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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Jun 09. 2020

한국, 이갈리아의 아들

남성 상위 시대라고?

내 이름은 이가희이다.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부님께서는 조금 실망하셨다고 했다. 그래도, 요즘은 아들이 더 효도하는 시대라며 억지로 웃어넘기셨다고 하지만, 외할머니께서 아버지를 보는 눈초리는 차가웠다고 한다. '성염색체는 애비쪽에 따라 결정된다며?' 외할머니는 적어도 형이 있으니, 둘째는 딸이기를 내심 바라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애미가 그렇게 고생해서 낳았는데, 결국은 애비쪽때문에..'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이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외할머니 앞에서 편하게 지내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이름은 윤서다. 홍윤서. 원래 이름은 미선이었지만, 먼저 선자를 이름에 써서 사촌 누나의 앞길을 막는다고 개명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항상 나만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이름도 아름다움과 햇빛이라는 뜻을 담아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태어난 세상, 오늘도 뉴스를 켜면 범죄 뉴스가 넘친다. 대부분이 남성을 대상으로 한 소위 '남근 훼손' 범죄다. 보나 마나 생리 기간 전이었다며 심신 미약을 주장해서 감형을 받겠지. 이 사회는 굉장히 이상하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남성은 성욕이 넘쳐 이성적인 사고가 안 된다며, 불완전한 인간이라며, 모든 기회와 사회적 지위로부터 배제되어왔지만, 여성은 정혈을 한다는 이유로, 심지어 정혈 기간(소위 생리) 전에는 난폭해질 수 있다며 남성에게 상해를 가하고도 감형을 받는다. 똑같은 생물학적 특징인데도 왜 서로 다르게 다루어지는 걸까. 그게 권력이겠지. 그들이 놓을 생각이 없는 권력. 모든 매체와 영화, 드라마에서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포궁에 대한 미화와 선망. 심지어 인간의 동기에 대해 배울 때에도, 권력과 진취성은 정혈과 관련되며, 때문에 남성들은 열등하다는 암시를 받는다.


게다가 남성들은 어려서부터 근육이 잘 붙는 신체적 형질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근육이 많아서는 안된다며 자신을 억압해왔다. '여성보다 근육 붙은 남자는 보기 싫더라', '근육을 빼는 것도 자기 관리야.' 문제는 이러한 소위 '여성들의 취향'이 일자리, 사회적 활동 등 모든 면에서 제약을 가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여성들의 '남자 친구'로서 선택되지 않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취업에서, 일자리에서 실질적으로 불이익을 받으면서 남성들은 스스로를 그러한 기준에 길들여왔다. 지금도 전신 근육 보톡스 주사는 남대생들 사이에서 인기다. 부작용으로 죽은 사람도 있고, 심지어 그대로 그 자리에서 못 일어난 사람도 있다던데. 하지만 나 자신도 조금이라도 근육이 붙을까 봐 일부러 격한 운동은 피하고, 단백질 섭취는 항상 최소한으로 줄인다. 물론 스테로이드를 먹은 우락부락한 근육이 몸에 좋지 않은 건 안다. 하지만 이 나라의 미의 기준은 너무나 심각하다고 항상 생각한다. 성형 수술 부작용으로 죽는 젊은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단백질을 과도하게 끊어서 몸에 이상이 생겨 일찍 죽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남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 말하는 아나운서도 전부 중년 여성이다. 옆에는 예쁘장한 젊은 남 아나운서가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마네킹처럼 앉아있다.(저 남 아나운서도 실력 있는 사람일 텐데 저런 식으로 대우하다니.. 휴..) 시사 프로그램들은 죄다 여성 아나운서들이 진행하고(두 아나운서가 모두 여성이고, 게스트인 교수들도 다 여성이며 전문가들도 대부분 여성이다), 주로 남방송인들은 드레스를 차려입고 리액션이나 잘해주기만을 요구한다.(예능 같은 데서는 남자들에게 애교나 그만 시켰으면 좋겠다, 무슨 중년의 사람들이 그렇게 어린 남성들한테.) 이러면서도 '남성 상위시대'라니. 가슴이 답답하다.


최근에는 남성의 남근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남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나를 옥죄는 남근대를 벗어던지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나도 그러한 움직임을 긍정적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밖에 나갈 때는 나도 모르게 시선이 신경 쓰여 주섬주섬 남근대를 차게 된다. 그래도 예전에 샀던 레이스 달린, 리본 달리고 뽕이 심하게 들어간 남근대는 버렸다. 버릴 때도 그걸 노리는 여성들이 (웩) 많으니 잘라서 검은 쓰레기 봉지에 담아 버려야 한다고, 남성 커뮤니티에서 알려줬다. 정말 여자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한 남성 연예인이 남근대를 차지 않고 다녔다는 이유로 연일 기사에 도배되고 있다. 그 남 연예인을 욕 먹이려고 작정한 듯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들. 댓글에는 교양 있는 척하며, '흠, 보라고 저렇게 벗은 것 아냐?', '자기만 하면 상관없는데 남들에게 강요는 안 했으면 좋겠네요.' 보나 마나 여자들이다. 나도 사실 알고 있다. 어쩌다 용기 내어 남근대를 차지 않으면 길에서 느껴지는 여성들의 시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쓰일 수밖에 없다. 쓰지 말라고 강요? 그럴 리가. 온 세상이 나에게 남근대를 강요하고 있는데.


