희는 '서호천지' 라고 불리는 공간으로 이동했습니다. 서호의 동쪽 일원에 홍콩 자본이 조성했다고 하는데, 현대적인 공원처럼 조성한 공간입니다. 근처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좋아하는 '와이포지아' 레스토랑도 있고, 천지 내에는 스타벅스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다관이 없는 것 같아 살짝 헤메다가 들어간 곳이 이 곳, 소은입니다. 저희가 방문한 시점에는 막 오픈했는지 인테리어가 약간 덜 된 것 같은 곳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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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번체자로 쓰여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풍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서겠지요.

소품들도 고풍스럽게 조성했지만, 새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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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의 명물이라는 용정차와, 차와 함께 즐기는 다과들입니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상당히 높은 가격이었습니다. 루외루에서 마셨던 용정차는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았던 걸 보면, 같은 용정차여도 등급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용정차 중에도 특정 산지를 더욱 고급으로 쳐 주는데요, 서호 바로 인근의 용정차, 인근 사봉산의 용정차, 그리고 매가오 지역의 용정차가 유명합니다. 그리고 용정차를 수확한 시기도 영향을 미치는데, 청명절 전에 수확한 명전용정을 고급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사봉명전용정' 이라고 하면, 사봉산에서 청명절 전에 수확한 용정차라는 의미죠. 이 용정차는 건륭제가 즐기며 황제의 차인 '어차'로 지정했다고 해서 유명해졌습니다. 건륭제도 이 서호를 유람한 후 용정차를 마시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고 좋아했다고 전해지니, 황제가 누렸던 호사를 한번 체험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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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과는 흔히 볼 수 있는 딸기 외에는 약간 생소한 것들이었는데요, 사탕수수와 피스타치오, 피칸, 그리고 감 같은 것을 말린 것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다과의 양도 많고, 새콤한 과일과 달콤한 사탕수수, 고소한 견과류 등이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어 한 끼 식사처럼 배부르고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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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물을 붓고 조금만 기다리면 차가 우러나는데, 계속 우리면 떫은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금방 잔에 따라냅니다. 찻잎이 크기가 일정하고 제법 통통해 보이는 것이 품질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사실 차를 잘 볼 줄은 모릅니다만, 우리가 인스턴트로 먹는 현미녹차와는 그 맛이 확연히 다르기는 합니다.


용정차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가볍고 산뜻한 맛과 향입니다. 색도 연하고 투명한 녹색빛이 납니다. 떫은 맛은 없고, 약간의 감칠맛이 느껴지면서도 고소한 맛이 납니다. 전반적으로 가볍지만 옅지 않고, 산뜻하지만 가득 차 있는 맛입니다. 향 또한 청량하여 왜 황제가 정신이 맑아진다고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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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 잔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이렇게 특정 부분을 아주 얇게 만들어, 마치 별자리 같은 모습입니다. 이렇게 생긴 잔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전통적인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빛이 투과되는 모습이 아주 멋져 보였습니다.


여담으로, 중국의 오래 된 식당이나 다관에 가면 오래 되어 이가 빠진 그릇을 그대로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는데요. 중국에서는 그렇게 오래 된 그릇이 식당의 전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귀한 것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따라서 귀한 손님에게 그런 그릇을 내는 것이 실례가 아니라고 해요.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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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있게 차를 마시며, 서서히 해가 넘어가는 시간까지 망연히 서호를 바라보는 이 시간이야말로 황제가 누리던 호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입에는 산뜻한 감칠맛의 차를 머금고, 향을 느끼며 그 속에서 아직 오지 않은 봄의 흔적을 먼저 찾아봅니다. 또 눈으로는 아름다운 서호의 풍경을 보며 아직 쌀쌀한 겨울의 정취를 느껴봅니다.


용정차를 어차로 지정하였던 건륭제는 여섯 번 서호를 방문했다고 하는데, 대부분 2월~4월 사이에 방문했다고 하니 제가 방문한 시기보다는 좀 더 늦은 시기입니다. 건륭제가 특히 사랑했다는 봄날 꽃 피는 서호의 풍경도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서호를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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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에게 항저우는 중국의 첫 손 꼽히는 관광지는 아닙니다만, 중국 사람들에게는 수천년 가까이 주요 관광지로 그 명성을 누려 왔습니다. 멀리 베이징에서 황제가 직접 유람을 올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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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의 시인도, 200여년 전 황제도, 오늘날의 현대인도 이 풍경을 보고 감탄하고 또 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평온하고 잔잔한 자연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항저우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는 우전의 수향 마을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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