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지문이 사라졌다.

정윤 작가님의 소설 기초 글쓰기 숙제 - 6강 간결하게 쓰기

by 이열하


엄마의 지문이 사라졌다


엄마와 함께 주민등록초본을 떼러 행정복지센터에 갔다.

담당 공무원의 안내에 따라 지문 인식기에 엄마의 엄지손가락이 올라갔다.

“지문 인식이 안 되네요. 검지로 해보시겠어요? 중지는요? 다른 손도 한번 해보세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엄마는 대여섯 개의 일회용 밴드가 덕지덕지 붙은 손을 내밀며 힘없이 말씀하셨다.

“다른 손가락은 일하다 다쳐서 다 이 모양이라서요….”

결국 공무원은 신분증과 몇 가지 질문으로 본인 확인을 마쳤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가슴 한구석이 찡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엄마의 손이 이토록 닳아 없어질 때까지 나는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무심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엄마는 어느새 칠순을 넘긴 노인이 되어 있었다. 곱던 눈가와 입가에는 자글자글한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다. 가끔 엄마를 뵐 때면 그 주름이 못내 애처로웠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엄마에게 보호받고 챙김을 받고 싶은 결코 어리지 않은 딸의 마음이 컸다. 하지만 오늘, 엄마의 지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맞닥뜨린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할 차례라는 것을. 힘없이 주름진 엄마가 오롯이 내게 기댈 차례라는 것을 말이다.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맞나 보다. 점심 메뉴를 묻자 엄마는 "간단하게 갈비탕이나 먹자"고 하시면서도, "어디 소고기 구워 먹는 데는 없나?" 하며 슬며시 속마음을 내비치셨다. 내가 얼른 검색을 해서 소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하니, 엄마는 "비쌀 텐데..." 하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은근히 입가에 미소가 번지셨다.

자식 주머니 사정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기에 곧장 소고기 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정말 맛있게 드시며 "딸 아니면 이런 소고기 구경도 못 한다. 아들놈들 다 소용없다"며 서운했던 마음을 슬쩍 털어놓으셨다. 식사를 마친 뒤엔 기어코 커피는 당신이 사겠다며 지갑을 여신다. 맛있는 걸 얻어먹은 딸에게 미안함이라도 느끼신 걸까.


지문이 닳아 없어지도록 살아온 그 모진 세월은 분명 자식들을 키워내기 위해 당신의 몸과 맞바꾼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이가 드니 그 지문 없는 손으로 자식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싶어 마음이 아렸다.


엄마의 지문이 사라진 걸 나는 이제야 알았는데, 내 형제들은 알기나 할까. 이 희생이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기 위한 숭고한 대가였다는 것을 말이다.


효도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는 커다란 집이나 자동차보다 달콤한 사탕 하나, 함께 놀아주는 시간에 행복을 느낀다. 나이가 지긋한 부모님의 마음도 어린아이처럼 소박한 것에 더 감동을 느낀다. 맛있는 것 함께 먹기, 적적할 때 바람 쐬어드리기, 그리고 다정한 말동무가 되어드리기, 살아계실 때 일상의 시간을 기꺼이 공유하는 것, 그것이 노부모가 바라는 진짜 효도가 아닐까.

지문과 맞바꾼 세월에 비하면 참 소박하고도 간절한 바람이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말하고 싶다. 부모님의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지기 전에, 우리의 일상 속으로 부모님을 더 자주 초대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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