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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ㅇ혜 Oct 13. 2022

막스 셸러의 철학적 인간학과
가치윤리학

셸러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후설의 현상학을 도입하여 특히 윤리학의 고찰을 통해 지(知), 정(情), 의(意)의 작용을 포함하는 전(全. 전체, 모든) 인격을 기초로 하는 선천적이고 실질적인 윤리학의 건설을 시도하였다. 만년에는 ‘철학적 인간학’을 구상하면서 철학을 세계관이자 형이상학적인 지식이라고 하였다. 또 인간은 그 자유로운 결단에 있어서 신의 본질을 실현시켜온 존재라고 하였다. 윤리학, 인간학과 환경론, 사회학과 역사와 같은 인문과학과 종교문제에 셸러는 살아 있는 직관을 통해 격동하는 현실에서 영원하고 보편적인 실재를 파악하는 ‘사랑의 현상학적 방법’을 도입, 많은 성과를 거둠으로써 당시의  많은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감명을 주었다.      

철학적 인간학은 인간의 본질 및 세계에서의 인간의 지위 등을 고찰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물음에 답하는 철학적 고찰로서, 철학적 인간학은 철학이 있는 곳에 항상 있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철학이 우주를, 중세철학이 신을 중심주제로 하는 동안, 인간은 그 계제에 언급된 데 불과하며 인간 자체가 중심주제가 된 것은 근세도 거의 지나, 철학이 자연적 세계관에서 해방 되면서부터이다. 특히 18세기 칸트에 와서 인간학이 모든 철학의 방향으로 간주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것은 인식대상에 대한 인식주관의 우위를 주장하는 그의 인식론으로 보아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로 접어들어 딜타이, 지멜 등으로 대표되는 생(生)의 철학, 야스퍼스,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의 실존철학은 인간학적 색채가 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철학적 인간학의 융성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류(源流)는 철학적 인간학의 구상을 내세운 셸러와 플레스너라고 할 수 있다. 셸러는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에서 정신으로서의 인간과 생명으로서의 인간이라고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방식을 제시하였고 플레스너는 <유기적 존재의 여러 단계와 인간>에서 생물학적, 인류학적 견지에서 출발하여 다른 동물에 대한 인간의 특수한 지위를 생의 중심을 초월해가는 탈중심적(脫中心的)존재(다른 동물은 생물학적 중심 속에 완전히 몰입되어있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방식은 생물학적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인위적인 삶을 지향하도록 규정된 존재이다)로서 그려내었다. 오늘날 철학적 인간학은 이 두 사람의 방향 즉, 철학적 견지에서 인간의 본질 규정을 구하는 방향과 경험과학으로서 인류학적, 생물학적, 심리학적 및 사회과학적 인간학을 형성하는 실증과학적 방향으로의 모색과 전망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인간학(안트로폴로기, Anthropologie)이라는 말은 처음에는 신학상의 용어로서 신적인 사항을 인간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 말은 16세기에는 인간에 대한 교설(敎說, 가르쳐 설명함) 일반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존엄과 본성과 속성들에 대한 교설, 인간 심리학 또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교설 등, 칸트의 인간학 이라는 말도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과학의 발달로 인해 안트로폴로기는 인간을 오로지 자연적 관점에서 연구하게 되었다. 인종학이나 민족학과 같은 자연인류학과 인간을 역사적, 사회적 존재로서 연구하는 사회인류학 내지는 문화인류학으로 세분화 되었고. 19세기 이후에는 그 경향이 점점 더 가속화 되며, 인류학자에 의한 두개골의 측정 등이 성하게 되는 반면 문화 인류학자에 의해 종교의례 등에 주목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그와 같은 인식론적 무정부상태에 맞서 과학에 의해 발견된 사실들을 중시하면서도 그것들을 철학적으로 다시 해석함으로써 지나치게 세분화된 과학들에 질서를 부여하고 인간의 가치를 지키고자 한 것이 철학적 인간학이다. 그런데 과학에 의해 발견된 사실들의 경우에 일차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동물을 포함한 자연계이다. 왜냐하면 서양의 전통에서 인간은 대체로 신과의 유사성에서만 논의되어 왔기 때문에 인간은 동물과의 실증적 대비를 통해 비로소 과학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철학적 인간학은 생물학의 이론들을 철학적으로 음미하고 그 연관에서 인간의 특수성을 특징짓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사고방식의 단서는 환경세계 개념의 중요성을 주창한 윅스퀼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생물의 종에는 각자에게 고유한 환경세계가 있으며 그것과 기능적 원환을 맺는 일종의 목적론적 관계에 생물의 행동이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생물학에 주체와 의미 개념을 도입하고 환경세계를 주관적인 것으로 보는 이 사상은 윅스퀼 자신도 인정하듯이 칸트의 사상에 가까운 것이다. 셸러는 동물의 그러한 환경세계 속박성에 맞서는 인간의 독자적인 존재 방식을 세계개방성으로 파악했다. 셸러에 의하면 인간이 인간인 까닭은 지능이나 기억 등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 환경이 세계라는 형태로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인간학을 과학적, 신학적 등으로 구분하고 그것들의 중심에 철학적 인간학을 위치 지었다. 이러한 세계 개념은 후설에 의해 인간의 지각과 행동에 언제나 현전하는 지평으로서 좀 더 정밀화되며 초기의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서도 인간은 세계-내-존재로서 언제나 세계를 형성하면서 세계와 함께 있는 것으로서 파악되고 있다.


