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훈 작가
고영훈 작가는 극사실주의 화가입니다. 그의 초상도 정말 실재와 똑같죠? 그의 그림은 뭔가 신비스러운 고상한 느낌을 가지고 있어 정말 멋집니다. 책과 사물들이 고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요. 그의 작품은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환상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극사실주의"라고하면 보통 실재와 '그저 똑같은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보니 사진 찍으면 될걸 왜 굳이 공들여 머카락 한올까지 그리고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또 하나의 현실은 그저 모사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해보며 제 맘대로 감상해 봅니다.
얇은 종이 위에 무거운 돌이 떠 있습니다. 책도 많으면 무거운 거 아시죠? 그림을 보면 수없이 쌓여있거나 두껍게 묶여있는 종이가 돌멩이보다도 더 무거워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돌은 공중에 미묘하게 떠있죠. 가벼운 돌과 무거운 종이. 돌이 무겁고 종이는 가벼워야 하는데 벌써부터 뭔가 이상합니다.
돌과 종이는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 아니게 되면서 그림자라는 빛의 물리학적 배경과 함께 환상적으로 느껴집니다. 마치 중력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처럼, 다른 세계를 보게 됩니다.
종위에 알 수 없는 사물들이 올려져 있습니다. 돌도 있고, 새도 있고, 스푼도 있네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나 혹은 그로부터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적습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기만 했던 사물은 인간의 연상을 통해 종이 위에 글로 변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짜 존재하는 것일까? 거짓으로 적힌 문자가 아니라면 본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단지 외형이 바뀌었을 뿐이죠. 그림 속에 사물과 종이는 같은 본질로 다른 형태를 취합니다. 사물과 문자 사이에서 외면과 내면을 넘나드는 차원의 영역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돌과 종이가 있습니다. 이 종이에는 돌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고 생각해 보죠. 돌이 실존을 의미한다면 글은 그 실존의 잔상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돌은 실재 존재하는 물리적 차원을 상징한다면 종이에 쓴 텍스트는 물리적 한계를 벗어난 영적 차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죠.
실존하는 현상이나 의식 그 어떤 것이든 기록으로 남겨 책으로 엮는 순간부터 "책"이 됩니다. 그 책은 비로소 무한한 시간을 얻게 되죠. 그 책이 언제 만들어졌든 망가지지 않는 한 천년 후 또는 만년 후 사람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림 속에 돌과 사물들은 종이보다 가볍습니다. 그것들은 그렇게 글로 가벼워집니다. 돌이 가지고 있던 시간과 사연은 그렇게 물리적 차원에서 영적 차원으로 전환됩니다.
물체와 종이 사이에 떠있는 공간을 메우는 그림자는 왠지 모르게 신비스러워 보입니다. 마치 물리적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데요. 작가의 그림 속에 있는 종이나 사물들은 물리학적 본질을 역변하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지만 단 한 가지 아닌 것이 있습니다. 바로 빛입니다.
빛만큼은 작가의 세계에서도 그 물리학적 본질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떠 있는 것은 떠있게, 가라앉은 것은 가라앉아 있게 외형의 본형은 잃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 주고 있죠. 인간은 인간의 의식으로 물질을 다른 형태로 바꿀 수 있어도 빛을 다른 형태로 바꾸지는 못합니다. 백, 검, 무지갯빛 그 이외의 색은 상상할 수도 없으니까요. 형광, 금색, 은색 같은 별색은 그저 질감의 차이일 뿐, 세상 모든 빛은 RGB에서 나옵니다.
카메라가 있음에도 인간의 손끝으로 모사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진은 실존하는 물리적 입자들을 기계를 통해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출력합니다. 하지만 극사실적 묘사는 화가의 눈을 통해 그려지죠. 기계는 있는 그대로 모든 데이터를 출력하지만 사람은 사람의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을 묘사합니다. "인식한다." 바로 여기서 출력과 묘사의 의미가 달라닙니다.
피사체로부터 느껴지는 영감에 따라 어떤 것은 강조되고 어떤 것은 생략됩니다. 물감 입자들의 사실적 조합은 실재와는 다른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내게 되죠. 어떤 부분은 오히려 치밀해져서 인위적인 계조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기계와 인간의 차이, 바로 감정이라는 변수로 인해 실제(實際)로 피사체의 또 다른 실재(實在)를 보여줍니다. 사실보다 더욱 치밀하게 집중하는 인간의 변수가 현실로 또 다른 현실을 환상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환상적 세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실제 (實際) : 사실의 경우나 형편, 거짓이나 상상이 아닌 현실.
실재 (實在) : 실제로 존재함. 사물의 본질적 존재.
고영훈 작가 :
사람들의 마음과 작가의 마음이 같이 가는,
결극 그림이라는 것은 자아와 그 시대의 정신을 그대로 방영한 것이다.
작가의 그림에는 사물과 문자, 그리고 빛이 있습니다. 각각의 특성들이 내외적으로 혼합되면서 차원을 넘나드는 서술적 묘사를 상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문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자는 그 어떤 특별한 기술이 없더라도 시간을 초월하게 해 주죠. 한 사람의 의지로 남겨진 문자는 여러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현실을 이루는 물질
차원을 초월하는 문자
변하지 않는 불변의 빛
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