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었을 때, 나는 선생님께 세상에서 가장 믿으면 안 되는 두 가지가 '믿는 도끼'와 '등잔 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놀라서 동그래진 선생님의 눈보다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거 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놀랍다'는 그녀의 말이 더 기억에 남았다. 아무튼 어렸을 때부터 저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나는 타고 나기를 냉소와 불신으로 무장한 사람이었다.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 연유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 일과는 별개로 평소에는 나의 냉소를 겉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냉소는 사춘기와 맞물려 생긴 과잉 감정이었던 것 같고, 그래도 상시 갖고 있었던 생각은 후광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첫인상은 놀라우리만치 빠르게 어떤 대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만든다. 처음 10분 정도의 대화, 태도, 표정, 몸짓에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어떨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앞서 써놓은 것처럼 사람에 대한 불신이 기저에 깔려 있는 나 역시 상대방의 첫인상에 홀리거나 질려버리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사람은 다면적이다. 성격 뿐만 아니라 가치관이나 행동양식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이 사람은 이러한 면이 있으니 이러할 것이다'와 같은 판단은 대인관계에서 굉장히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형태의 추론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 통념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창작물에서 선량해 보였던 이웃이 알고 보니 희대의 살인마였다거나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동료가 알고 보니 마을의 언성 히어로였다는 등의 설정이 어느 정도 먹히는 것도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저런 형태의 통념을 믿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 판단이 어긋났을 때, 평가자와 피평가자 모두 상처를 입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평가자는 피평가자의 예상과 다른 모습에 실망하게 되고, 피평가자는 영문도 모른 채 상대방의 실망하는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세상에는 그럴 사람도 없고, 그러지 않을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속내를 알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처한 상황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작정하고 자신을 포장하여 적극적으로 남을 속이는 경우도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서 비롯되어 생긴 오해 때문에 어색한 상황이 생기는 것 같다. 예전에 퇴사자 중 한 명이 부정한 짓을 저질러 감사가 진행되었던 적이 었었다.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입에선 하나같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말이 나왔다. 그렇게 의미 없는 말이 또 있을까 싶었다. 이미 그 사람은 그런 짓을 해버렸는데...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 드렸던 말씀을 다시 꺼낼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구태여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