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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오기 Mar 09. 2023

'마음을 비우세요', 그 후!

승진에 누락된 줄 알았는데 승진에 포함됐다.  

 지난호에 조직개편이니 승진이니 하는 글을 푸념처럼 하소연하듯 쓴 적이 있다.

그때. 딱 5일 방황하고

나의 의지를 확실히 내비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무심히 지냈다.


다 누군가의 뜻이겠거니 하고...

마음을 비웠달까?

포기했달까?

차라리 뭔가 결정되면 내 거취를 결정하는 게 쉬울 것 같았다.

솔직히 여러 가지 변수에 대비할 마음가짐을 했더니 오히려 편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던 룰을 깨고

내가 승진 명단에 포함 됐다.

55세 이후는 절대 승진 안 시킨다고 했는데

만 나이로 적용한 걸까? ㅎㅎ


나이의 핸디캡을 딛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짧은 근무 기간을 극복하고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회사를 다닐 수 있게 됐다.

그것도 팀장에서 본부장으로 승진을 해서.

(알고보니 직급 인플레 현상이 벌어졌다. 고참 팀장은 대부분 본부장으로 ㅎㅎㅎ)


경력사원이라 예외를 적용한 걸까?

가능성을 염두에 둔 걸까?

사실 그 누구보다 애사심은 충만한 직원이니...


나는 아직도 20대 때 근무했던 회사의 제품을 사고

그 회사의 홍보대사인 양 산다.

그래도 내 고향 같은 회사고 12년을 밥 먹여 준 회사니까

안 좋은 신문기사가 나오면 내 맘이 괜스레 불편해진다.


누군가 그랬다.

있을 땐 모르지만 그 사람이 없을 땐 그 사람의 진가가 나타난다고

내가 없을 때 느껴질 빈 자리를 가늠해 보았나 보다.

난 어느새 더하기 빼기가 명확한 존재가 되었나 보다.

아직은 더하기에 효용이 있는 인물이라는 건가?


난생처럼 오기를 부렸다.

'아님 말고' 식의.


과거 한 번도 부려보지 못한 오기를 내 인생에 처음으로 부려 보았다.

어쩜 오기보다 객기?, 단호함?, 자신감?

더 이상 초라해지기 싫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는지도.


사실 모든 걸 여기 노출할 수 없음이 아쉽지만

'도 아니면 모' 식으로 생각했다.

아직 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게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픈 로망도 있었다.

직위. 신분. 그런 것 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박한 삶에 대한 동경이랄까?

학교가 주는 바쁜 일상 속의 짧은 여유가 주는 활력소랄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에 대한 향수가 있었다.


그곳에서 다시 아이들 소리를 듣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나 보다.


다시 그림책을 읽고

다시 악다구니를 하면서도 즐거운 묘한 반전을 기대했었나 보다.

그 맘을 알기라도 한 걸까?


암튼 내가 아직 쓸모가 있나 보다.

막무가내로 애사심만 많은 오십 중반의 나.

아직도 내가 삼, 사십 대인 줄 알고 착각하는 오지랖 팀장.


스피드가 빠르지는 않지만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업무를 사랑하는 열정이 남아 있다.

(언제나 강조하지만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도는 거니까 모든 해석은 내 중심으로 한다)


아직 내가 이 곳에 남아야 할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나를 이곳에 남아 있게 하는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직위. 호칭은 사실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내 일은 비슷할 테니.

평소 하던 일을 그대로 할 것이다.


마냥 좋을 줄 알았던 승진이 잠시 나를 뒤돌아 보게 하고

'사는 게 뭔지? 승진이 뭔지' 하고 멈칫거리게 한다.

어쩜 이것도 남아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객기일지도.


56세에 느껴보는 '승진'이라는 단어가 싫지 않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엄마 아부지.

제가 승진을 했어요.

거기서 다 보시고 계신 거지요?

사실 가장 먼저 소식 전하고 싶은 분들은 바로 엄마 아부지랍니다.

 

저 계속 열심히 할게요.

엄마 아부지 딸이어서 고맙습니다.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저는 농군의 딸이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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