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 저장된 이름 덕분에~
매일 퇴근시간이면 회사에서 전철역을 걸어가며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집 근처 전철역에서 그이와 만나는 시간을 정하기 위한 정해진 수순이다.
사실 우리 집은 천왕역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밖에 안 되는데
매번 역에서 만나는 번거로운 일을 자처한다.
전철이 조금 연착해 늦으면 늦는다고 구박, 삼대족발집 앞 도로가 정차하기 복잡하니
빨리 오라고 재촉까지 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몇 정거장을 태워 주면서 마누라 퇴근을 시켜준다고
가끔 생색을 내기도 한다.
태워 주는 건 맞긴 맞으니까.
근데,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매일 저녁 약속 시간을 잡느라 통화하면서 서로 민망하게 웃곤 한다.
그는 내가 전화를 걸면 매번
“어! 이쁜 마누라”하고 응답을 한다.
그 이쁜 마누라란 표현이 얼마나 찔리던지......
그이가 이쁜 마누라라고 하는 이유는 그이 핸드폰에 저장된 내 이름 때문이다.
<아무개>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무적이고
뭔가 재밌는 작명을 한다고 고민해서 저장한 이름이 ‘예쁜’도 아닌 ‘이쁜 마누라’다.
덕분에 내가 전화하면 딱히 할 말이 없는 그가 그렇게 불러 준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고, 말이 씨가 된다고
이쁜 마누라라고 불러 주니 화를 내기도, 언짢은 소리 할 일도 줄어든다.
특히 저녁 퇴근 시간에는
참. 나는 이쁜 마누라에 화답하며 ‘어 멋진 남편’이라고 맞장구치곤 한다.
내 핸드폰에 저장된 남편 호칭은 ‘나의멋진남편누구씨’다.
어느 날 새 핸드폰을 장만하면서 연락처를 저장하다가 지은 이름인데
나쁘지 않고, 그날 이후 일부러 수정하게 되지 않아 그대로 둔 게 ‘멋진남편’이다.
당시엔 역설적으로 <멋진남편>이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담아
저장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작명 때문인지 그 당시 보다 점점 더 멋진 남편으로 변모하고 있다.
60점이었다면 75점쯤 되어 간 달까?
아무튼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 덕에
나는 이쁘지 않지만 매일 이쁜 마누라 소리를 듣고
그이는 매일 멋진 남편이 되어 살아간다.
딱히 할 말이 없으니 호칭을 핑계로 매번 실없이 웃어 본다.
비록 이쁘고 멋지지 않더라도
즐거운 작명은 살아가는 활력소가 되어 주는 것 같다.
'오늘도 집에 갈 때 전화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