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이렇게 불편한가
사랑은
대체로 좋은 말처럼 들린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막상 사랑을 하려 하면
생각보다 불편하다.
말을 줄여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이길 수 있는 순간에도
물러나야 할 때가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사랑을 말하면서도
막상 그 자리를 피한다.
사랑이 불편한 이유는
그것이 감정이 아니라
태도이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을 때만 가능한 일이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호감에 가깝다.
사랑은
상대가 내 기대를 어겼을 때,
내 기준을 흔들었을 때,
내 확신을 불편하게 만들 때
비로소 시작된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이해로 착각한다.
“이해해 주는 게 사랑이지.”
“다 받아주는 게 사랑 아니야?”
하지만 이해는
상황이 허락할 때만 가능하다.
여유가 있을 때는 이해가 되지만,
지치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도 이해다.
사랑은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에도
관계를 쉽게 정리하지 않는 쪽에 가깝다.
사랑은
옳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옳음이
사람 위에 서지 않게 하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사랑은
항상 옳은 편에 서 있던 사람에게
유난히 불편하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여기까지는 선을 넘은 거야.”
그 말들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사랑은 한 발 물러선다.
돌이켜보면
내가 사랑을 가장 많이 말했던 순간들은
사랑을 가장 적게 했던 순간들이었다.
말은 쉬웠고,
선언은 분명했지만,
관계 앞에서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사랑은
말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걸
그때는 잘 몰랐다.
사랑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기다려도 변하지 않을 수 있고,
머물러도 멀어질 수 있으며,
애써도 상처가 남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항상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한다는 건,
사람을 성과가 아니라 존재로 대하겠다는 선택이다.
요즘 나는
사랑을 이렇게 다시 정의해 본다.
사랑은
상대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상대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내 곁에 머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불편하고,
그래서 더 어렵다.
사랑은
우리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다만 사람을
조금 더 쉽게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그 정도면
충분한 변화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