나도 사실 여자 친구가 있다. 학교에서 만난 4살 연상의 누나. 누나는 대놓고 '남성이 하등하다'거나 '매니즘 싫어한다'같은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누나는 나름 인문학을 전공했다. 누나는 항상 남성의 인권에 대해 존중한다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 분노나 좌절에는 크게 공감해주지 않는 것 같다. 이야기하면 피곤해한다. 그래서 요즘은 차라리 남자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게 편하다. 누나가 우리가 탈 남근대, 탈 남성성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안다. 그런 걸 좋아하는 여자는 별로 없으니까. (게다가 친구들도 전부 호의적이진 않다.)


친구랑 얼굴 레이저 제모를 받으러 가기로 했었는데, 사실 등록하고 나서 후회가 됐다. 남들 다 한다지만, 사실 등록하고 나서야 남성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남성세'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용실에 가면 남성은 더 많은 비용을 낸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머리가 짧아도 똑같다. 근데 원래 짧은 머리가 더 잘 자르기 어렵지 않나? 나는 제모 업체들도 똑같은 거 같다. 성형 시술, 네일, 미용- 화장품 업계. 놀랍게도 사장님들은 거의 다 여성인데 그 돈을 갖다 바치는 건 남성들이다. 얼굴 제모가 이렇게 비쌀 이유가 있나? 면적도 훨씬 좁고, 결국에 다른 부위보다 더 아프다는데 그 고통도 내 몫이고. 진짜 억울해 죽겠다. 세 달 전으로 돌아간다면 이 돈을 책 사는 데 쓸 텐데.


고추 달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는 정말 숨을 쉴 때마다 불편하다. 그리고 이건 알수록 더 부당하다. 태어나기 전부터 남자라는 이유로 중절당할 위험도 더 높고(옛날에는 국가에서 남아 낙태를 주도했다고 한다), 태어나서는 아들이라며 홀대받고, 학교에서는 체육시간에 덜렁거릴까봐, 그걸로 여자애들이 놀릴까봐 맘껏 뛰어놀지도 못하고. '여성 천재'라는 말 들어봤는가? 보통 천재라는 말의 디폴트는 여성이다. 남성에게는 재능도, 노력도 인정받을 기회가 훨씬 적다. '남자가 공학을? 거기 여초인데 괜찮겠어?' 내가 공학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들었던 말이다. '너 가면 완전 공대 왕자님 아니냐?' 친구 녀석들은 부러워하기도 했다. '왕자님'은 개뿔. 복학한 선배들은 술 먹자며 자꾸 불러대고,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남자는 성적 대상으로만 다루어졌다. 단톡방에서 내 사진 가져다가 성희롱한 선배들도 알고 있다. 아마 남근대를 안 한날에는 그것도 엄청 수군거렸을 거다. 바지로 실루엣보고 사이즈랑 모양 평가도 엄청 한다던데.. (그러니까 귀두나 음낭 성형 수술까지 있지.) 애초에 어렸을 때부터 남성은 25,24,25 라며 하도 아무렇지 않게 듣던 탓에, (그게 가능하겠나. 진짜 극소수 남성이나 그렇겠지.) 점점 무뎌져 간다. 요즘 남성 소변기에 몰카가 그렇게 많다던데.. 그래서 요즘은 남성들이 소변을 보기 전에 소변기에 구멍이 없나 꼼꼼히 살핀다고까지 한다. 경찰이고 판사고 다 여자니까 이런 범죄를 우습게 보지. 이래 놓고 남경은 일 못한다고 이상한 루머나 뿌려대고.

졸업할 때가 되었을 때, 대학원 진학도 고민해봤다. 교수님들도 자긴 '여자만 뽑는다'고 대놓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대부분 여자만 뽑더라... 문과 남자애들은 그래도 공대 남자애들은 취업 사정이 낫지 않냐고 한다. 문과 남자애들보다는 낫겠지. 근데 내 경쟁 상대는 기업에서 쌍수 들고 반기는 공대 여자들이란다.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해도, 결혼을 생각하는 남자라면 승진은 꿈도 못 꾼다. 대기업도 면접부터 웃긴 게, 여자애들은 진짜 피부관리도 안 하고 그냥 옷만 깔끔하게 입고 오는데, 남자는 에티켓이라며 진짜 아침부터 수염 제모부터 풀코스로 예약해서 면접을 보러 가야 한다. 다 그러니까. 나만 안 그러면 대기업 취업 시장에서 도태될 테니까.


사실 남성들이 억울한 점은 아직 이야기하기 시작도 못한 것 같은데, 인터넷에는 항상 '너도 매미냐?' '매미니스트 out' '매퇘지 놈들'이라며 매니즘에 관심을 가지는 남성들에게 욕설을 하기에 바쁘다. 진짜 그들이 말하는 남성 상위시대라면, 내가 이야기한 것들이 반대로 되어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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