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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맥주와 로맨스 영화

캔맥주와 제목에 끌려서 <첫눈에 반할 통계적 확률> 이라는 영화를 보다

by 따오기

술을 마신 지 꽤 오래됐다.

모임에 가도 점점 술 대신 차를 마시는 문화로 바뀐 지 오래다. 지난 연초 모임에서 한두 번 마신 이후로 한동안 마실 일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늦게까지 영업하던 주점이 점점 사라지고, 게스트하우스나 펜션의 숫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웬일인지 슈퍼에서 간단히 장을 보다 주류 코너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캔맥주 매대를 훑었다.


‘그래, 기분이다. 딱 한 캔만 마셔보자.’

집에 도착하자마자 싱싱한 딸기와 구운 김을 거실 테이블에 놓고, 혼자 시원한 캔맥주를 마셨다. 그이는 “염증도 많다면서 몸에도 좋지 않은 술을 왜 일부러 마시냐”라고 지청구를 한다.


맥주를 마시다가 뭐라도 볼까 싶어 넷플릭스를 습관적으로 클릭했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봐서인지, 안 본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원래 관심 없는 주제는 없는 콘텐츠나 마찬가지니까.


제목에 끌려서, 그리고 캔맥주에 취해서 <첫눈에 반할 통계적 확률>이라는 영화를 플레이했다. 로맨스 영화인데, 시작하자마자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이가 들어도 로맨스 영화는 언제나 내게 1순위다.


영화는 런던행 비행기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남자 주인공 올리버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통계를 중시하는 사람이라 예측할 수 없는 서프라이즈를 싫어한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은 주로 주변 사람과의 이별이나 건강 문제일지도... 영화에서도 암마의 암 발병이나 연인과의 실연이 예측하지 못한 서프라이즈로 그려진다. 그러나 비행기 안에서 만난 그녀와의 서프라이즈는 예외라나?

여자 주인공 해들리는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다. 문과적 성향에 다소 덤벙대고, 비행기 시간을 4분 늦어 다른 비행기를 타는 걸 보면...

숫자로 설명하기 좋아하는 통계학 전문가와 감성적이고 문과적 성향을 가진 여주인공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남자 주인공은 모든 과정을 수치로 나열하지만, 사랑은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다. 특히 ‘첫눈에 반할 통계적 확률’이야말로 더욱 그렇다. 카메오처럼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은 캐릭터가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며 앞으로의 전개를 예고하는 연출도 나쁘지 않다.


영화 대사 중 “운명은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러줄 때만 운명이 될 수 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우연이 다가왔을 때 수동적이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운명으로 이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운명도 선택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일지도.


오랜만에 유쾌하게 몰입했던 영화다. 요즘은 책도 두 번 읽고, 영화도 좋으면 다시 보는데, 다시 보니 스쳐 지나갔던 대사들이 더 맛깔나게 다가온다. 이 영화도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나 인생관도 자연스럽게 스며 있어 좋았다. 여주인공 대사 중 < 좋은 게 있다가 없는 것과 처음부터 없는 것 중 뭐가 나을 까?>라는 질문은 아직도 고민을 하게 한다. 그래도 있다가 없어지면 있을 때의 소중함이라도 알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캔맥주도 생각나고, 로맨스 영화도 달달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봄은 봄인가 보다. 이제 막 시작인데 큰일이다. 캔맥주 한 캔이 아니라 한 박스를 쟁여둬야 하나?


가끔은 밋밋한 일상에 이런 작고 소소한 이벤트가 있어 그래도 톡 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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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할 통계적 확률 #올리버 #해들리 #캔맥주 #영화제목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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