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툭튀 된 페미논쟁을 보며, 록산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다시 보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뜨겁다. 가장 먼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올림픽도 그렇고,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정치권에서도 그렇다. 페미니즘이라고 표현을 할 수 있을지 쉽게 판단이 서지는 않지만, 언론에서 언급되는 특별한 문제들 - 워마드나 남혐, 여혐 기사들은 여성에 대한 생각들을 사회 공론화의 장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 사건 사고들(?)이 올바르냐 아니냐의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페미니즘. 이 말을 접한 것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대학 1~2학년 정도였다고 기억하고 있으니, 나에게 있어 단어가 던지는 메세지는 벌써 30년이 흐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의 중년의 나에에 이르러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정확한 정의나 가치 판단은 아직 미성숙함을 인정한다. 무엇이 페미니즘인지, 어떤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이것은 페미니즘이고 저것은 페미니즘의 탈을 쓴 일탈 행위임을 나뿐만 아니라 여성들 조차도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혼란스럽다. 성공한 여성들이 남여평등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행동해야 하지만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여성 내부에서도 페미니스트의 존재는 마음 속으로만 가지고 있는 추상화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만큼 우리는 이 용어에 대해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진 적이 없고 사고의 범주를 정해 놓은 가치관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나쁜 페미니스트>.. bad의 개념을 '부족한','못 미치는', '완벽하게 훌륭하지 못한'으로 이해하면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은 이해 가능하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말했듯이 이 책은 '가부장제 사회가 강요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대한 저항이자, 우리가 서로에게 요구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고, 동시에 규범화된 페미니즘은 불편하지만 자기만의 신념은 숨기지 않겠다는 나의 페미니즘'에 대한 책이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기존 질서의 반대하고자 하는 개념의 '이분법적 구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어쩌면..그렇게 대단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남성 사회(강자)에 도전하는 여성의 힘(약자)을 분산 시키는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으며, 남성이나 여성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회색 빛깔의 페미니즘으로 전락될 위험도 다분하다.
하지만, 정치적인 파워로서의 페미니즘이 내가 30년 동안 지켜봐 오면서도 아직 뚜렷한 실체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구도는 사회의 다양성과 융합, 멀티 플랫폼이 대중화된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기존 질서에 대한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나만이 가지는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다원화된 사회에서의 페미니즘의 진정한 가치는 몇 명의 싸움꾼의 처절한 투쟁보다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극복해 내려는 대다수 여성의 노력이 좀 더 효과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스스로 정해 놓은 페미니즘에 대한 높은 가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페미니스트들은 물론 페미니즘 전체에 대한 부정을 일삼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페미니즘을 자기의 브랜드로 만들려는 여성들을 왕좌에 올려놓고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바로 무대에서 끌어내리고 페미니즘 본질에 대한 비난으로 확대하는 남성들이 많다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은 저자의 기준에서는 싸움도 아니고 반드시 옳다는 근본적인 사상도 아니다. 그냥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꾸려는 성평등 활동일 뿐이다. 동등한 권리, 여성으로서의 자유, 동일한 임금, 성적 자기결정과 같은, 남성이 지금까지 더 많이 가진것을 인정하고, 남성이 하는 것처럼 여성도 동일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 대전제가 성립되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페미니즘의 줄기가 생겨나고, 가정과 사회, 인류에 있어 다양한 문화가 생겨날 수 있다고 믿는다. 역사속에서 '정'이 있고 '반'이 있으면 반드시 '합'이 되는 것처럼, 바로 '합'에 도달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나쁜 페미니스트>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똑 같이 규정화된 틀에 맞추려고 사는, 타인의 시선을 피하지 못해 꼭둑각시로 살아야 하고 결국 자기 앞의 페허를 볼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남성은 이러해야 하고 여성은 이러해야 한다는 과거의 굴레에서 연기하듯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헤쳐나가기 위한 노력이라고도 평할 수 있겠다.
페미니즘에 대한 여러 책 중 가장 인간적인 책. 그러면서도 조금은 아쉬운 책. 인간의 보편성에 기대어 정치 파워로서 여성의 권리를 일상으로 원복시켰다는 한계와 누구나 공감하는 대중적인 공감,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는 공공의 시선으로 다가선 책. 결국은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을 떳떳이 드러내면서 공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려는 의도를 읽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