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첫날밤
꼬불꼬불한 도로를 택시 기사는 능숙하게 달렸다. 어딘지 상처 많아 보이는 우중충한 건물에 어지럽게 흩어진 다채로운 그라피티는 이곳이 유럽임을 알리고 있었다.
"다 왔어. 여기야" 현수는 지갑에서 택시비를 꺼내며 차 창 밖을 보던 지훈의 옆구리를 찔렀다. 띄엄띄엄 서 있는 가로등 탓일까. 오래된 주택가의 분위기는 어둡고 착 가라앉아 있었다.
현수가 구한 집은 3층에 있었다. 둘은 끙끙 대며 이민가방을 들고 301호까지 끌고 올라갔다. 바닥이 타일이어서 더 찬기운이 돌았지만 어쨌든 둘만의 신혼집이었다. 평수로 따지면 18평쯤에 방 2개에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주방 출입구엔 미닫이문이 달려 있어 꽤 그럴싸했다. 현수는 혼자 이곳에서 두 달을 살았다.
"이 집 구하느라 힘들었겠다" 지훈은 허리춤에 있던, 여권이 들어 있는 힙색을 풀며 현수를 바라봤다. 현수는 별다른 반응 없이 거실 소파 옆 협탁을 가리켰다.
손바닥 만한 초콜릿과 비싸 보이진 않는 샴페인이 있었다. '두 사람의 새 출발을 축하합니다'라는 핑크색 카드까지 읽은 지훈은 현수에게 설명을 해달라고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 온 뒤로 알게 된 한국인 부부야. 우리가 결혼하고 바로 여기에서 사는 걸로 알아"
초콜릿과 샴페인은 그러니까 결혼 선물, 두 달간 떨어져 지낸 '유사' 신혼부부의 재회를 축하하는 환영의 인사인 셈이다.
지훈은 현수가 줄기차게 요구한 혼인신고를 끝까지 보류하고 이곳에 온 게 걸렸다. 현수가 그 한국인 부부에게 자신을 새 신부라고 설명하며 바르셀로나 한인들과 친해지려 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닿자, 씁쓸하기까지 했다.
"안방 구경 좀 해볼까" 짐짓 태연한 척한 지훈은 집 안에서 가장 커 보이는 방의 문을 열었다. 나무 프레임의 벙커침대가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매트리스, 그 아래엔 책상이었다. 이케아에서 구입해 직접 조립을 한 것이라고 했다. 기둥과 난간을 연결하는 것 자체가 고됐을 텐데 뭐든 직접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현수는 이를 악물고 했을 것이다.
이민가방을 풀 힘도 없던 둘은 초콜릿을 허겁지겁 먹고 침대에 올랐다. 조립을 야무지게 한 덕분인지 삐걱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창문 틈으로 들어온 몇 줄기 달빛이 두 사람의 익숙한 첫날밤을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