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11월

by 빠른귀

긴 연휴로 빠르게 지나갔던 10월과 다르게 11월은 휴일 하나 없는 지독한 달이다. 그럼에도 11월이 내게 조금 특별한 건 생일이 껴 있어서이다. 우연찮게 구십 몇 년 11월 어느 날에 주어진 삶을 비교적 아무 탈 없이 30년 정도 잘 유지해오고 있다. 생일이라고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공부하고, 독서나 영화 관람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똑같은 하루일 뿐이었다. 오히려 매년 얼마 안 남은 한 해의 끝자락에서 백수로서 비참하게 맞이했던 생일들과 비교하면 올해의 이 무미건조함이 굉장히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괜히 불안하고 적적한 마음에 일부러 약속을 잡거나 뭐라도 하려고 밖을 돌아다니곤 했었는데, 그러지 않고 집에서 가족들과 소소하게 식사하면서 별 탈 없이 하루를 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잠드는 것이 훨씬 기분이 좋았다.


어제는 빼빼로데이였다. 출근 했으면 동료들한테 돌릴 주전부리라도 챙겨갔겠지만 휴가를 내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휴가를 내고 보니 빼빼로데이여서 좋은 데 가냐는 주변의 은근한 질문들을 받았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하루 안에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새로 개설한 은행의 이체 한도를 늘리는 일부터 전입 신고, 건강검진 등 잡다한 일들을 하루 만에 처리하려니 마음만 급했다. 다행히 가는 곳들마다 한적해서 금방 금방 끝내고 일찍 들어와 쉴 수 있었다. 비록 좋은 데는 못 갔지만 한 주의 중간에 출근을 안 하는 날이 껴 있다는 게 생각보다 휴식 효과가 큰 것 같다. 만약 주 4일제가 실현된다면 휴무일을 금요일이 아닌 수요일로 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금, 토, 일을 내리 쉬는 것보다는 중간에 쉼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1월 중순에는 가족여행이 예정되어 있다. 여름 휴가 때 다들 일정이 안 맞아서 뒤로 미루자고 했던 휴가를 드디어 떠나게 되었다. 마침 11월 중순에 다들 한가해져서 시간이 맞은 게 다행이었다. 취업 준비로 몇 년 동안 빌빌대던 나 때문에 은근히 가족들이 나를 두고 여행을 가는 것에 눈치를 봤었다는 것을 안다. 물론 그들끼리 갔다오라고 하면서 내가 완강하게 거절한 탓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고, 오히려 분위기를 환기할 기회였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워낙 사서 걱정을 하는 성격이기에 그렇게 불안을 증폭시키는 선택은 적극적으로 삼가야만 마음이 편했으니까. 이제 와서 보니 나는 여행을 가본 경험이 거의 없다. 이 나이 먹도록 숙소며 비행기 예약들을 처음으로 해보려니 이렇게까지 하면서 꼭 가야 되나 싶었지만 나 보다는 우리를 위한 여행이기에 볼멘 소리는 넣어두었다.


11월이 긴 만큼 연말을 위한 준비들을 하나씩 해 나가야 한다. 지금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바쁠 12월을 맞이하기 위한 여러 작업들을 미리 해 놓아야 그나마 여유롭게 연말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12월 뒤에는 더 바쁜 1월이 기다리고 있기에 11월에 적당히 바쁘게 지내야 그 때 가서 덜 피곤할 것 같다. 이렇게 보니 12월과 1월은 한 해의 끝과 시작이지만 이어져 있는 긴 한 달처럼 느껴진다. 방학이 있던 학생 때가 참 그리워진다. 부러우면 임용시험을 봐서 교사가 되는 길 밖에 없겠지. 하여튼 마의 11월을 잘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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