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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인영 Dec 31. 2020

아, 제가 좀 관종이라서요

관중보다 관종이 되고 싶은걸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크리스마스가 오기까지의 한 달이 가장 설렌다. 왜 그럴까? 평소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자꾸 보여서일까. 길거리를 걷다 갑자기 만나게 되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카페에 들어서면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캐럴, 그리고 매일 같이 걷던 퇴근길에 갑자기 들려오는 자선냄비 종소리는 매년 나를 이유 없이 설레게 한다. 


근데 참 이상한 일이다. 막상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면 오히려 기분이 무덤덤해진다. 마치 어렸을 때, 소풍 가기 전날까지 한 없이 들떠 있는 모든 설렘의 시간들이 무색해질 만큼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 마음 한편에 이런 설렘 하나쯤은 계속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진 늘 설렘의 연속이었다. 대학생 때는 전 과목에서 A학점을 받고 졸업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설렜었고, 취업을 준비할 때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며 설렜다. 그렇게 나는 지금 과거의 내가 그토록 원하던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 한 번 내가 그려낸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설레고 있다. 마치 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설레듯 말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어른들한테 늘 듣던 질문이 있다.


“넌 꿈이 뭐니?” 


당시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난 매 순간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직업을 답했고, 그렇게 내 답변은 매년 달라졌다. 초등학생 땐 언니 따라 아나운서가 꿈이었다가, 또 생각해보니 대학교수이신 아빠가 참 멋있어서 대학교수를 꿈 꾸기도 했다. 한 번은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책을 읽고선 갑자기 경영 컨설턴트를 꿈꾸기도 했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나에게 꿈이란 마치 동전 뒤집듯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친구 두 명이 있다. 나와는 반대로 이들의 꿈은 참 또렷했다. 한 친구는 파일럿, 또 다른 한 명은 검사가 꿈이랬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 나이 때 어떻게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을까?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들을 내심 동경했고, 마음속 깊이 부러워했다. 참 멋지게도 그중 한 명은 이미 파일럿이 되었고, 나머지 한 명은 최근에 검사 시험에 붙었다고 연락이 왔다. 참 기쁜 일이다.


하지만, 19살의 나는 이 친구들과는 다르게 학창 시절 내내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명확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의 지원에 부끄럽지 않은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싶었다. 일단 대학교에 가고 나면 무엇인가 번뜩 떠오르겠지 하면서 말이다. 


이런 희망을 품고 난 경영학도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깨달음을 바로 얻을 수 있을 거란 사실은 나만의 큰 착각이었다. 어렸을 땐 동전 뒤집듯 계속 바꿀 수라도 있었지, 나이가 좀 드니 이것마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경험을 쌓기로 결심했다. 뉴욕에서 인턴 생활도 두 번 해보고, 교내 영자 신문 기자로도 활동해보며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가장 즐거운지 다양한 대외활동을 통해 열심히 찾아 헤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대학교 3학년을 앞둔 시점이었다. 경영학과 세부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같이 공부했던 대학 선배는 우리 같은 문과들은 회계나 재무를 선택해야 그나마 취업 확률이 높다며 재무를 메인 전공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난 숫자 놀이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고, 잘할 자신도 없었다. 무엇보다 좋아하지도 않는 재무, 회계를 공부하며 내 남은 2년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좋아하는 것보다 나와 맞지 않는 걸 더 잘 아는 편이다. 그렇게 나는 남은 옵션들 중, 내가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꼈던 마케팅을 주저 없이 선택했다. 다행히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이 선택에 후회 하진 않았다. 당시 무조건 마케터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단지 누군가를 감동시키고, 깨달음을 주고,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그런 모습이 멋져 보였다. 미래의 나도 이런 모습이면 꽤 멋지지 않을까 상상하며 설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도시들과 다양한 국가 브랜드를 알리는 국가/도시 브랜드 마케터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행동을 이끄는 캠페인을 기획하며, 마음을 움직이는 영상을 만든다. 비록 어릴 적부터 꿈꾸던 직업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의 내 모습에 꽤나 만족하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 이보다 더 맞는 직업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비록 어릴 적부터 파일럿을 꿈꾸고, 검사를 꿈꾸던 그 친구들처럼 처음부터 또렷한 명사형 꿈은 없었지만,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꾸준히 찾아 헤맨 나름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가]


이 질문은 살면서 스스로에게 계속 던져야 하는 질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매 순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취업 준비생 시선에서 그리는 내 미래 모습과 5년 차 직장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내 미래의 모습은 꽤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계속 던지다 보면 어느 순간 ‘아,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다’라고 무릎을 탁- 하고 치는 순간이 찾아온다.


29년을 살다 보면 어느 정도 스스로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재미있는 것을 보면 알리고 싶고, 좋은 것을 보면 나누고 싶으며, 감동 있는 것을 보면 함께 공감하고 싶어 한다. 어쩌면 마케터가 천직인지도 모르겠다. 한 마디로 어딘가에 내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일종의 ‘관종’이라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하겠다.


옛날에는 ‘관종’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에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피했다. 근데 지금은 아니다. 회사를 벗어나서도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된 지금의 난 어쩌면 ‘관종’이란 단어가 가장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 순간 이것저것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나에게 주변 지인들은 종종 이렇게 묻는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퇴근하고 피곤하지도 않아?” 

그럼 난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모든 거창한 문장들 대신 그냥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 제가 좀 관종이라서요!’


거창한 문장을 조금 꺼내보자면, 나는 나로 인해 누군가의 인생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비록 그게 단 한 명의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삶이란 이런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 


내 미래의 모습이 아직은 청사진처럼 선명하진 않다. 하지만 이제는 이 사실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20대 초반엔 한 번에 완성된 내 모습을 그려내려는 욕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내가 만들어낸 윤곽선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치 흰 도화지에 처음 그림을 그려나갈 때, 전체적인 윤곽을 먼저 잡는 것처럼 말이다. 간혹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올 때면 나는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세상의 모든 멋진 그림은 처음엔 단 몇 줄의 윤곽선일 뿐이었다고. 그리고 나는 지금 나만의 윤곽선들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이다.


지금 당장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고 있다면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꿈이 꼭 명사형일 필요는 없다고. ‘나는 00이 되고 싶어!’ 대신 ‘나는 00을 위해 살고 싶어’라고 답할 수 있는 동사형 꿈도 있다고. 그러니 무엇이 되고 싶은지 당장 떠오르지 않아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이다. 그저 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설레는 아이처럼, 매년 더 나은 미래의 내 모습을 흰 도화지 위에 그리며 살아 가도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5년 후, 10년 후의 당신은 분명 상상도 못 할 만큼 멋진 그림으로 완성되어 있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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