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처럼 타오르진 못해도
굉장히 나의 사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춤을 잘 추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춤 그 자체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춤을 알게된 때부터 그랬다. 혹자는 지금이라도 하면 되지, 하겠지만. 언젠가가 되든 도전은 계속해서 다른 일과 병행할 것이다. 다만 이를 당장 '직업'으로 삼기엔 부족하다못해 발목을 잡는 신체를 갖고 있기에 내 생계가 너무 막막할 것이기에 섣불리 업종변경을 꿈꾸기는 어렵다는 점만 밝혀둔다.
춤을 배웠다고 말하기 시작할 수 있는 때로부터는 10년이 넘게 지났다. 처음 대학교에 진학했을 때, 무엇을 위해 그 긴 시간을 달려왔나 허무하던 때, 사랑에 대한 큰 환상을 가졌었지만 사실 상대방들은 그렇게까지 애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여성들에게 사회는 특히 연인 관계가 우리의 온 삶을 구원해줄 것 같은 메시지를 계속해서 주지 않는가) 어느날 모래처럼 사라져도 아쉬울 게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난 20년의 시간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억누르고 '한 가지 해야할 것'만을 강요 받아온 시간이었고, 나는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즐겁거나 살고 싶은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공부도 독서도 좋았지만, 그게 전부이기에는 채워야 할 공허함이 너무도 컸다.
그러다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무너질 것 같을 때, 에라 한 번 도전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춤을 처음 배우게 되었었다. 당연히 못 했다. 지금도 못 한다. 나는 춤을 배울 때 마다 '타고난 재능'과 '한계'에 대해 생각한다. 타고난 친구들은 20분이면 잘할 수 있는 동작을 나는 2시간 넘게 연습해도 그렇게 잘할 수 없었다. 수십번 연습해도 어려웠고 '타고나지 않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불 타오르는 열정으로 하루에 10시간씩 맹훈련을 하며 살아오진 못했다. 대체적으로 나의 시간은 앉아서 일을 하는 데 쓰였고,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살 때는 다닐 마땅할 학원이 없어서(기존에 배우던 종목이 흔치가 않아서) 스트레칭이나 틈틈히 할 뿐이었다.
지금도 내 몸은 크게 다르지 않다(물론 시작 당시에 비해서는 빛나는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들 중 아무도 내가 춤을 (다른 종목이긴 해도) 10년을 췄다는 것을 모른다. 누가 봐도 조금 뻣뻣한, 처음 배우는 사람일 뿐이다. 결국 좀 더 대중적인 종목으로 바꿔서 배우고 있고, 이 부분에서 잘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열심히 할 뿐이다.
그냥 이런 열정도 있다고 말 하고 싶었다. 혼자서 열 시간씩 태워가며 하지는 못해도, 꾸준히 가르쳐줄 선생님을 찾아다니고. 쉬기는 해도 잊지는 않고 항상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는 이토록 사소하게 타는 작은 불길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그래서 30년 뒤, 40년 뒤에는 그래도 잘 추는 사람이 되어서, '할머니 잘 하시네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내가 춤을 출 때 행복하니까,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