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관계도 멈춘다
어느 순간부터
대화가 빨리 끝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질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는 곧장 대답한다.
묻기보다 정리하고,
들어보기보다 결론을 말한다.
그게 효율적이라고 믿으면서.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
확신이 들어온다.
“그건 이미 답이 나왔잖아.”
“그건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
“결국 같은 얘기야.”
그 말들이 나오는 순간,
대화는 멈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관계가 멈춘다.
질문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상대를 사람으로 남겨두기 위해 필요하다.
질문이 있다는 건
아직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질문을
종종 불안의 신호로 여긴다.
확신이 있으면 질문이 없어야 하고,
질문이 많으면 중심이 없는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질문을 줄인다.
그리고 그와 함께
관계도 줄어든다.
생각해 보면
내가 멀어졌던 관계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의견이 달라서가 아니라,
질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을
더 들어볼 이유가 없다고 느낀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이야기할 필요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질문은
답을 얻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질문은
“나는 아직 네 이야기를
들어볼 준비가 있다”는 신호다.
그래서 질문이 사라지면
상대는 더 말하지 않는다.
말해 봐야
이미 결론이 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확신이 깊어질수록
질문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필요해진다.
왜냐하면 확신이 깊을수록
말의 무게도 커지고,
그 말이
사람에게 남기는 흔적도 커지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대화가 막히는 순간에
이 질문을 꺼내려 애쓴다.
내가 정말 다 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더 묻는 게 두려운가.
이 질문 하나로
대화가 다시 시작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관계가 완전히 닫히는 건
조금 늦출 수 있다.
질문은
상대를 흔들기 위해 던지는 게 아니다.
함께 남아 있기 위해
조심스럽게 내미는 손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확신을 말하기 전에
질문을 하나 남겨두고 싶다.
그 질문이
상대를 설득하지는 못해도,
관계를 끝내지는 않게 해 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