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간략한 나의 서양 회화사3

<실용적이지만 비실용적인>

by 늘심심

제 3편

인상주의에서 초현실주의까지


사진술의 등장으로 화가들이 기가 죽어 그냥 허송세월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재현의 영역이 이제 사진으로 넘어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물음 끝에, 드디어 시각의 인지적 과정, 더 나아가 이러한 과정이 인간 의식과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근대적 세계관의 시작임을 알리는 일임과 동시에 표현 대상, 주제, 기법 전반에 걸친 혁명을 가져다주었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익히 우리가 잘 아는 인상주의(Impressionism)였습니다.


'인상주의'라는 말 자체가 순간의 이미지라는 뜻과 강력한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 핵심일 것입니다. 처음 이 단어가 등장했을 때는 규칙성과 엄격성을 잃어버린 대단히 임시적인 그림이라는 비난의 뜻이 다분했습니다만, 오늘날에는 당대의 인식을 잘 드러내는 사조의 이름으로 잘 작동하고 있죠. 고흐의 강력한 심리 기제, 드가의 발레 동작 속 순간성, 모네의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표현 등은 이전 세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상이었고, '사조'라는 한 흐름 안에 묶어 놓았지만 각 화가의 개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사진술이 역설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더 잘 드러내는 장치로 전환되었던 셈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읽은 글이라 기억이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옮겨 보자면, 인상파가 형성될 시기 즈음 일본이 네덜란드와의 제한적 교역을 넘어서 여러 서양 제국에 본격적으로 문호를 개방하며 일본 특산 수입품이 유럽으로 유입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제일 수입이 많았던 물품 중 하나는 도자기였는데, 화가들이 주목한 것은 도자기가 아니라 바로 도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쌌던, 버려진 종이에 새겨진 목판화였습니다. 이 목판화는 "그림은 그림 안에서의 고유한 문법에 의해 작동되는 것이지, 꼭 세계를 반영하거나 모사할 필요가 없다"는 동양의 관념적 예술론의 정수를 당시 화가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자포니즘(Japonisme)은 화가들이 제각각의 표현법으로 독자적인 예술을 개척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단적으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의 물랭루즈 카바레를 위한 석판화를 보면 일본 에도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키요에(Ukiyo-e) 목판의 표현법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일본 에도 시대의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의 목판화인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The Great Wave off Kanagawa, 神奈川沖浪裏)의 이미지를 차용한 영화 포스터도 있었죠. 바로 영화 『헤어질 결심』 말입니다. 정훈희, 송창식의 주제가도 유명했지만, 저는 사실 영화가 상영되기 전 이 포스터를 보고 복선을 무지하게 많이 깔아놨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 호쿠사이의 목판화는 한 분석에 따르면 파도를 바라보는 시점이 수십 개, 또 다른 분석은 1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많은 시점을 영화의 복선과 매치시켜 차용한 셈이죠.


한 화면에 여러 개의 시점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딘가 닮지 않았나요? 네, 맞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시점을 달리하여 조립된 이미지들이겠습니다만, 사실 먼저 시작한 것은 폴 세잔(Paul Cézanne)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는 엑상프로방스의 산 아래에서 보이는 풍경을 정말 지겹도록 그리는데, 자세히 보면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여러 개의 시점이 겹쳐져 있습니다. 특히 정물에서는 두드러집니다. 시점을 섞어놓음으로써 과일들은 마치 테이블 밑으로 떨어질 듯 위태롭게 위치해 있죠. 이러한 다중 시점(Multiple Perspectives)은 유일한 원점에서 파생되는 원근법적 시각의 탈피라는 개념으로 단순화시켜 볼 수 있는데, 이는 절대적인 유일자로서의 "신은 죽었으며" 이제 그 자리가 '천 개의 눈'을 가진 다양한 관점들로 대체될 것이라는 동시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기본적 철학과도 일치합니다.


또 하나 이 시기의 회화적 특징 중에 점묘파(Pointillism)들은 원색을 병치하여 뇌 신경 안에서 색상이 혼합되어 순도 높은 색을 인지하는 방식을 썼고, 이 방식을 그대로 쓰지는 않았지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 안에서도 그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과학적 사고가 회화 안에도 이미 스며들어 갔다는 방증이 되겠습니다.


