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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n Oct 07. 2021

세상 사람들 속 '내 모습' 찾기

심리여행을 통한 주관적 경험의 객관화, 김형경의 <사람풍경>

여행은 두 가지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듯 하다. '여행자의 입장' 그리고 '여행지 사람들의 입장'. 지금까지 보아왔던 여행 이야기, 여행 에세이가 여행자의 입장에서 써 온 글이라면, 김형경의 <사람풍경>은 두 가지 시점이 모두 공존한다. 여행이라는 낯선 곳에서 겪는 여행자의 심리상황이 글의 주요한 소재가 되는 이면에, 여행자를 바라보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과 '심리읽기'가 또 하나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 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여럿이 모여 그룹을 짓고 누군가 미리 세워놓은 일정에 맞춰 따라다니는 패키지식의 여행 보다는,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 놓지 않고 다니는 자유스런 여행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인것 같다. (다만, 혼자 갔을 때에만 해당되고, 가족과 함께 할 때에는 혼자 여행 때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사전 지식을 동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혼자 가더라도, 아니면 누구나와 동행을 하더라도 여행지에서 얻게 되는 가장 훌륭한 미덕한 바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여행에서 사물이나 장소가 주는 매력보다는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매력적 요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자의 책은 세상 곳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에 촛점을 맞춘, 나에게는 간지러운 곳을 긁어 주는 더없이 안성맞춤격의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것을 초월한, 고난한 일이다. 상대방을 읽기 위해서는 나를 내려 놓아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상대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나의 사고가 깨끗히 정제되어 있어야 하고 살아오면서 축적되어 온 편견의 찌꺼기들을 감정의 밑바닥으로 조용히 가라앉혀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심리를 읽는다는 것은 푸념과 질책, 찬양과 부러움의 사적인 측면으로 폄하되기 쉽기에. 그것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 정서적 안정감, 경험에서 얻는 교훈 등이 어우러져야 가능한 일이라는 얘기다. 여행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지난 날과 지금의 나를 비추어 보고 행동의 심리적 원인, 과정, 결과를 무리없게 써 내려가기 위해서는 내가 객관화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심리는 모든 것을 한 번씩은 겪어 보면서 내재화 시킨 연륜이 묻어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오는 자연적인 연륜이 아니라 애쓰고 다듬어 낸 '생각의 연륜' 말이다.


그 과정은 인간의 감정을 이야기 하고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이야기 하고 마지막에 세상을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긍정적 가치들을 이야기 한다. '무의식', '사람', '분노', '우울'이 인간의 기본적 감정이라면 '의존', '중독', '질투', '시기심'과 같은 심리는 정서의 표현 단계이자 어떠한 행동을 야기하는 요인들이다. 그리고 '자기애', '존중', '에로스', '뻔뻔함', '인정과 지지', '용기' 등은 오롯이 나를 위해 가져야 하는 심리적 처방들이다, 알면서도 쉽게 정의내리지 못하는 이런 추상적 요소들을 정신분석학의 이론과 경험을 섞어 내어 우리가 느끼고 만질 수 있게 재창조 한다.


저자가 세계를 여행하며 다니면서 인간 심리에 집착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내 일상 속에서는 나를 객관화 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객관화 하는 작업으로서 여행은 필수적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의 사람살이는 나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찾아 낸 인간 속 감정들을 나의 그것에게 투영시켜 지난 날의 내 모습의 심리 상태를 추출해 내는 여과방식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기 위한 심리적 접근'이라는 명제는 맞는 말이 된다. 이는 여행지의 견문이나 정보를 간간히 읽을 수 있는 부수적 소재들과 함께 저자의 책이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게 하고 이 책을 읽는 묘미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결코 추상적인 말로만 글을 써 내려가지 않는다. 심리적인 책들이 주는 관념적 요소들을 우리가 항상 생각하는 정서와 낱말들로 표현해 냄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와 호기심을 유발한다. '백과사전 같은 남자', '합류적 사랑', '여행가방의 크기는 주인의 불안감의 크기와 비례한다' 등의 글들은 텍스트의 재미를 불러 일으키는 대표적인 예문들이다. 툭하고 내뱉는 말이 우리의 머리 속을 관통하여 지나간다. 이해의 위치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독자조차도 과거의 주관적 경험들을 현재로 소환하여 이를 객관화시키며 모두의 경험으로 정제 시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간접 경험이 바로 세상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숨은 그림찾기가 아닐런지...


오래 전 출간되었지만,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여행에세이라는 점에서 언제 읽어도 가치가 유효한 책. 그러고 보면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인간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여행 속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재미있을 뿐 아니라, 그로 하여금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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