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봐야 아는 것들
인생에도 신호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는가. “아, 이때 이렇게 말할걸” “아... 내가 이때 왜 이렇게 행동했지?” 하며 하루 끝에 이불 킥 하는 순간들 말이다. 어떤 행동을 해야 했을 때, 혹은 더 강하게 말할 수 있었던 상황을 다시 되돌아볼 때면 나는 늘 내 인생에도 대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이런 이불 킥하는 순간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그 횟수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쪽팔림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게 분명하다. 20대 초반에 겪었던 여러 이불 킥 순간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애써 떠올리려고 해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혹여 문득 생각이 났다 할지라도 ‘풉, 귀여웠네 자식’ 하면서 하나의 재미난 에피소드로 웃어넘기는 여유가 생겼달까. 이럴 때 보면 인간의 기억이 쉽게 미화된다는 점은 참 다행인 일이다.
처음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를 떠올려본다. 예쁜 옷을 입고 싶은데 돈은 많이 없어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옷들을 자주 구매하곤 했다. 옷을 보는 눈도 없다 보니 한 철만 입고 버릴 옷들만 나중에 옷장 속에 가득했다. 근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옷이 나에게 맞는지 정확하게 알기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이렇듯 옷도 여러 번 구매해봐야 어떤 옷이 진짜 내 옷인지 알 수 있는 안목이 생기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이불 킥 했던 지난 순간들이 하나둘 모여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회복 탄력성’이란 말이 있다. 어떤 어려움과 시련이 와도 원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탄력성을 뜻한다. 나는 이걸 마음의 근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가 운동할 때 근력을 키우듯이 마음에도 근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좀 더 과감하게 스스로를 내던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간혹 인생에 찾아오는 이불 킥 순간들을 조금은 덜 두려워해도 된다. 그렇게 쌓인 경험치가 곧 마음의 근력으로 되돌아올 테니깐.
하지만 실수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무엇보다 일에 있어서는 실수가 단지 나 혼자만의 이불 킥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검토는 필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입 시절엔 어쩔 수 없이 실수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대부분 처음 하는 일이고, 운영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몰릴 경우엔 특히 크고 작은 이슈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입사 2개월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광고 링크를 다른 페이지로 연결해버려서 100만 원이 잘못 지출되기도 했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잘 마무리되긴 했지만 그때 이후로 난 링크를 두세 번씩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넘어졌을 때마다 반드시 무언가를 줍고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 실수를 할 때는 반드시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신입 시절 때는 실수도 여러 방면으로 해봐야지 된다고 생각한다. 넘어져봐야 일어나는 법을 아는 것처럼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실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에 서 있는 투사는 얼굴이 온통 먼지와 피땀으로 범벅되도록 용맹하게 싸우다가 실수를 저지르고 단점도 드러낸다. 따라서 당신이 지금 노력하고 있다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단점 또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대기석에 계속 앉아 있다면 실수도 단점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1년만 지나도 부단한 열정으로 온 마음을 다해 싸운 사람의 시간은 절대 쉽게 따라갈 수 없다. 그러니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린 조금은 더 과감해져도 된다는 말이다. 성공하면 승리의 축배를 들 것이고, 설령 실패한다 해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