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왕생 5화. 용의 아이들] 후기
* 극락왕생은 워낙 방대하고 심오한 작품이지만, 그 중에서 나는 <5화 용의 아이들>에 대한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해당 회차는 유료분이기에 내용 캡처나 이미지는 첨부하지 않았다. 또한 줄거리 등이 노출되어 있으니, 보지 않은 분들은 만화를 먼저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이 땅에 사는 동시대의 여성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연대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르더라도, 경제적-사회적 환경과 지역이 다르더라도 이 땅에 사는 '한국 여자'라면 우리 삶의 경험은 공통적으로 재정의된다. 교육열은 높은데 여성의 사회진출은 꽉 막힌 나라, 절차적 민주주의 수준은 상위권인데 성차별은 세계 최고수준인 나라. 물건은 두고 다녀도 잃어버릴 일 없지만 여성대상 범죄는 매일같이 발생하는 나라. 세상이 혹독할 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더 가까워졌다. 계단에서 짧은 옷을 입은 다른 여성을 보면 붙어서 가려주게 되는 마음, 비혼 선언을 하는 동료를 열심히 지지하는 마음, 불법 촬영물 범죄를 보고 분노하고 행동하는 마음. 세상의 거친 눈총을 받더라도 어린 여성들에게 나쁜 세상을 물려주기 싫어 행동하는 마음. 아무리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고 반감을 가진 여성이라도 미워지기보다는 혹시라도 그 때문에 이용당하거나 피해당할까봐 걱정부터 드는 마음. 서로를 위해 분노하는 마음, 너의 어려움이 곧 나의 어려움인 그 마음.
동해에 살던 용은 혼자 사무치게 외로웠다. 그래서 자신을 수천갈래로 나눠 자매들을 만들었다. 관음과 친구들(?)이 찾아낸 용손은 손발이 차가운 이, 찬 바람이 불면 콧물이 나는, 불주사 자국이 있는 여성이다. 이 묘사는 사실 그냥 평범한 여성들을 이르기 위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의 평범함은 즉 당신이 용의 자손이라는 뜻이라고, 그리고 당신의 자매들이 있다고. 작가는 평범함을 위대함으로 바꾼다. 해당 화의 주인공인 선주씨는 '나 같은 사람의 인생에 특별한 일이 있을 리가 없다.'라고 이야기하며 등장한다. 사실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어렸을 적 가지고 있던 특별한 환상들이 사라진 자리에 지긋지긋하게 자리잡은 주말 출근과 야근. 어제와 다를 것 없이 살아낸 오늘.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신은 참 많은 어려움을 견디고 있다. 모든 것이 당신에게 더욱 가혹한 이 땅에서 어쨌든 하루를 살아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당신의 평범한 하루는 위대하다. 왠지 주눅들고 힘이 들 땐, 용의 자손으로서, 당신의 자매들을 떠올리길. 평범한 우리는, 서로의 위대한 용기다.
+ 불안 속에 '혼자'로 외로워하는 자언과 외로움 끝에 수천갈래로 자신을 나눠버린 용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 자신이 기억하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이라면, 자언은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하는데, 그 죽음과 관련된 기억과 그 해석을 이후 연관지어보면 자언은 정말로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린 상태라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