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아무데라도 날아가고 싶은, 신대철 시인의 <무인도를 위하여>
많은 이들이 신대철의 시를 추천해 주고 있었다. 가끔씩 들르는 온라인 서적에서 '남들은 무슨 책을 읽지?'하는 마음으로 숨어 본 책들 중에서 유독 신대철의 시집이 눈에 들어 온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가지고 있던 시에 대한 동경심, 그리고 무지와 맞닿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시집을 읽은 것은, 도종환 시인의 먗 권의 책들이나 유하의 시집, 여러 시집이 엮어 있던 옴니버스식 시집들이 전부다. 그러면서도 항상 시는 내가 지닌 '내면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겼고, 그런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시로 표현되는 문장, 긴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짧은 문구가 가슴에 날아 들어와 박힐 때 얻는 쾌감과 즐거움 역시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시를 통해 편안함을 얻고, 깨달음에 도달한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주변과 동화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적 자괴감,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서글픈 분노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시가 나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본다면 신대철의 시들은 내 생각의 깊숙한 곳에, 아직 닿지 못한 '감정의 울림통'에 자극을 줄 만한 요소들을 다분히 보유하고 있다. '자연', '인간'을 두 축으로 하는 '성장통'이나, '어머니와 죽음', '고통', '어둠'을 뜻하는 현실적 고뇌가 뒤범벅 되어 있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대철의 시 속에서 자연인데도 자연 이전의 공허함을 보고, 현실의 세상인데도 형이상학적인 형상을 보게 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눈으로만 바라보는 2차원적 자연과 인간세상이 아닌, 마음이 동하고 통해야만 얻을 수 있는 상상속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무인도'라는 설정은, 쉽게 접근하지 못하면서도 무언가 때가 묻지 않는 이상향 같은 곳이기도 하지만, 스스로가 무인도가 되어 세상과 '고립'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신대철의 성장 과정과 정신 세계를 다 알지 못하기에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시인은 이 세상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주변인' 속에서 자연과 동화되지도 못하는 '경계선'에 서 있는 듯 하다.
'해질 무렵.... 아무 데라도 날아가고.... 날개를 달고 이 세상에 오래 살아본 미래 기억자가 되어 돌아오고 싶은 욕망'이 시인의 마음상태를 정확히 짚어내 주는 구절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신대철의 시는 지금 현재 진행중인 복잡한 세상 속에서 고립되어 가는 인간들과 그를 둘러싼 자연과의 동화를 갈망하는 우리의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시는 한 번으로 그 깊이를 알기 어렵다. 시는 그 자리에 있어도 나의 마음이 이리저리 떠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의 닻을 내리는 순간 시의 의미는 마음 속에 다가올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신대철의 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마음 속으로 읽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시는 내 마음 속 마지막 보루니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