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를 마치고

작은딸 결혼을 앞두고 양가 상견례를 했다.

by 따오기


작은딸 결혼을 앞두고 양가 상견례를 했다. 결혼식도 큰일이지만, 막상 사돈과 처음 대면하는 상견례는 매번 커다란 숙제와도 같다. 사돈 댁 이야기를 대강 들었어도 실제 뵐 분들을 만나는 자리이니 긴장과 걱정이 앞섰다. 이번에도 시간이 다가올수록 자꾸만 마음이 떨렸다.


매일 출근하는 사람인데도 무슨 옷을 입고 갈지는 늘 고민이다. 얌전해야 하고, 격식에 맞아야 하며, 너무 과하지도 누추하지도 않아야 하니 참 어렵다. 직장생활을 하니 옷 고민이 없을 것 같아도, 평소 정장을 즐겨 입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큰일이 있을 때마다 또 걱정이다. 고민 끝에 가장 무난한 오트밀 코트와 기본 스커트를 입었다. 따뜻하고 편한 굽 낮은 부츠 대신 간만에 구두도 신었다. 가방도 매일 들고 다니는 스포티한 백은 내려놓고, 차림에 어울리는 얌전한 것으로 들었다. 남편은 양복이 지정복이라 고민이 적었지만, 외투를 두고 갈등하기에 단정한 것으로 권해주었다.


강남에서 만나기로 해서 차가 밀릴까 봐 평소보다 훨씬 일찍 출발했는데도 올림픽대로는 어김없이 밀렸고, 호텔 입구에서는 차들이 주차장처럼 멈춰 서 있었다. 다행히 사돈 댁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라 마음이 놓였다. 게다가 큰딸 부부가 약속 장소에 제일 먼저 도착해 있다고 연락이 와 어찌나 고맙던지. 시대가 변해도 딸 가진 입장에선 왠지 먼저 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늦으면 실례가 될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번에는 큰사위와 손주까지 함께해 주니 은근히 든든했다.


사돈 내외분은 외양부터 근사하고 분위기가 있어 보였다. 스타일에서 그간의 삶이 보인달까. 나보다 열 살, 네 살 위이신데 우리보다 훨씬 우아한 퇴직자의 모습이어서 겉모습만으로도 격이 다르게 느껴졌다. 특히 이번 상견례는 우리 집 손주와 사돈 댁 손주가 함께 있어 아기들 잔치처럼 화기애애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헤어지면서 안사돈께서 "이런 상견례라면 몇 번 더 하겠다"라고 말씀해 주셔서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특별히 결혼할 딸과 예비 사위가 '저희 결혼해요'라는 자료를 PPT로 만들어 컬러로 인쇄해 왔다. 결혼 이야기 이모저모를 브리핑하듯 상견례를 진행하니 무척 색달랐다. 양가 어른들이 대화하기 어려울까 봐 첫 만남 이야기부터 가족 소개, 결혼 진행 상황과 향후 계획 등을 하나하나 보고해 주는데 어찌나 시원하고 재미있던지 모두 새로운 방식에 박수를 보냈다. 같은 회사 사내 커플에 동갑내기라 그런지 손발이 척척 맞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안사돈께서는 나보다 더 감동하셨는지, 아이들에게 이 자료를 친구들에게 자랑해도 되느냐며 저작권자의 동의(?)까지 구하셨다.


척척박사 같은 바깥사돈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덕분에 분위기는 한층 유해졌고, 두 집안 모두 인상이 좋아 큰 무리 없이 자리를 마무리했다. 2시간쯤 지나 집중력이 떨어진 아기들이 식장을 먼저 나가고, 양가 부모와 신랑 신부만 남아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랑 댁은 주로 신랑의 성장 과정을 들려주셨고, 우리는 이야기를 경청하며 맞장구쳐 드렸다. 이상하게 우리 딸 칭찬은 안 하고 사위 칭찬만 하게 됐다. 실수한 건 없는 것 같아 안심했는데, 뒤늦게 집에 온 딸이 서운했는지 눈물을 보인다. 시부모님은 아들 칭찬을 많이 하시는데, 엄마 아빠는 왜 자기 칭찬을 안 해주느냐는 것이었다. 남들 앞에서 내 자식 자랑하기가 민망해 자제한 것인데 딸은 서운했던 모양이다. 딸이 공부하고 직장 생활하느라 살림은 잘 모르니 안사돈께서 잘 가르쳐 달라는 고지식한 부탁만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평소에도 칭찬에 인색했던 것 같.앞으로는 좀 더 보듬어 주리라 다짐한 상견례다.


부모 마음, 특히 딸을 둔 부모 마음은 늘 이렇게 저자세여야 하는 건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인다. 게다가 우리보다 훨씬 경제력이 좋아 많은 지원을 해주시니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스스로 부족한 입장이 된 것 같아 편치만은 않았다.


별 탈 없이 상견례를 마치고 오는 길, 집 근처 카페에 들렀다. 남편도 긴장했는지 커피 한잔하자고 했다. 분명 중식 코스를 먹었는데 갑자기 허기가 돌아 빵도 주문했다. 긴장하며 먹느라 음식 맛을 느낄 겨를도 없었나 보다. 그래도 음식이 거부감 없이 넘어간 걸 보니 맛집은 맛집이었던 것 같다.


2년 전 큰딸 상견례 때는 이번보다 더 못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안사돈이 바로 앞자리에 앉아 무척 신경 쓰였는데, 이번엔 12명이 큰 원탁에 둘러앉아 사돈과 거리가 있다 보니 식사가 한결 편했다.

상견례는 이토록 어렵고 조심스러운 자리다. 이제 결혼식 전에 한복 맞출 때 뵙고 당일에 만나면 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다. 어제의 여파로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다.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꽤 긴장했던 모양이다.


자식을 결혼시키고 새로운 집안과 인연을 맺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도 큰일이다. 우리뿐 아니라 사돈 댁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래도 사윗감으로부터 "세*이 부모님을 만나 뵈니 마음이 놓인다"라는 말을 전해 들으니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이제 두 사람이 잘 준비해서 식을 치르고, 그저 행복하게 잘 살아주기만을 바란다.


나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상견례를 기억하고 싶어 기록으로 남겨둔다. 훗날 "그랬었지" 하고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상견례 #두 번째 이 자 마지막 상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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