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내 마음을 세차게 후려친다.(미야글빵연구소 졸업숙제)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
-박노해-
사랑이 부끄러울 때도 있나 보다
아빠와의 소소한 일상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았던 커다란 사랑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장 듬직하고 소중한 사랑이었는데,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했다. 딸을 향한 진짜 아빠의 사랑이 어떤 건지, 너무 어려서 몰랐나 보다.
고3 때였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면 어느새 11시가 넘었다. 여고 앞에는 아빠들의 차가 일렬로 쭉~ 줄지어 서 있었다. 여학생들은 모두 자동차를 타고 집에 가는 것 같다. 분명 그건 아닐 텐데 난 무심한 척 늘 소외된 마음으로 어두운 길을 홀로 걸었다.
그 당시에 엄마는 식당일로 늦은 밤까지 일하셨고, 아빠는 당뇨 합병증으로 한 달에도 수차례 병원 신세를 지셨다. 눈도 잘 보이지 않았고 건강한 치아대신 틀니를 사용하셨다. 불행은 손잡고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했던가! 설상가상으로 넘어지셔서 다리가 부러졌고 목발에 의지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아빠가 학교 앞으로 마중 나오셨다.
혼자 밤길을 걷는 딸의 축 처진 어깨가 마음에 걸리셨던 걸까. 아빠는 목발을 짚고 30분 도보거리를 목발을 사용해 걸어오신 것이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다리를 두 번 다쳐서 목발을 사용해 보니 30분 거리를 걸었다는 것은 2배~3배의 시간이 필요했고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학교 정문 앞, 목발에 의지한 아빠를 보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작은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었다.
다른 아빠들은 차 안에 앉아 있고, 단정한 모습으로 딸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내 아빠는 뒤뚱뒤뚱 절뚝이며 서 있었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사춘기 여고생이었던 나는 남이 볼세라 기죽은 목소리로 "왜 왔어?"라고 말한 후 자동차로 점령된 여고 거리를 잔뜩 움츠린 채 푹 숙인 고개로 빠져나오기에 급급했다.
아빠는 목발을 짚고 힘겹게 내 뒤를 따라오셨다. 인적이 드문 곳에 가서야 아빠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보았고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아빠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아빠, 힘든데 왜 왔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울분을 토해냈다.
"엄마! 아빠가 저런 모습으로 학교에 오면 어떡해 나 너무 창피하잖아!" 소리를 꽥 지르고는 문을 쾅 닫고 방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밤, 아빠는 달빛처럼 조용히 내 밤길을 밝혀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몰랐고, 오히려 아빠의 사랑을 매몰차게 몰아냈다. 그 일은 내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사무치는 기억이 되었다. 아빠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이제 아빠는 내 마음의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이 되어 가장 밝게 빛나지만 그 별을 바라보는 눈길은 깊은 슬픔에 젖어 있을 뿐이다.
지금 내게는 영영 이루어지지 않을 소박한 소망이 있다.
아빠 손 잡고 오솔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 평범한 시간이 내겐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 될 것이다. 그때는 몰랐던 아빠의 사랑을 떠올리며 이제는 그 길을 함께 걷고 싶다.
사랑은 가까이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처럼, 곁에 있을 때는 그 사소한 일상 속에 얼마나 값진 사랑이 숨어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진짜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들로 채우는 것임을. 사소한 것에서 싹트는 것임을 하늘의 별이 되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을 때. 너무 늦게 깨닫고야 말았다.
그리고 1년도 채 안되어 돌아가실 때 아빠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계속 내 마음을 때려 아프게 한다.
"쌀쌀맞은 년..."
""아빠 미안해요,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어요 "
이 말이 하늘에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