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 서머싯 몸의 명작 <달과 6펜스>를 읽다
오랫만에 빠르게 일독한 것 같다. 다른 책을 통해 몇 번 주목받았던 <달과 6펜스>. 어쩌다 두 번의 격리 기간동안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쭉 읽어버렸다. 정말로 오랫만에 책 하나를 순식간에 해치운 느낌이다.
이 책을 왜 골랐을까 하는 물음은 책을 읽는 내내 머리를 맴돌았다. 그림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지금도 하고 있고, 폴 고갱이라는 거장의 삶을 형상화한 책이라는 일차적 호기심도 발동한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친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오는,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모순에 찬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추구하는 '이상'의 실체도 과연 주인공의 모습과 닮았는지에 대하여 끊임없는 의구심이 드는 아이러니를 경험했으니 말이다.
가정을 버리고 사랑을 버리고 친구를 버리고, 오직 예술의 혼에 이끌려 세속적인 삶과 작별을 고하고, 급기야는 타히티 섬에서 인간의 원시적 삶을 선택하는 것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예술이라는 것의 명분이 모든 것을 대체한다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철저한 일반인의 시각에서 불가능하다면 과연 이 책이 읽혀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면, 옳던 그르던 간에 속된 말로 긍정젹 표현의 '자기주도적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의 나레이터 역시, 찰스 스트릭랜드의 발자취를 쫓으면서 그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그의 삶의 모습을 전해들으면서, 처음에 가졌던 거부감이 동경과 환희로 바뀌고 급기야 마지막 모습과 최고의 역작을 본 닥터 쿠트의 말을 빌어 그의 삶을 칭송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는 사실 자기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원시적인 삶에서는 인정받을 가치가 있을지는 몰라도 세상과 교류하는 이 사회에서는 개인을 위해서만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속의 일례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만의 삶을 고집한다는 것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희생이 뒷받침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반대편 사람으로서 '6펜스'를 가진 속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기도 하다. 찰스 스트릭랜드의 버려진 첫 번째 아내가 그랬고, 더크 스트로브와 그의 아내의 비극이 그랬으며, 마지막으로는 타히티에서 원주민 아내가 그런것 처럼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세상이 복잡하면 할수록, 개인의 삶이 사회에 예속되면 예속될 수록, 개인의 가치관에 바탕을 둔 주체적 삶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인정 받지 못하는 일탈적 행위로 치부해 버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적어도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인정할 수는 있어도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세계 명작으로 인정받으며 주인공에 대한 찬반논쟁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서로간의 가치관은 다를지라도 사회가 설정해 놓은 구조 속에서도 우리의 몸 속에는 자유에 대한 욕망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비록 인정하지는 못할지라도 원시적 인간의 삶이 우리의 그것에 작은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 자체는 인정하지 못하면서도, 그의 삶을 궁금해 하고 그의 죽음에 입술을 굳게 다물며 '달'로 대표되는 인간의 이상향에 매료되고, 흡사 몸은 '6펜스'라는 '물질'을 향해 돌아섰으면서도 시선은 인간의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의 '달'을 향해 있는 모습이 아닐런지... 저자의 애처로운 시선처럼...
작가의 의도를 떠나 탐미적 예술가의 삶을 인정하느냐 안하느냐는 넓게 봐서는 이 책이 던지는 근본적 질문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이 서로 배치되는 삶이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낯설게 다가오고 어떠한 형태를 띠던 간에 우리는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몸 깊숙한 곳에 찰스 스트릭랜드가 추구했던 것과는 다른 형태로 욕망의 자유가 자라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의 자유스런 삶을 위하여! 그리고 지금의 물리적 구속에서도 영혼의 자유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