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내일 더 선명한
나는 사람들에게 질문 던지는 것을 유독 좋아한다.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에 따라 상대방을 알아가는 깊이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질문의 깊이에 따라 상대방과 보내는 시간의 농도도 결정된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너무 가볍지도, 그리고 또 너무 무겁지도 않은 것들로 추려내곤 한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터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너는 퇴근하면 뭐 해?”
“팀장님은 퇴근하면 뭐하세요?”
이유는 딱 하나다. 이 질문만큼 상대방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질문의 또 다른 형태는 “너 뭐 좋아해?”와 같다. 보통 이 질문을 던지면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그냥 좀 쉬다 보면 금방 11시야”라고 말하는 유형이 있는 반면에, 두 번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나열하는 유형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전자의 경우가 훨씬 많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시간이 있어도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쳇바퀴처럼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나를 되돌아볼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 속에서 애써 의식해서 시간을 내지 않으면, 나와 대화할 여유조차 갖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우린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의 상황은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을 꽤나 늦게 깨달았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한 문장으로도 정의 내리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해 한참을 속앓이를 했다.
그러다 문득 어릴 적 자율활동 시간에 선생님이 나눠주시는 자기소개 종이를 받았을 때를 떠올려보았다. 그 종이 속에는 항상 ‘취미/특기’ 란은 빠지지 않는 단골 질문이었고, 그럴 때마다 큰 고민 없이 ‘피아노 치기’, ‘음악 감상’, ‘영화 감상’과 같은 단어들로 채워 넣었던 내가 생각났다. 당시에는 그 칸을 진심을 담아 채우는 것보다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던지기엔 고3 입시는 너무나도 치열했으니깐 말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야!’라는 생각으로 입사 3년 차가 되었을 때부터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보통 입사 3년 정도 되면 일도 어느 정도 손에 잡혔겠다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긴다. 그때부터 직장인 동호회도 하나둘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평생 시도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를 시작해볼 용기도 생긴다. 그렇게 나는 어릴 적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댄스를 배워보기로 결심했고, 1년간 주말마다 신나게 춤을 배우며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냈다. 마치 대학시절, 조 과제를 위해 따로 만나듯 사람들과 시간을 따로 내어 댄스 공연도 준비했다. 그렇게 두 번의 공연을 하고 나니, 댄스에 대한 욕구는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지만 문제가 생겼다.
1년간 쉴 새 없이 댄스로 몸을 움직여서일까. 어느 순간 흔히 말하는 ‘현타’가 왔다. 재밌긴 했는데 계속 이어나갈 만큼 좋아하진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댄스는 어느 정도 선천적인 부분임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나는 그다지 재능이 있진 않았다. 그래서일까. 1년을 쏟아붓고 계속 이어갈 정도의 애정이 바닥났음을 느낀 순간, 댄스와는 정 반대인 정적인 것을 찾아 나섰다. 춤을 추며 웃고 즐기고 나니, 가만히 앉아 스스로를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내 일상이 조금은 더 깊이 있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주관이 확실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 우선 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난 사람들과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한 소셜 살롱 클럽(열정에 기름붓기)에 가입했다. 나의 다음 일 년은 이 곳에 쏟아부었고,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나에게 글쓰기의 즐거움을 처음 일깨워 주었으니깐 말이다. 평소에 해보지 않은 질문들을 이 곳에서 사람들과 하나씩 나누며 이야기하다 보니, 나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자신의 취향을 탐색해 온 사람들의 생각을 글과 말로써 듣는 시간이 점점 쌓였다. 나 또한 그들에게 내 생각을 글과 말로서 이야기하다 보니, 나의 호불호 또한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선명해졌다.
자신의 호불호를 아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것저것 많이 경험해보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설명하기 위해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싫어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2시간 동안 떠들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해졌다.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내 안의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고 한다. 그저 지쳐 쓰러지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어떤 것에 마음이 가는 순간부터 일상엔 조금씩 밀도가 생긴다. 영상을 시작하면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일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특별해졌다는 것.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찾아보고 시도해볼 때마다 내 안의 세계도 한 뼘씩 점점 넓어졌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나를 기록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들임을 매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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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난 이렇게 답을 한다.
"어느 순간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즐기고 있어요"라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처음 보는 이에게 2시간 동안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나요?”
지금 당장 답하지 못해도 괜찮다.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나씩 찾아 나서면 된다고.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가보라고. 그러다 보면 당신도 분명 어제보다 내일 더 선명해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