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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n Jul 29. 2021

'슬기로운 해외생활'과'어쩌다 전자책'

베트남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전자책의 아쉬운 이야기

해외에 살면서 좋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한국에 살 때에는 해외 거주의 좋은 점만 보여 가끔씩 여유로움이 부럽기도 했었는데, 경험해 보니, 해외에 살게 된 기간이 길어질 수록 좋은 점이 늘어나는 것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어려운 점이 더 많이 발생된다. (특히 지금과 같은 봉쇄와 격리기간이 길어지니 불안정한 해외생활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은 '내가' 제일 힘들고, '현재'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즉, 내가 겪는 지금이 가장 힘들고 어렵다고들 말한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시절을 꼽으라면 항상 과거를 이야기 한다. 좋은 일은 과거에만 존재하고 좋지 않은 일은 현재에만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외국인 친구들에게 '너희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모두들 바뻐? 좀 쉬면서 해. 화가 난 것처럼 보여'라는 말을 들을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엇이 정답이고,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곤 한다. 바쁜 거 없다는 동남아 사람들과 함께 있다보니 그런 한국인의 급한 성격 유전자적 특징을 더욱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사실 베트남으로 넘어오면서 한국에서 바쁘게 살며 30년동안 쌓여왔던 찌꺼기들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좀 편하게, 건강을 챙기며, 여행하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도전하며,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 희망사항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어느 정도는 생활의 패턴을 느슨하게 풀어가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 7시간 이상 잠자기, 하루 8시간 이상 일하지 않기, 건강에 해로운 것 자제하기,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몇 가지 발생되는데 해외라서 어쩔 수 없는 것들... 나에게 있어 가장 아쉬운 점들 중 하나는 바로 '종이책'이다.


책이 좋아서 읽고 생각하고 쓰고 하는 일을 10년 넘게 해오면서, 책은 거의 사서 읽는 편이었다. 하지만 외국에서 한국에서 읽던 방식대로의 책읽기를 하기에는 정말 어렵다. 한국에서는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다니면서 시간이 나거나 생각이 날 때마다 항상 온라인 서점이나 일반 서점에서 구입을 하곤 했다. 많이 살 때에는 한 달에 예닐곱권은 샀던 것 같고, 적게 읽는 달에도 한 두 권은 읽었으니까 말이다. 그동안 쌓여있는 글 목록 이외에도 미처 작성하지 못하거나, 읽다가 포기하고, 때로는 글쓰기가 의미없다는 생각 때문에 생각의 흔적 남기기를 포기하기도 했으니까.. 지금은 그것들을 다시 끄집어 내어 정리하는 작업 중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서는 '어쩌다' 전자책을 많이 보게 되었다. 종이책은 구입하기도 힘들고, 구입하더라도 배송받기 어렵고, 현지에서 사기에는 확실히 비싸니까 전자책을 볼 수밖에 없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이 생겨 한국에 가끔씩 들어갈 때 구입한 책을 들고 몇 권씩 들어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근 2년째 못하고 있으니, 전자책이 책읽기의 갈증을 풀어 줄 유일한 창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보고 있는 전자책의 한 페이지.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고, 무엇보다 책의 손맛이 없다.


하지만 전자책은 아직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화면을 쳐다봐야 하는, 노안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나에게 전자책은 또 하나의 어려움이다. 오래 읽지 못한다. 눈물이 나기도 하고 눈이 뻑뻑해 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자책은 손맛이 없고 종이의 향이 없고 내 손이 닿는 곳에 놓여지지 않는다. 노트북이나 전자패드를 켜지 않고서는 책만을 위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전자기기를 켜는 순간, 일과 쉼, 보고서 작성과 책읽기가 경쟁을 하게 되는게 현실이다. 오롯한 책읽기 시간은 존재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책은 외국 생활에서 내가 가졌던 꿈들을 유지하게 해주는 위안거리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격리 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다. 좋은 책을 검색하고 전자책으로 출판되었는지를 확인하고 다운로드 받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감동을 선사받기도 하고, 하루 종이 집에서 지내야 하는 생활 속에서 글을 어떤 형태로든 접할 수 있게 만든 효자 상품이다.


종이책에 비견하여 전자책이 가지는 아쉬움은, 50세만 가지는 아주 제한적인 푸념일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 시장이 발달되고 모든 일상생활이 온라인으로 돌아갈 때, 사라져가던 서점들이, 종이책들이 하나 둘 다시 기지개를 켜며 우리 곁으로 은근슬쩍 다가온다 하니, 종이책만이 가지는 매력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독점물은 아닌 듯 하다.


게으른 해외 생활을 위해, 정말 바쁘게 살 뻔한 위험을 없애기 위해, 그리고 지금의 뜻하지 않은 격리생활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나에게 가장 필요한 현실적인 선택은 전자책이다. 나의 '슬기로운 해외생활'을 위해 '어쩌다 전자책'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나의 생활의 일부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좀 더 전자책과 친해야 하는 숙제가 떨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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