뜯기지 않은 예쁜 포장지를 뜯어야 하는 이유
뜯기지 않은 예쁜 포장지를 뜯어볼까?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잘 잊히지 않는 말들이 있다. 그냥 일반적인 대화를 하던 중에 선배 언니한테 흘러가듯 들은 한마디 말이었는데,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꽤나 선명하게 남아있다. 왜 그런 말 있지 않은가. 듣는 순간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뭐야, 좀 기분 나쁜데?’하는 그런 말들 말이다.
대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던 시점에 뉴욕의 미 한국 상공회의소에서 6개월간 인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뉴욕에 놀러 온 선배 언니를 우리 집에 며칠간 재워주기로 했다. 저녁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멋진 몸매를 가진 여자 사진을 보며 서로 감탄했다.
“와 진짜 이 여자 몸매 최고다!”
“그러니까. 진짜 대박이네!”
“아~ 나도 30살 되기 전엔 꼭 복근 만들어야지”
꽤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내 나름의 인생 버킷이었기에 별 주저 없이 말했다. 난 내가 못해낼 이유조차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간 이룰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황당한 한마디가 돌아왔다.
“야, 넌 해도 이렇겐 안 된다!”
누군가로부터 ‘안 된다’란 말을 꽤나 이상한 상황에서 들었다. 보통 이런 말들은 인생의 크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어른들한테서나 듣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8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들은 이 말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나도 참 별나단 생각이 든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금방 잊어버려서 뒤 끝은 별로 없는 편이야!”하며 최근까지도 말하고 다녔는데.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지금 생각해보니 난 꽤나 뒤 끝이 긴 사람인가 보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다. “넌 공부는 잘할 것 같은데, 공무원 준비나 해봐.” 이것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난 뒤 끝이 어지간히 긴게 분명하다. 그 당시 동기들은 나에게 하나같이 ‘넌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버티고 있니?”라고 물었고, 그때의 난 대답했다. “난 아무렇지 않아, 그 사람은 내 인생에서 전혀 중요한 사람이 아니거든. 그래서 그 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은 나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럼 동기들은 또 물어본다. “그래도 상처 받지 않아?”
물론 그 무수히 많은 날카로운 말들로 상처를 단 하나도 받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다만, 그 말들은 나 자신이 흔들릴 만큼 나에게 영향을 주진 못했다. 한 번은 “넌 기획 머리는 없어”란 말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런 말을 듣고도 내가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난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듯 살다 보면 어떤 상황이든 간에 누군가 쉽게 내 한계를 결정짓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온다. ‘네가 그걸 할 수 있겠니?’란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더라도, 이젠 진짜와 가짜 응원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21살의 나는 뒤늦게 기분 나쁨을 알았을 정도로 미숙했지만, 30대로 접어든 나는 이제 이런 주변의 소음 따위에 반응하지 않을 줄 아는 단단함이 생겼다.
최근에 들은 공룡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날, 최소 3천만 년 전의 공룡 알이 학자들 사이에서 발견되었는데 학자들이 너무 소중한 거라 그 자체로 보관을 하려 했다. 너무 귀하니까 아무도 깨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중 단 한 명의 학자가 ‘무슨 소리냐’ 하며 망치를 들고 와서 바로 쾅! 하고 깨버렸고, 공룡 알 안에는 아기 공룡의 배아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망치를 들고 알을 깨부순 그 한 명의 학자 덕분에 공룡도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학자는 우리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릴 때 받은 생일 선물을 단지 포장지가 예쁘다고 안 뜯을 거냐고. 살면서 모두가 안 된다 말할 땐 정말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돌덩이를 예쁘게 포장만 해뒀기 때문이라고.
내가 살면서 이룰 수 있는 것들을 예쁜 포장지로만 덮어두고 싶진 않았다. 이런 굳은 마음이 있어서일까. 내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장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깨지지 않은 공룡 알 같은 돌덩이로 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안의 보석은 내가 스스로 깨지 않으면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가 직접 깨야만 한다. 누군가 내 돌덩이를 깨주길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나이를 하나 둘 더 먹어갈수록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기는 점점 더 두려워진다. 생각해야 될 것들이 더 많아지고, 짊어지고 있는 책임들은 더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가도 금세 주변에서 들리는 이런저런 소리들에 점점 더 신경 쓰게 된다. 이럴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기술’이다. 주변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은 내 내면의 강한 믿음으로부터 나온다. 진부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믿음은 그냥 단순히 ‘할 수 있다’는 막연한 내적 주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난 이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하는 스스로에 대한 ‘강한 확신’이다.
혹 누군가가 당신에게 ‘넌 할 수 없어!’라고 말한다면 ‘이게 뭔 개소리야?’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자. 그 어떤 세상의 모진 말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돌 같은 마음을 갖고 살자. 인생에서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며 나 자신이 흔들릴 만큼 우리들 인생은 결코 가볍지 않으니깐 말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그 선입견을 지울 때가 옵니다.
자신의 한계를 주변에서 정할 때, 그 선입견에 작은 망치를 선물한
그의 돌멩이 안에 담겼던 보석을 따뜻하게 지지해주세요.
- Jack Horner 고생물학 교수 -
2020년 12월 20일 촬영한 바디프로필 원본 (서른 살 되기 전, 꼭 멋진 복근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