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들, '베트남 사람들' 이야기 (1)
결국 또다시 이 도시는 멈춤을 택했다. 5월 초 노동절 연휴의 대이동에서 비롯된 코로나 재유행은 벌써 두 달이 넘게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멈춰서게 했다. 길게 잡아야 한 달의 봉쇄면 다시 잠잠해 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는 가파르게 상승한지 오래다. 통행증을 소지하거나 병원과 같은 급박한 사유를 제외하면 길거리를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고 급기야 오후 6시 이후에 통행금지령까지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확진자 수는 세자리에서 네자리, 1천명대에서 최고 6천명대까지 치솟았다. (베트남 전체의 일일 최고 환진자 수는 약 9710명이다.)
사업 또는 직장을 위해 호치민시에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두 달째 집에만 머물고 있다. 기껏해야 아파트 또는 인근의 마트에 다니는 것이 전부다. 모두들 힘들어 하지만, 한 명의 문제되는 행동으로 한인들 전체가 욕을 먹는 상황이 올 수 있어 다들 조심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진자는 최근 매일 4000명 수준으로 발생한다. 어디서 발생하는지도 알려지지 않고, 그저 보건국에서 매일 한 번 발표하는 숫자가 지금의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다. 모두가 조심하고 있고 통행을 금지까지 했는데 왜 두 달 동안 끊임없이 환자는 나오는 것일까? 의심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정보의 공개가 오픈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궁금증은 그저 궁금증으로 남던지, 아니면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카더라' 식의 추측만 난무한다.
평소에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지만, 코로나와 같은 전세계적인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럴 시간이 생겼다. 우리가 아는 베트남 사람들, 또는 모르고 있었던 내용을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베트남 사람들의 성격과 가치관들을 글로 써 보고자 한다. 모든 일의 시작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니, 일반적인 성격과 습관을 파악하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너무 그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일반적이지 않은 특별한 사람들도 꽤 많으니까 말이다.
2018년 12월 베트남 땅을 밟을 때 부터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 주위로 부터 듣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살기를 작정하고 들어온 이상 주위에서 들려주었던 내용들이 대부분 좋지않은 평가들이라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직원들도 같이 지내보면 적응할 거라 생각했고, 비지니스 관계에서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주한지 3년이 넘은 지금 생각해 보면, 초기에 들었던 내용들이 대부분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조금은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은면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남과 북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길게 뻗은 나라이다. 역사적으로도 남과 북이 대립되어 살아온 지가 훨씬 오래고, 베트남 전쟁 이후에야 통일된 국가로서 하나의 정치 경제체제를 이루었다. 그래서 베트남인을 바라볼 때 하노이로 대표되는 북부의 사람들과 호치민으로 대표되는 남부의 사람들의 성향이 많이 다르다. 인종도 약간의 차이가 있고 정치색이나 경제관도 다름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듯 하다.
북부지역은 전통적으로 중국과 대립하고 외세와 싸우면서 발전해 왔던 지역이다. 인종으로 따지면 중국 계통에 가깝고 피부색도 남부에 비해서 훨씬 밝은 편이다. 하노이가 베트남의 정치의 중심지이고 과거 호치민 주석의 공산당이 남쪽을 통일했다는 자부심도 강하다. 실리보다는 명분이 강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고, 아직도 남쪽을 사이공이라 부르며 조금은 폄하하는 사람들도 간혹 볼 수 있다. 명분과 자부심이 강한 것이 사람마다 표출되는 방법이 다양한데, 의리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 음흉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대놓고 실리를 추구하지는 못하지만 뒤로 챙기는 문화가 더 심하다는 평가도 있다.
하노이가 베트남의 수도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훨씬 더 적극적이고 잘 따르는 측면이 있으며, 공산당 가문을 중심으로 러시아 유학파가 정치를 좌우한다. 물론 유럽이나 미국도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지만, 정치를 염두에 두고 있는 힘있는 집안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일하면서 알게된 상공회의소 고위 간부도 나이는 30대 후반이지만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유학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으며 러시아 유학이 과거 훨신 더 성행하여 그 사람들이 지금의 정치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치권력=경제권력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공산당 체계에서 드러나지 않은 부자들이 훨씬 많고 베트남 부자 중에서도 최고 부자는 모두 하노이 출신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반면 남부는 철저히 실리적인 측면이 강하다. 베트남 전쟁 이전 사이공이 미군 점령 하 자본주의 체제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긴 일일 것이다. 돈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일하면서도 돈 문제에 아주 민감한 것을 많이 경험했다. 때로는 말도 안되는 계약조건을 고집하기도 했고,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도래하면 계약 위반을 당연시 하는 경우도 경험했다. 명분이라는 보이지 않는 조건보다 실리를 우선시 하기 때문에 조금은 안하무인식의 협상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특히 공단이 밀집한 북부와 다르게 남부의 호치민은 상업이 발달하여 소상공인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 피해는 호치민이 훨씬 더 심하고 호치민 인민위원회는 하노이 당국에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1조 4000억원을 지원 요청할 정도다.
호치민 시의 경우 베트남의 경제수도로 이야기하지만, 큰 빌딩 소유주나 부자들은 하노이 출신이 많다. 북부의 공산당이 내려오면서 거의 모든 부를 거머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호치민 사람들은 아직도 피해의식이 남아있고 정부의 일에 적극 협조하지만 반골 성향을 띠기도 한다. 축가 국가대표 선발도 하노이 출신으로만 채워 운영되어 오던 것을 박항서 감독이 오면서 축구가 성장한 이유 중 하나가 호치민 소재 클럽 선수들을 발탁하면서 지역 구분을 없앤 것이 이유라고 평가한다. 우리나라에서 모대학 중심의 축구협회 장악이 오래 지속되었고 박지성 같은 선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히딩크 감독이 학연이나 지연을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과 유사할 것이다.
베트남의 지형적 특성과 역사 때문에 발생된 지금의 차이는 조금씩 사라질 것임이 분명하다. 내부적인 격차가 존재해서는 베트남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돈에 관심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자존심이 세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며. 착하다는 이야기를 듣기고 하고 사기꾼이 많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국뽕이 심하다고도 이야기 하지만,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는 젊은 친구들도 많고, 더운 지역이라 게으르다고 하지만 아파트 건설 속도는 한국보다 빠르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베트남 사람들. 지역적으로 정확히 구별되지는 않지만,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리적 특성과 역사때문에 벌어지는 평가들 중, 어떤 것이 더 정확히 베트남을 대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북부 사람이 같이 일하기 낫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남부가 낫다고 한다.
하지만, 외국인이 북부와 남부 출신을 구별한다는 것은 구시대적 사고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도 같다. 살면서 느낀 점은 베트남 사람들도 누구나 마찬가지로 상대적이라는 것. 바뀌지 않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결국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돌아오는 그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지... 코로나 시대를 함께 겪으면서 2개월째 집안에 갇혀 답답하기도 하고 이해하기 힘든 정부의 정책과 시민들의 행동을 보기도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특수성을 좀 더 이해해 보려고 시도하는 것이 이 땅에 사는 이방인이 가져야 할 마음의 우선순위가 아닐까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해 본다.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들, '베트남 사람들' 이야기 (2)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