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 말고 나를 수식할 수 있는 것
최근에 회사 후배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선배님. 선배님은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길래 그렇게 열심히 사세요?"
그냥 아침에 탕비실에서 물을 뜨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인생의 목표를 질문받게 될 줄이야.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조금은 당황했기에 다음에 자세히 말해주겠다며 일단은 웃어넘겼다.
자리로 돌아오면서 계속 후배의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러게. 난 무엇을 위해 지금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거지'
문득 회사에서의 열정 넘쳤던 지난날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음... 그때의 난 무슨 마음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입사 후 4년 동안 완벽한 [회사 인간]이었다. 굳이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항상 플러스알파를 하려 했고, 처음 맡은 광고 프로젝트를 좀 더 잘해보겠다고, 밤 12시에 나 홀로 회사를 지키다 불을 끄고 나올 때면 피곤함보단 그래도 내 일을 잘 마무리했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이것을 신입의 열정과 패기라고 해야 할까. 25살과 26살의 나는 빨리 성장하고 싶었고, 더 많이 배우고 싶었으며, 내 능력을 하루라도 빨리 인정받고 싶었다. 덕분에 27살과 28살의 나는 회사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고, 나는 마치 엔진에 모터가 달린처럼 계속 앞만 보고 쭉 달렸다.
"이번 제안 PT도 꼭 따내야지!"
저녁 6시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어느새 30분 정도 넘기는 것은 당연시하게 되던 순간부터였을까. 그렇게 난 내 첫 회사에서 맛 본 성취의 달콤함에 꽤 오랜 기간 취해있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어느덧 4년 차 대리가 되던 2019년 여름이었다. 난 내가 그렇게 꿈꾸던 국가 브랜드 마케터가 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만약 퇴사를 하면 나는 무엇으로 수식이 되는 거지?' '내 직업 말고 나를 수식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동안 수많은 클라이언트들의 채널을 관리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낱낱이 분석하며, 그들을 위한 제안서를 썼지만 정작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있진 않았다.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위한 제안서를 쓴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그 순간,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였다.
혼자 있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온전히 깨달은 순간, 내 시간은 이전과는 조금은 다르게 흘러갔다. 나는 그때 이후로 더 적극적으로 혼자가 되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약속을 애써 잡지 않았으며, 그 대신 스스로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나 둘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겼다. 나를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길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나는 나 자신과 수없이 많은 대화를 했다.
회사에서 만들어준 명함이 아닌, 내 이름 자체를 명함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디 회사, 누구입니다'가 아니라 '00 하는 000입니다'로 통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나가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치 아무도 걷지 않은 사막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있는 기분이랄까. 이쪽이 맞는 방향일까, 저쪽이 맞는 방향일까 계속 시도하고 깨지고 난 다음에서야 비로소 '아, 이 길이 내가 갈 방향이다!' 하며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 찾아오는 크고 작은 성과들은 마치 사막 속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으로 그간의 힘듦을 보상해주었다.
2019년,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그 순간으로부터 정확히 1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비로소 온전히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온라인에서 내가 기록하는 모든 행위들을 계속 이어나가려면 저절로 혼자서도 잘 놀게 된다. 누군가 '너 왜 글 써?'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 한 문장으로 답하고 싶다.
[남의 언어가 아닌, 나의 언어로 살고 싶기 때문에]
20대 초중반까지의 나는 줄곧 '난 혼자서도 잘 놀아'라고 외치며 카페에 혼자 앉아 고독을 즐기는 느낌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런 느낌도 잠시였으며 이내 누군가와 통화를 하거나 혹은 다시 약속을 잡아 남은 시간을 보냈던 걸 보면 그 시절의 나는 온전히 혼자 있는 법을 알지 못한 채 그저 고독을 즐기는 척만 한 것이 분명하다.
비로소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 된 지금에서야 '행복은 자신의 방에 혼자 있을 때 온다'란 수학자 파스칼의 말에 깊게 공감한다. 쳇바퀴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에 지쳤다면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온전히 올 한해 쏟아보는 건 어떨까.
[무엇이 되었든 일단 시작하기]
그동안 단순히 흘러가기만 했던 시간들이 조금은 다르게 흘러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혼자 잘 설 수 있어야 함께 잘 설 수 있다.
적극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기 안의 샘물을 파고, 지하수를 퍼올려야 한다.
사이토 다카시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 >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