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온 자의 기억을 되살리다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무사유'의 사이, 김혜진 소설 <9번의 일>

by Justin

1998년에서 2018년까지


김혜진의 소설 <9번의 일>을 모두 읽었을 때, 잊혀졌던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주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어쩌면 지금의 내가 선택한 길의 근원적인 원인이기도 했던 바로 그 기억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서글픔과 더불어, 한 직장에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스스로 '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게 만들었던 순간의 기억들이 되살아 난 것이다. 어쩌면 아직도 누군가에게는 아픔으로 누군가에게는 분노로, 누군가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자리잡고 있을 이야기들을 꺼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책을 읽고 나서 직감했다.


직장 생활 22년 동안 나는 총 4번, 선배들의 퇴직을 지켜보았다. IMF가 터진 직후 처음으로 회사는 어쩔 수 없이 희망퇴직을 단행했고, 그 이후 4~5년에 한 번씩 정기 행사마냥 주기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미련없이 회사를 떠나왔다. 나가란 소리도 없었고 있으라는 얘기도 없었지만 그냥 자발적인 선택으로 걸어나왔다. 선배들에게는 바짝 따라오는 후배 하나가 레이스를 포기한 것일 수도 있고, 후배들에게는 꽤 잘 나가는 선배 하나가 자진해서 사라져 준 것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사회와 인간 모두에 대한 고발


김혜진의 소설 <9번의 일>은 두 개의 스토리로 구성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통신사에서 26년을 근무한 주인공이 정리해고 대상에 올라 이를 거부하고 이에 따라 생기는 회사의 부당한 처우에 반대하며 힘들게 버티는 이야기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노조 가입 후 투쟁의 댓가로 회사에 남게 되었지만, 본사 복직 조건으로 주어진 고압전신주 건설 하청업체 파견을 나가면서 설치를 반대하는 그곳의 주민들과 갈등을 일으키며 발생하는 주인공의 내적갈등을 다루고 있다.


기업이 행하는 정리해고(또는 희망퇴직으로 포장된 명예퇴직)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는 반대를 하지만, 자신이 받는 이익과 손해, 또는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갈등한다. 주인공 역시 회사가 '넉넉한 조건'라고 표현한 괜찮은 조건의 퇴직금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으로 편히 살고자 구입한 빌라 문제와 자녀의 학자금 때문에 회사가 주는 불이익을 감수하며 끝까지 버티는 인물로 등장한다. 회사에 대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현실을 감내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회사를 버티는지 명확히 이야기 하지 못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오직 회사에 남겠다는 일념이 오히려 모든 일들에 '무사유'로 일관하게 모습을 띠게 되고, 가정에 대한 관심과 피붙이의 경제적 문제마저 외면을 해 버린다. 그리고 투쟁의 결과로 눈 앞에 다가온 복직 조건에서 주인공은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반대했던 회사의 지시를 관철시켜야 본인이 복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속에서 무서우리만큼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모든 일이 마무리 될 즈음에 주인공은 혼자 철탑에 올라 자신이 건설했던 장비의 부품을 해체하고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줄기이다.


회사에서 주인공이 지키려고 한 것이 혹시 누군가에게는 다시 칼날로 다가오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그렇지만, 상황에 대한 정확한 사유가 없는 경우 우리는, 그 일이 어떤 일인지도 모른 채 그저 회사의 부속품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무사유. 생각하지 않은 죄. 가정과 사회 직장에 충실하나, 근본적으로 그 일이 만인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않고 일만 한 죄. 나치 독일의 유태인 학살사건의 주범으로 재판정에 섰던 '아이히만'에게 내려진 죄목과 같이 우리는 그렇게 본인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 억압에 저항하지만 결국 '무사유'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속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소설은 사회고발이자 인간본성에 대한 고발의 이중적인 성젹을 띠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다시 기억 속으로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선배들이 정리해고를 희망퇴직으로 포장되어 나가는 과정을 보았고, 회사가 어떻게 그 절차를 진행했는지 똑똑히 보아왔다. 회사의 집요함, 원거리 발령이나 무보직은 물론이고 직무연관성이 없는 일에 투여하여 좋지 않은 근무평점을 주는 것까지... 내보내야 하는 순번을 정하고 한 사람이 버티면 다른 사람이라도 내보내야 하는 할당량까지... 한 조직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그 조직 전체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까지...


그리고 또 하나를 알아버렸다. 기업이 강요하는 퇴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텼던 선배들이 보였던 다양한 모습들. 그것은 투사의 모습이기 전에 공교롭게도 후배들에게는 좋지 못한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오직 버티기 위해 선택한, 주위에 대한 인식조차 거부하며 선배로서의 귀감보다는 그냥 내버려두라며 조직에서 스스로를 격리하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일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일을 해도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짐작으로 스스로를 철저히 조직과 차단시켰고, 그러면 그럴수록 그가 몸담고 있는 조직원에게는 피해가 커졌다.


나는 회사에서 시행한 정리해고 또는 희망퇴직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아왔고, 안타깝게도 회사의 결정에 저항하는 선배들의 모습에서 이기심과 무사유적 모습도 보았다. 기업이 얼마나 철저히 존엄을 무시하고 이익중심의 운영을 하고 있는지 생생히 경험했고 많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다른 사람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보아왔다. 나는 몇 년이 지난 후 희망퇴직 대상자가 될수도, 아니면 희망퇴직을 종용하는 관리자가 될 수도 있는 그 시기가 도래할 수 있었고, 그 시기가 오기 전 스스로 그 회사를 떠나오고 싶었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가장 합리적인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많은 분들이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에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겪은 일이 다수가 겪는 일이라기 보다는 특별한 소수가 겪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22년 된 회사를 떠나온 지금, 김혜진의 소설은 나의 잊혀진 기억을 다시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그 시절의 고민들. 그리고 그 시절 만났던 사람들.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자긍심이 있다면 나의 선택은 괜찮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내가 받는 피해의 가해자는 명확히 알고 있어도, 내가 주는 가해의 피해자를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김혜진의 <9번의 일>을 마치며, 자본주의 기업속에서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화이팅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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