<윤리학에서의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은 셸러의 주저로 간주 될 뿐 아니라 현상학 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기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 그 중심 사상은 셸러의 인간관 즉, 인간을 인식하는 존재나 의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근원적으로 사랑하는 존재로서 파악하는 인격론에 있다. 그 인격은 지향적 의식의 핵심인 자아이자 윤리적 가치의 담지자로서 반성(현상학의 가장 본질적인 방법)에 의해서도 절대로 대상화될 수 없다. 셸러에게 있어 사랑이란 앎이나 의지보다도 좀 더 선험적이며 좀 더 근원적으로, 앎과 의지를 근거 짓는 것으로서 사랑에 의해 세계가 인간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랑이나 다른 순수한 정의작용은 맹목이 아니라 순수한 가치인 선험적인 본질과 그 본질연관(가치질서와 윤리원칙)을 지향적 상관자로서 지니는바, 이들은 우리의 앎과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현시된다. 사랑은 셸러의 실질적 가치윤리학 및 정서 이론의 중심 개념이다. 가치에 관한 지향적 정서로는 가치에 대한 감득(感得, 느껴서 앎. 영감으로 깨달아 앎)과 그 높고 낮음에 관한 선취/후치와 같은 작용이 생각되지만, 사랑은 단순한 인식작용에 그치지 않고 가치 인식에 대해서 발견적 역할을 수행하는 지향적 운동이라고 생각된다. 즉 사랑은 어떤 인격에 주어지는 가치의 영역을 확대시키는 작용인바, 사랑의 운동에 의해서 그때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가치가 감득과 선취의 대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선취/후치는 셸러가 말하는 정서 작용의 하나이다. 어떤 가치가 다른 가치 보다 높다는 것을 파악하는 가치인식작용이 선취이며 보다 낮다는 것을 파악하는 가치인식작용이 후치이다. 그러나 먼저 가치의 보다 높음이 감득되고 이어서 그보다 높은 가치가 선취되거나 후치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가치의 보다 높음은 본질 즉, 필연적으로 선취에서만 주어진다. 요컨대 선취/후치가 가치에 대한 감득을 근거 짓는 것이다. 따라서 선취/후치와 노력작용으로서의 선택은 다른바, 선택도 역시 전자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나 어떤 가치가 보다 높다는 것은 그 가치가 선취되는 가치라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높음은 문제가 되는 가치들 자체의 본질에서 하나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셸러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가치들의 위계와 역사에서 변이하는 선취 규칙들을 보고 있다. 사랑은 지향적 운동인바, 그 운동에서 어떤 대상에 주어진 가치 A로부터 그 대상 보다 높은 가치가 출현하는 것이다. 

