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만연의 사회를 보며 김현경의 <사람,장소,환대>를 기억하다
인류학이라는 다소 생소하고 어려운 책을 잡은 것은 최근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에 대한 물음표가 갑자기 커졌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인간으로 성립(?)되고 인정받은 이후의 학문이라면, '인류학'은 인간의 정의, 조건, 발전과정, 사회와의 교섭과 관계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인문학 이전의 학문으로 요약될 수 있기 때문에, 인문학이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발전시키는 최고의 학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인간의 근원에 대한 질문은 어렵지만 꼭 한 번 해봐야 하는 뜨거운 감자와도 같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의 조건' 이라는 말을 검색해 보면, 지극히 낮은 곳에서 차별받고 평범하고 보통의 사회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외국인 노동자, 여성, 무기수, 다문화 가족과 같은,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그저 '인류애'를 발휘하여 평등한 인간으로 대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화된 내용이며 생물학적 근원이 같은 '사람'으로서 다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동지애적인 호소와 그런 주장을 담보할 수 있는 법적, 정치적 책무도 포함된다.
하지만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는 지금까지 말해왔던 인간의 조건을 법적, 정치적, 윤리적 울타리를 벗어나 '공간적' 개념과 인간 상호간의 '인정요인의 범주'로 확대하며 논의 관점을 다르게 하여 전개되는데,범죄자들에 대한 격리와 노예의 속박, 여성의 사회적 참여 제한, 흑인과 백인을 지리적으로 구분하는 반투스탄은 인간으로서 인정 요인 중 하나를 '공간'으로 보게 만드는 가장 간단한 예시들이다. 인간의 역사는 잘 되었든 잘못 되었든 간에 '공간에 대한 해방', 그리고 인간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거스이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에 대한 투쟁이 과거 '성별'의 차이, '피부'의 차이, '범죄' 구성의 차이, '출신'의 차이와 같이 이분법적인 요인이었던 반면, 최근 보여주는 인간으로서 인정하는 문제는 다소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음을 주목한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마르크스가 처음부터 예견했던 것처럼 '돈'의 소유 여부, '지식'의 소유 여부, '네트워크'의 소유여 부와 같은 추상적인,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수가 독점 가능한 요인의 소유 여부로 인하여 알게 모르게 차별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을 인간으로서 '환대'하지 않고 차별하며, 계층과 계급을 두며 거리를 두고자 한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는 물론이지만 그 효용성만을 추종하는 신흥국에서 쉽게 나타나며 최근의 혐오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이중잣대는 같은 맥락이다) 유용성 즉 나에게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가 관건이 되며,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는 절대적인 환대보다는 차별, 상대적인 비교와 조건이 사회 전반을 장악하게 만든다. 이런 면은 분명 세계화의 부작용이고 배움의 전당으로서 만들어진 학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같은 인간이 만들어낸 상부구조들이 인간을 차별화 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현대에서의 인간 가치의 문제는 결국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고 인간을 계급화 시키는 세계화의 이면이며 단순한 선언적 평등이 아닌 사회적 공공적 가치의 결여가 가장 근원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람, 장소, 환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환대'를 받아야 일정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그 울타리 내에서 사람은 인간으로서 인정을 받는다. 그 연결고리 어느 하나가 누군가에 의해서 조작되고 위조된다면 우리의 사회는 소수가 좌우하고 있는 허상 속 평등 사회가 되어 버릴 위험을 내포한다. 그 위험은 사회를 타락시키고 돌연변이를 생산해 내며 소수만을 위한 차별화된 사회의 전초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노예, 군인, 사형수, 외국인, 가면, 명예와 불명예, 배제와 낙인, 신분사회, 모욕, 굴욕, 가부장제 사회, 혐오, 성소수자, 난민, 혼혈 등은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조건에 대한 가장 쉬운 단어들로, 현재의 우리가 지난 과거 수많이 자행해 왔던 비인간적인 역사들로부터 아직 멀리 벗어나 있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고찰을 역사적, 법적, 정치적 접근을 넘어서, 공간과 철학적 개념으로 접근한 책. 칸트, 아렌트, 뒤르켐, 베카리아등의 철학자들의 난해한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다소 버겁지만, 절대조건으로서의 인간과 사회적 공공성과 책임을 근간으로 한 인간의 조건을 바탕으로 책을 읽는다면 어렵지 않은 책. 최근에 이슈가 된 난민문제, 정치의 계절에 다시 떠오르는 지역갈등, 노동자, 농민, 그리고 다문화 가족 문제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면 김현경의 책은 정말 읽어 볼 만 하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조건은 없다. 과거와 현재의 인간의 조건이 다르게 적용되어 왔듯이, 평등 사회에 가려진 또 하나의 차별과 특혜를 우리 스스로 버리지 않는다면 새롭게 만들어지는 인간의 조건에 따라 결국 우리의 미래 역시 혐오가 난무한 갈등 사회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