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며 살고 있을까 6화

기다려주는 사람은 왜 늘 부족해 보일까


기다려주는 사람은
대체로 답답해 보인다.

말이 느리고,
결정이 늦고,
확실한 결론을 잘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현실 감각이 없다.”
“결단력이 부족하다.”
“너무 감정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살면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속도가 빠른 사람을
유능하다고 느낀다.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결론을 즉시 내리고,
정리를 잘하는 사람.

문제는
사람의 삶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미 여러 번 결정을 미뤄본 끝에
그 자리에 서 있다.

누군가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에서는 아직

하루를 겨우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정을 다 알기도 전에
속도를 요구한다.

“이제 정리해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결국 답은 하나야.”


기다림은

능력이 없어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기다림은
사람을 감당하려는 의지에 가깝다.

상대의 속도를
내 속도에 맞추지 않고,
그 사람의 리듬을
그대로 존중하겠다는 선택.


그래서 기다림은

언제나 비용이 든다.

기다리는 사람은
손해 보는 쪽에 서 있게 된다.

대화는 길어지고,
결론은 늦어지고,
때로는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기다림은
성과로 증명되지 않는다.

다만 관계로 남는다.


나는 예전엔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정리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언을 빨리 해주고,
현실을 정확히 말해주고,
상대가 덜 흔들리게 도와주는 사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떠나보낸 관계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말은 많았지만,
기다린 시간은 거의 없었다.

기다림은
상대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곁에 남아 있기 위한 태도다.


그래서 기다림에는
조급함이 어울리지 않는다.

기다리면서도
언제 바뀔지 계산하고 있다면,
그건 기다림이 아니라
유예에 가깝다.

요즘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답답한 건,
이 사람이 느려서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빨리 가고 있어서일까.


이 질문 하나로
말의 속도가 조금 늦춰진다.

기다려주는 사람은
늘 부족해 보인다.

눈에 띄는 성과도 없고,
확실한 답을 주지도 않으며,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이
가장 오래 곁에 남아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유능해 보이는 사람보다는
머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삶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도,
그 자리를
함께 견딜 수 있는 사람으로.

작가의 이전글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며 살고 있을까 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