이러한 다중 시점적 회화 구축 방법과 과학적 태도가 말해주는 것은, 화가들이 드디어 도제 시대의 전통적 관념 및 기술과 완전히 결별하여 자신만의 눈, 자신만의 태도, 자신만의 기법으로 세계를 비추는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술 작품이나 예술가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고유한 현대적 정체성의 기초를 놓은 시기라고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당시 음악의 상황을 살펴보면 바흐로부터 기초가 다져지고 고전주의 음악에서 완성된, 으뜸음으로 회귀하는 조성의 법칙이 서서히 붕괴되어 불협화음으로 향하는 작품들이 출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양 음악의 이러한 엄격한 법칙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는 바로크 시대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를 들으면 장엄한 우주의 공간 속에서 별빛들이 명멸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하여튼 이런 조성 음악의 형식 붕괴라는 점은 회화에서 원근법의 붕괴와 일맥상통하며, 이후 모든 음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 쇤베르크의 12음계(Twelve-tone technique)로 향하는 길을 닦게 됩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유명한 헬리콥터 비행 장면에 나오는, 장엄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듯한 「발퀴레의 기행」이 포함된 『니벨룽겐의 반지』를 작곡한 바그너의 음악에서도 그와 같은 경향을 찾을 수 있고, 영화 『베니스의 죽음』에 쓰인 「아다지에토」를 작곡한 말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중에서도 드뷔시는 인상주의와의 접점을 가장 강하게 볼 수 있는 음악가입니다.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 『바다(La Mer)』의 악보 표지 그림에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가 쓰인 것은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그와 동시에 오랫동안 두루뭉술하고 폭넓은, 신화와 과학이 합쳐진 개념이자 실천적 학문이었던 점성술과 연금술은 16~18세기를 거치며 각각 천문학, 화학, 생물학, 공학 등의 학문으로 분과되어 갔고, 19세기에는 그 결과들이 엄청나게 증폭되어 현대 학문의 기초를 놓게 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또한 19세기에 널리 유행하였던 심령술의 자동기술법(Automatism)은 후에 정신분석학과 결합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는 초현실주의(Surrealism)의 핵심 기법으로 변환되는 예에서도 근대적 지성의 힘이 발휘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 초현실주의가 나와 버렸군요. 이 사조를 말하기 전에 좀 둘러가야 하는 길이 있는데 말입니다. 다시 그럼 인상파 이후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인상파와 점묘파로 이어지는 시기가 어떤 거대한 분열의 예고편이었다면,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미술사의 문맥은 그야말로 기존 세계관의 해체와 새로운 세계관의 등장을 알리는 여러 편으로 구성된 드라마의 전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야수파(Fauvism)는 색채를 형태에서 해방시켜 앙리 마티스의 후기 작품에서 극단적으로 그 성과가 발현되고, 미래파(Futurism)는 산업혁명으로부터 비롯된 기계와 속도의 운동을 표현했으며 브라크와 뒤샹의 초기 작업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흔든 역사적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진동은 멀리 동양에까지 전해진 큰 사건이었지만, 그 문화사적 의미에 대해 여기에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현재 글의 흐름에 큰 도움도 안 되고 저의 할 일이 아니라 생각되어 건너뛰겠습니다. 대신 세계대전을 피해 스위스 취리히(Zurich)로 모여들었던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 다다이즘(Dadaism)으로 이어 갑니다 .


'다다'라는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 왈가왈부 말이 많은데, 제 기억에 있는 것 중에 제일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이 양반들이 함께 모여 자신들이 표방하는 집단적 이념에 대해 무엇이라 명명해야 할 것을 결의하고 갑론을박하다가, 학창 시절에 우리 모두가 한 번은 해본 적이 있는 '사전 게임'으로 결정하기로 합니다. 사전으로 하는 게임은 다양합니다만 이때 쓰인 사전은 프랑스-독일 사전이었고, 무작위로 선택된 단어를 우리의 공식 명칭으로 하자고 해서 나온 것이 '다다'라고 합니다.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지 않은 것은 공식 기록 없이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을 여기저기서 다양하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연성에 기댄 다다이즘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일화여서 저는 이 설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시인 위고 발, 트리스탄 차라 등 문인들이 많았고 화가로는 아르프 부부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이후 파리에서 앙드레 브르통이 이 운동에 참여했고 후에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끌게 됩니다.


