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애정
홍상수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던 나는 그의 지난 작품 '수유천'을 기점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기대를 조금 거두어야만 했다. 성인이 되고 홍상수의 작품을 처음 극장에서 접한 뒤에 그의 신작이 개봉하면 한달음에 달려가곤 했던 나는 수유천이 개봉했을 때에도 개봉일에 맞춰 상영관을 찾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내게 슬픔만을 안겼을 뿐이었다. 그의 신작에서 더이상의 새로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작년에 개봉한 수유천이 그해 먼저 개봉했던 '여행자의 필요'보다도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역시 홍상수다'라는 평가를 받은 데에 대해 어느 정도 납득했지만서도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어쩌면 그의 장기가 잘 드러났던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다시 말하면 그냥 평범한 그의 영화였다. 오히려 그의 날카로움이 잘 묻어났던 과거 작품들의 열화판이라고 생각했다. '소설가의 영화' 개봉 당시 송경원 편집장은 GV에서 홍상수의 최고작은 그의 신작이라는 발언을 했었고, 나는 그 말에 격하게 동의했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영화에 동어반복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과 달리 그의 영화는 분명히 매번 새로웠다. 허나 나는 수유천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되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대사들에 귀가 아팠고, 한 번 깨진 몰입에서 영화의 리듬을 온전히 느끼기도 어려웠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가 영화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건지 등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곱씹어볼수록 영화 자체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남았을 뿐이었다.
이 여파 때문인지 나는 홍상수의 신작을 개봉한지 한 달이 넘어 극장에서 내려가기 직전에서야 보게 되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다행히 이번 작품은 직전 작품에 비하면 그다지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되려 꽤 재밌었다. 물론 영화 초반 영사사고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흐릿한 화질에 눈을 질끈 감았었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방식이 참 매력적이었다. 배우들의 에너지도 좋았는데, 박미소의 연기는 볼 때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탄스럽게 느껴졌다. 실소가 나올 정도로 좋았던 엔딩 역시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뭔가 예전 홍상수 영화들을 볼 때만큼의 만족스러움은 없었다. 오히려 요즘은 영화를 보는 빈도가 줄어들어서 좀 엉성한 영화를 봐도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나오는 편인데, 항상 내게 설렘과 기쁨을 주던 그의 작품에서 더이상 이를 느낄 수 없다는 게 애석했다. 그의 영화를 계속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기뻤었는데, 더이상 이를 극장에서 봐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는 또 새로운 작품을 세상에 내보일 테이지만, 나는 아마 보러 가기를 주저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