현상학적인 입장에서의 가치론에서는 가치의 객관성이라는 것이 감정의 지향적 대상으로 확보된다. 브렌타노의 경우는 심적 현상을 표상, 판단, 정의(情意. 인간의 성향을 나타내는 한 영역. 태도, 정서, 흥미, 신념, 의지, 가치관, 인성경향 등을 포함하는 심리적 특성을 말한다. 그 중에서 개성, 품성, 도덕성 등은 비교적 항구적이며 일관된 정의적 특성을 말한다)활동의 셋으로 나눈 다음 정의 활동의 지향적 관계로서, 사랑한다, 미워한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와 같이 주관적인 것으로 판단되어온 감정에서 지향성을 발견한 것이 브렌타노의 공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이후의 현상학운동에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발단이 되었다. 브렌타노에게서는 확실히 가치는 감정에 의해 지향되는 것이었지만 지향하는 측과 지향되는 측의 관계에 애매함이 남아 있었다. 그에 반해 셸러는 실재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념적 대상으로서 가치를 파악했다. 요컨대 감정이라는 직관에 의해 가치가 객관적, 선험적으로 감득된다는 것이다.      

그의 가치론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가치에는 형식적 본질 연관이 있고, 적극적 가치와 소극적 가치로 가치가 나누어지며 적극적 가치는 소극적 가치보다 고차적이다.      

(2)가치와 가치의 담지자 사이에 선험적인 연관이 있다. 예를 들면 가치적 윤리(선과 악)는 인격에 의해 담지 되며 쾌와 불쾌의 가치 또는 유용가치는 사건 또는 사물에 의해 담지되고 존귀와 비천과 같은 가치는 생물에 의해 담지된다.     

(3)가치는 감정에 의해 지향적으로 감득된다.      

(4)가치에는 절대불변의 가치 서열이 존재하며 선취 및 후치 안에서 주어진다. 이들 두 활동은 결코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 자체가 이미 이 두 활동 안에 근거 지어져 있다. 따라서 가치의 감득도 이 두 활동에 의해 근거 지어져 있다. 그러나 이들 활동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5)사랑은 감득할 수 있는 가치의 영역을 확장한다.(사랑의 창조성) 따라서 사랑은 가치의 인식작용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작용이다.     

(6)가치에는 네 가지 양태가 있으며 그것들 사이에 선험적인 서열이 있다. 즉, 가치 감득에 기초 지어진 가치인식의 작용에는 가치의 선취와 후치의 활동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작용에 의해 가치 서열 그 자체가 현시되는 것이다. 가치 서열은 Ⓐ쾌적 가치 Ⓑ생명(life, 살아 있음, 삶)가치 Ⓒ정신 가치 Ⓓ성(聖, 성스러움) 가치로 이루어지는데 좀 더 고차적인 가치는 좀 더 저차적인 가치보다 객관적으로는 영속성이 높고 주관적으로는 감득에 있어 만족이 좀 더 깊다고 간주된다. 가치 자체는 더 나아가 그 담지자뿐 아니라 감득의 작용으로부터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가치서열은 가치의 ‘선취 규칙’ 그 자체로부터 독립적으로 존립한다.

셸러에 따르면 니체는 생명가치를 가장 높은 위치에 놓았다는 점에서 이 가치서열을 잘못보고 있다고 하였다.     

생명가치와 정신가치에 관해 좀 더 해명하고자 하면, 데카르트가 주장하는 심신이원론에 대해 드 라메트리, 돌바크, 볼테르 등으로 대표 되는 프랑스 계몽주의는 생명의 심성(心性), 정신성을 부정하고 물질성 내지 기계론을 강조했다. 지성에 의해 인식되는 법칙성을 강조하는 이러한 합리주의적 생명관은 당시 대두하고 있던 시민층의 생활관에도 대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동으로서 낭만주의는 당연히 데카르트가 부정한 생명의 역동성과 유기적 통합성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피히테에 의하면 생은 인간적 정신에서 최고도에 달하며 직접, 현실적으로 체험되고 살아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 동시에 초개인적인 것으로 연속된다. 생은 여기서 자유인 동시에 필연이며 주관적인 것인 동시에 객관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낭만주의의 생명관은 후세의 딜타이에게서도 명료하게 발견된다. 즉 그에 의하면 ‘삶은 그 다양성과 깊이로부터 파악되지 않는바, 그는 생을 그 자신으로부터 이해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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