1차 세계대전이 촉발시킨 기존 세계관의 침몰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이 그룹의 태도는 후에 여러 나라에 걸쳐서 새로운 예술적 운동을 낳기도 했습니다. 요즘 마블 영화에서 이것저것 연결해서 세계관의 확장이다 뭐다 하는데 다다는 세계관 자체를 뒤엎어버린 혁신적 예술운동이었고 1918년 트리스탄 차라가 밝힌 다다선언문의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옮겨 드립니다.


"다다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사람들이 이것이 부질없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단어를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최초의 반항의 외침만으로 충분하다. 반면에 긍정을 요구하는 모든 것은 언어학적 차원의 복잡함일 뿐이다."

"나는 모든 체계에 반대한다. 가장 받아들일 만한 체계는 원칙적으로 그 어떤 체계도 갖지 않는 것이다. [...] 나는 이 선언을 쓴다, 한 번의 신선한 호흡 속에서 서로 반대되는 행동들을 동시에 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행동에 반대한다; 지속적인 모순을 위해, 또한 긍정을 위해서도, 나는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으며 설명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양식(bon sens)을 증오하기 때문이다."

"다다; 논리의 폐기, 창조의 무능력자들이 추는 춤: 다다; 우리 하인들이 가치를 위해 설치해 둔 모든 위계와 사회적 등식의 폐기... 자유: 다다 다다 다다, 일그러진 색채들의 비명, 상반되는 것들과 모든 모순, 기괴함, 비일관성들의 뒤엉킴: 그것이 바로 삶이다."


위의 선언문에서 비문에 가까운 언어 구사로 언어의 무의미, 체계의 반대, 논리의 폐기를 주장했는데, 언어 구사와 핵심 내용 등을 볼 때 하나의 예술 운동으로서의 결속성과 지속성이 담보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당연히 다다이즘은 사조로서 오랜 기간 존속하지 못했지만 다음 시대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쳐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문으로 이어지고 뉴욕으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의 변기 『샘』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다다에 참여하고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문도 발췌해서 먼저 옮겨 드립니다.


"초현실주의, 남성 명사. 구두(口頭)로든, 기술(記述)로든, 혹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사고의 실제 기능을 표현하고자 하는 순수한 정신적 자동기술법. 이성에 의해 행사되는 모든 통제가 부재하고, 모든 미학적 혹은 도덕적 선입견에서 벗어난 사고의 받아쓰기."

"나는 겉보기에는 그토록 모순되는 두 상태인 꿈과 현실이, 일종의 절대적 현실, 즉 말하자면 초현실(surréalité) 안에서 미래에 해소될 것이라고 믿는다."

"당신의 정신이 스스로에게 집중하기에 가능한 한 유리한 장소에 자리를 잡은 뒤, 쓸 도구를 준비하라.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수동적이거나 수용적인 상태가 되어라. 당신의 천재성, 당신의 재능, 그리고 다른 모든 이들의 재능을 도외시하라. [...] 미리 정해진 주제 없이 빠르게 써 내려가라. 멈추거나 다시 읽어보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을 만큼 충분히 빠르게."


선언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자동기술법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세기에 유행했던 심령술의 기법에 정신분석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꿈을 결합시킨 이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글의 형식으로 차용하여,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이 상황 자체도 당시가 철학자 푸코가 말한 '에피스테메(épistémè)'로 인한 인식 전환의 문턱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꿈이라는 주제는 회화의 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이렇듯 초현실주의는 현실 세계의 배후에서 현실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초-현실을 다룸으로써 회화의 소재는 이제 꿈과 의식, 무의식과 같은 주제들로 옮겨가게 되는데, 회화에서 현재의 우리가 많이 접하고 친숙한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의 작업으로 형상화됩니다. 달리의 축 늘어진 시계와 마그리트의 파이프 등이 유명하지만 이 그림에 대해서 따로 다른 글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하고, 제가 초현실주의적 상징의 대표적 선구자로 꼽고 싶은 것은 19세기 시인 로트레아몽의 구절입니다. 훗날 초현실주의자들에게 큰 영감을 준 그는 자신의 시집 『말도로르의 노래』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을 남겼습니다.


"재봉틀과 우산이 수술대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만큼이나 아름답다." (Beau comme la rencontre fortuite sur une table de dissection d'une machine à coudre et d'un parapluie.)


시 안에서 표현된 이색적 병치는 이후 막스 에른스트의 작업과 사진가 만 레이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였고 일상적 사물이 미술의 오브제로 치환되는 이론적 뒷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예술이 큰 변환을 이루고 있는 와중에 과학계에 큰 사건이 터졌으니 바로 제5차 솔베이 회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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