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가 인덕션을 샀다.
이사 온 후 가장 크게 바뀐 게 있다.
오늘도 계란 프라이를 하려다 스크램블을 만든 건 순전히 새로 산 인덕션 때문이다.
이사 오기 전까지 가스불로 음식을 했는데 그이의 깜짝 선물로 인덕션을 쓰게 됐다.
언젠가 남편 친구가 ‘다른 건 몰라도 가스는 바꿔라. 여자들 폐암의 원인 중 상당 부분이 주방 가스란다. 그러니 꼭 바꿔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평소 내가 하는 말은 귀 담아 듣지도 않으면서 친구가 하는 말엔 귀가 솔깃했던 것 같다.
사실 가스가 폐암을 유발한다는 기사가 자주 언급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긴 하다.
그러나 살다 보면 가전제품 바꾸는 게 작은 일이 아니고 특히 늘 사용하던 가스레인지를 바꿀 생각은 웬만하면 못 하고 산다. 평생 가스 불을 쓰니 안전에 둔감해지고 불편한 줄 모른달까? 이사나 간다면 모를까?
가끔 다른 집이나 콘도에 가서 인덕션을 사용하려면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금방 끓지도 않고, 불꽃이 안 보이니 조리 상황 가늠도 어려운데 인덕션이 뭐가 좋냐며 괜히 비아냥거린 적도 있다.
뭣도 모르면 용감해진다고,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다른 것’을 ‘나쁜 것’으로 일반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사양이 좋은 제품은 가스보다 빨리 끓고 안전한데 일반 콘도에 있는 제품은 인덕션이라기보다는 하이라이트 기능의 제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간이용이니 저렴한 것을 설치했을지도...
새로 이사 온 집에 가스레인지가 없어 뭐든 사야 했는데 그이가 나 몰래 깜짝 이벤트로 인덕션을 주문했다.
웬만하면 이벤트 같은 거 안 하는 사람인데 나이가 들어가니 안 하던 일들을 하나 둘 시도한다.
인덕션만 사면 끝이 아니고 조리기구도 인덕션용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건 미처 몰랐단다. 여자들은 그 정도는 상식으로 아는데 관심 없는 그이는 몰랐을 수 있다.
화력이나 화구에 따라 가격이 다르고, 인덕션이나 하이라이트냐 방식에 따라 가격도 조리 기기도 달라야 하는데 인덕션 1구. 하이라이트 1구짜리를 구입했단다.
내가 아무리 살림을 게을리해도 그렇지, 일반 가정집에선 그래도 3구는 되어야 수월한데~
생전 처음 마누라 건강을 위해 인덕션을 샀다는 데 깜짝 놀라며 좋아라 해도 모자랄 판에 ‘전용 그릇으로 바꿔야 하는데’. ‘화력이 적은 걸 샀네’ 등등은 속으로만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가방이나 장신구 선물이라면 몰라도 인덕션은 미리 상의를 하고 구입해야 하는 물건인데,
뭐라 하면 ‘생각해서 샀는데 잔소리한다고, 다음부턴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고 할 것 같아 ‘고마워. 잘했어’라고 하고는 꾹 참았다.
그이도 구입 후 자세히 알고 보니 너무 콤팩트 사이즈를 구입했다 싶은지 이용해 보고 좋으면 더 좋은 거 사자고 넌지시 이야기한다.
어쨌든 배달된 인덕션을 사용하려니 당장 냄비도 사고 프라이팬도 샀다.
새로 장만한 사양 낮은 인덕션에 어울리게 나도 작고 실용적이고 저렴한 걸로^^
제품이 오자마자 설명서대로 세척하고 그이에게 자세히 설명을 했다.
이쪽 부분엔 이 용기로, 저 쪽 부분엔 저 용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본인이 구입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내 설명에 더 관심 갖고 귀 기울이는 것 같았다.
어쩜 그이가 나보다 더 자주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요즘 낯선 것들과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며 산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고 중요한 과정을 익혀 가면서.
오늘 아침엔 김칫국은 인덕션에 끓이고 하이라이트에 계란 프라이를 하려다 망쳐서 스크램블을 만들었다.
계란프라이와 스크램블은 물성이 정말 다르지만 무늬는 스크램블을 닮았다.
국적 없는 '스크램블 계란 프라이'를 먹던 남편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계란프라이가 어떻게 이렇게 되냐”며 잔소리를 한다.
나도 덩달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머.
나도 아직 자기가 사 준 인덕션이 익숙지 않아서 그래”라고 핑계를 댔다.
당분간 우리는 새로 장만한 인덕션 놀이에 몰두할 것 같다.
제대로 된 계란프라이가 완성될 때까지.
(다음엔 사진을 찍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