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미셸 바스키아
바스키아는 8년 동안 2500여 작품을 남기며 생애에 비하면 그 짧은 시간 동안 최고의 인기로 최고가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의 작품을 좋아할까요?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정말 대지 위에 굳은 물감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의 작품이 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인지 감상해 봅니다. 먼저 그의 생애부터 간략히 보시죠.
장 미셸 바스키아 :
"내 작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마치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어떻게 연주하냐 묻는 것과 같아요."
바스키아는 사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납니다. 4살 때 이미 읽고 쓰는 법을 터득했고, 11살 때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습니다. 예술적 재능이 어릴 적부터 뛰어났던 조숙한 아이였죠. 8살 때 부모님은 이혼을 하고, 13살 되던 해부터 그의 어머니는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여생을 보냅니다. 15살이 되던 해, 그는 가출로 방황을 시작하고, 17살 때, 고등학교를 중퇴하는데 그 이유로 아버지는 아들을 집에서 내쫓습니다. 바스키아는 브루클린에서 친구와 함께 지냈고, 그러는 동안 티셔츠와 손수 만든 우표로 자급자족하게 되죠. 그는 이렇게 거리로 나서게 됩니다.
장 미셸 바스키아 :
"대부분의 어린 영웅들은 그들의 머리가 잘렸다."
바스키아는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림에 감동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예술가가 되리란 소망을 갖습니다. 길거리를 방황하면서도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였나 봅니다. 그러다가 그의 친구 '베니'의 소개로 화랑 전기공사를 돕게 되면서 예술계와 조금 더 가까워집니다.
어느 날, 바스키아는 한 파티에서 그의 그림을 본 미술 평론가 르네(Rene Ricard)에 조력으로 "뉴욕 뉴 웨이브 전시회"에 참가되고, 이를 계기로 그의 작품은 많은 이들로부터 호평을 받습니다. 그러다 화랑 상인 "비숍벨거"와 전속 계약을 맺게 되면서 앤디 워홀을 만나게 되죠.
그로부터 그의 유명세는 가도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럴듯한 작업실도 갖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인정 속에서 예전보다 더 확고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었죠. 바스키아는 앤디 워홀, 마이로 등 거물들과 동시에 잡지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화가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인기가 높아질수록 바스키아의 마음 한구석은 쓸쓸해집니다. 점점 멀어지는 옛 친구들, 성공을 대가로 한 애인과의 이별, 조력자였던 르네와의 결별. 그는 더욱 쓸쓸해져만 갔습니다.
장 미셸 바스키아 :
"난 스타가 되고 싶어요. 갤러리의 마스코트가 아니라. "
바스키아에게는 그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해 주는 워홀이 있었습니다. 워홀은 바스키아에게 정신적인 스승이자 아버지였죠. 그러나 언론은 바스키아와 워홀의 관계를 왜곡하며 소문을 만들어냈고, 그들의 공동기획 전시는 실패하게 됩니다. 그 결과 둘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데요. 그러다 1987년 2월, 유일하게 의지했던 그가 심장발작으로 바스키아의 곁을 떠납니다. 바스키아는 상실감에서 해어 나오지 못했고 약물과 슬픔 속에서 거리를 방황하다 결국 생을 마칩니다. 1988년, 그의 나이 27세였습니다.
바스키아의 작품에서 카피라이터 "ⓒ" 표시와 왕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그의 왕관은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찬사임과 동시에 작품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었습니다. 그가 존경을 표하는 인물들은 모두 흑인이었습니다. 바스키아는 그 당시 주류 예술계에 처음 등장한 흑인이었습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불평등한 사회분적 위기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흑인 영웅들과 함께 바스키아 자신에게 표하는 존경이었고 권위였습니다.
장 미셸 바스키아 :
"나는 흑인 아티스트가 아닙니다. 그냥 아티스트에요."
바스키아는 8살 때 큰 사고를 당합니다. 입원 당시 그의 어머니는 바스키아가 심심하지 않도록 책을 가져다줬는데 그 책은 해부학 책이었습니다. 이렇게 맺어진 해부학과의 인연은 그의 작품세계에 있어 아주 중요한 소재로 사용됩니다. 뼈와 장기들은 그의 그 어떤 것을 원시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음이 정말 괴롭거나 답답하면 가슴을 갈라서 다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죠. 뼈들에 휘감겨 있는 형형색색의 혈관들과 형체들을 보면 보이지 않았던 바스키아의 내면 속 형용할 수 없는 답답함과 갈등, 사색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저, "예술가를 꿈꿨고, 어렸을 때 해부학 책을 보게 됐고, 그래서 해골을 많이 그리게 되었다. " 그게 아니라, 바스키아는 남들은 볼 수 없는 자신을 그린 겁니다. 자신의 골육을 타고 휘몰아치는 온갖 감정들을요.
그가 그림에 사용한 단어들은 모두 그를 둘러싸고 있는 시대적 상황과 일상들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논제들을 그라피티처럼 가감 없이 자유롭게 휘갈겨 옮겼습니다. 사상의 발현, 발언의 자유. 바스키아는 무의식적으로 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는 그의 말풍선 속 생각꾸러미를 펼쳐 보고 있는 겁니다. 한 사람의 머릿속 생각들이 그림이 되었습니다. 어디서나 자유롭고 당당하고 싶었던 한 젊은 "이".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앤디 워홀에게 바스키아는 다가가 자신이 직접 그린 엽서를 사 달라 청합니다.
앤디 워홀 : "그림은 좋지만 손이 덜 간 그림 같은데."
바스키아 : "당신 그림도 그렇잖아요".
그의 그림은 묘합니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발랄한 색감에,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표정은 난폭합니다. 천사 같으면서도 악마 같고 악마 같으면서도 무언가를 수호하고 있는 미신 같은 모양. 모든 것이 뒤섞여 있습니다. 바스키아의 인생처럼요.
부모님의 이혼, 정신병원을 전전하시는 어머니, 자신을 내몰아치는 아버지, 예술에 대한 꿈, 올라가지 못하는 현실, 성공에 대한 갈망, 모멸적인 사회적 불평등, 그럼에도 성공하고 싶은 욕망.
바스키아의 그림 속에는 바스키아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대면하는 냉정과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는 열정 사이에서 부대끼는 그의 혼재된 욕구가 정신없이 튀는 스파크처럼 눈앞에서 휘몰아칩니다.
장 미셸 바스키아 :
당신의 작품 속에도 분노가 있나요?
"물론이죠."
당신이 분노하고 있는 건 뭐죠?
"기억나지 않아요."
어린 나이에 마주한 시련, 가정의 불화와 사회의 냉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열정을 놓치지 않았고, 대가 앞에서도 자신의 작품을 당당하게 내보였던, 쓸쓸한 80년대 청춘. 그의 그림에는 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