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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Mar 06. 2021

개인의 목표와 조직의 목표, 그리고 공익

공익적 목적, 개인의 이기심


그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겠다. 한 공부방에서 자원교사로 활동했을 때였다. 자원 교사들은 대부분 여성이었고, 소정의 활동비를 받으며 활동한다는 대표자는 한 남성이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견디기 힘든 가스 라이팅과 일 9시간 봉사(강요)를 겪었고 수많은 모욕과 질타를 목격했다. 하대는 일상적이었고, 그만둔 후에도 행사에 불러서 일을 시킨 뒤에 참가비를 갈취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해당 공부방은 주변 대학 봉사자들에게 그러한 봉사자 착취와 하대로 유명한 곳이었고, 이로 인해 몇몇 선생님들만 겨우겨우 그 대우를 아이들을 보면서 견디고, 계속해서 선생님들이 그러한 괴롭힘에 떠나는 것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연속성 있게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대표가 바뀌었다면 가망이 있었겠지만, 이런 조직의 특성 중 하나는 대표자의 조직 사유화이기에 결국 그 공부방은 문을 닫았다.

또 다른 조직은 공익적 목적의 출판물을 펴내는 곳이었는데, 이 곳도 한 남성 대표가 조직을 사유화하기 위해 다음 대표들을 계속해서 괴롭혔고 그렇게 다섯 명 정도의 대표가 조직을 떠났다. 물론 다른 부서에 있던 나도 괴롭힘을 당했는데, 이에 더해 다른 학과에서 들어온 학생들은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하대하고 배척하곤 했다. 결국 실력 있는 사람들이 해당 조직을 떠났다.

그 외에도 정말 많은 공익적 목적의 단체들 내부에는 독재와 괴롭힘이 횡행하고 있다. 이는 오히려 공익적 목적일 때 그 정당성이 강화된다. 독재하는 개인은 자신이 좋은 일을 하기 위한 이러한 학대는 당연한 것이라고 정당화하고, 떠나는 사람들,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을 이기적이라며 낙인찍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기적인 사람은 누구인가? 첫 번째 예시의 대표는 그 조직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낮은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만족을 작은 공간에서 교사들을 학대하며 과잉 보상받았다. 두 번째 예시의 사람은 해당 단체에서의 대표직 경험을 스펙 삼아 더 높은 상위 교육기관에 진학했다. 동시에 가장 본인에게 가장 크게 남은 것은 공익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그 쾌감일 것이다.


이는 이러한 소규모 단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기업, 수많은 봉사단체 공익적 목적의 단체 중 대부분이 나는 개개인의 이기심으로 그 목적을 해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위의 예시는 대표자 개인의 독재가 그 주제였다. 봉사활동의 경우  영광을 누리는 대표나 이를 스펙으로 생각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 얻을 이익이 없기에 자발적일  있다. 때문에 이기심의 예시가 주로 대표에 집중되어있다. 하지만 참여하는 모두에게 콩고물이 떨어지는 안정적인 일자리, 공무원이라면? 나랏돈 받는 정책 집행자들이라면?


가장 큰 규모의 예시가 국가이다. 공무원 조직의 대외적 목적은 공익 증진이다. 하지만 과연 공무원 개인의 목적도 그것일까? 계속해서 드러나는 횡령, 부정, 채용비리와 같은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재확인시켜준다. 조직이 대외적으로 대세 우는 목적은 공익적일지라도 떨어지는 보상이 있는 한, 그를 구성하는 개개인 대부분은 이기심을 기반으로 해당 조직을 운영한다. 그리고 이 결과는 끔찍하다. 공익을 위한 조직 대부분이 결국 개개인의 사익을 앞세우면서, 보여주기 식 성과창출과 비민주성, 착취, 본 목적의 심각한 훼손을 계속해서 낳기 때문이다.


결국 공익적 목적의 조직은 이기적인 개인을 만난다면 그 목적의 실행에 실패하기 쉽다. 정책이 처음에는 좋은 목적으로 입안되었더라도 이를 시행하는 이들이 결국 자기 몸 하나 편한 방향으로, 자신의 승진과 영광의 수단으로, 아래로는 사람들을 학대해서 갈아 넣고 그 성과만을 자신의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자명한 이 사회에서, 나는 이제 추상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일화들로 모아진 거대한 좌절을 만난다. 아무리 좋은 목적의 정책도 개개인의 이기심으로 좌절되고, 어떤 의지도 결국 꺾여버리고 만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착한' 조직에 내던지고 맡겨둔 결과로 이 사회는 너무나 망가져버렸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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