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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오기 May 19. 2023

빨리빨리 병!

요가는 내 몸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요가를 시작한 지, 딱 세 달 됐다.

과거 요가를 했던 경험을 있지만 이번에 다시 시작한 요가는 좀 남다르다.


몸이 그 새 많이 경직되어 있다는 것

체중이 불어 있다는 것

뭔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왼팔이 유난히 안 움직여진다는 것

지독히도 몸치라는 걸 다시 인식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오늘 느꼈지만 난 뭐든 '빨리빨리 병'에 걸려 있다는 걸 알았다.


 선생님이 동작을 천천히 하라고 그렇게 강조하시는데

누가 뒤따라 오기라도 듯 제일 먼저 동작을 끝내고 있었다.

내 딴엔 숫자도 세면서 천천히 한다고 하는데 남들은 아직 반 정도 진행되고 있달까?

대충대충, 설렁설렁, 빨리빨리,

근육을 풀어주고 호흡을 하는데 정성을 들이는 게 아니라

동작만 흉내 내 듯 따라 하고 있다는 걸 알고야 말았다.


뭐든 섬세함이 필요한 데 평생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대충 해서 될 일이 있고

대충 하면 안 되는 일이 있는데...


선생님께서 '요가는 내 몸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동작을 하며 내 몸을 반응을 보라고 하셨는데

겨우 세 달이 지난 오늘에야 내 특성을 제대로 알고 절감한다.

어쩌면 이렇게 몸치니.

어쩌면 이렇게 급하니

요가는 몇 배속으로 시청할 수 있는 영상이 아닌데...


원래 요가하는 동안 호흡에 집중하고 동작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꾸 생각이 딴 데로 왔다 갔다 하기까지 한다.

생각이 딴 곳으로 가면 다시 '생각'을 외치고 '호흡'에 집중하라고까지 했는데

오늘은 난데없이 학창 시절 체육시간이 오버랩되기까지 했다.


 실은 오늘 요가 자세를 하다가 남들은 다 앞으로 누웠는데

나만 뒤로 누워서 고요하던 요가원이 잠시 웃음바다가 됐었다.

그 순간 얼마나 민망했는지 문득 까맣게 잊고 있던 체육시간이 떠오른 거였다.

어쩜 내 기억 속에 어릴 적 체육시간에 대한 트라우마가 살짝 있었던 가 보다.


머리가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은데 유난히 동작이 잘 안 외워지고

몸이 맘처럼 움직여지질 않는다.

의욕만 앞서고 몸이 따라주지 않는달까?

학창 시절에도 누구보다 열심히는 하는데 영 속도도 모양(폼)도 나오지 않아

툭하면 선생님과 친구들이 내 동작만 보면 웃었던 기억이 있다.

오죽하면 누구네 편으로도 못 가는 깍두기가 내 담당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또 요가원엘 갈 거다.

민망함은 잠시.

남들은 웃거나 말거나.

동작은 가능하면 천천히


제발 천천히, 집중하면서

동작 하나하나를 만들어 보자.

내 속에 숨어 있는 나를 일깨워 보자.

한 시간 동안 나를 제대로 만나는 시간을 만들자.


요가는 역시 운동 그 이상의 그 무언가를 준다.

그래서 난 요가를 사랑한다.

비록 힘이 들 때면 돈 내고 시간 내서 벌서는 기분이 들 때도 종종 있지만

요가를 하러 가는 마음만은 진짜다.


한 시간의 명상!

한 시간 동안 운동하며 나를 객관적으로 만나는 시간.

요가를 하고 나오는 시간은 언제나 뿌듯하다.

비록 일주일에 이삼일 밖엔 못 하지만

속도보다 요가를 가는 진짜 목적을 잊지 말자.

빨리 끝내는 게 목적은 아니었으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 글을 써 놓은 지 보름은 족히 지난 것 같네요.

글을 써 놓고 정리할 새도 없을 만큼 바빴던 오월입니다.


어젠  요가 시간에 누군가 호흡을 너무 코 골듯하길래 이상해서 주변을 살펴보니

회원이  몸을 이완시키다가 잠이 곤히 든 거였더라고요.

코 고는 소리가 얼마나 일정하던지 호흡하는 줄 알았네요. 코 골기도 호흡이긴 하지만요.


그런데 아무도 뭐라 하지 잃고

요가 강사님은 회원을 깨우지 않고 담요를 덮어주더라고요.

얼마나 따뜻한 선생님이 던지요.


난생처음 1시간 수업 중 40분을 코 고는 소리와 함께 요가를 했답니다.

수업 후반부에 그 소리는 멈췄고

그 회원의 내적 갈등이나 민망함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어요.

결국 마지막까지 조용히 함께 한 재밌고 민망하고 따뜻한 지난밤이었답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감정교류가 된 요가시간이었습니다. 그런 걸 무언의 교류라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인간성 좋고, 정신 수련이 먼저 되신 요가 선생님을 만나러 꾸준히 요가원에 갈 예정입니다.


덕분에 나의 '빨리빨리 병'을 요가를 하며

조금 늦춰보려 합니다.

'한 동작 당 4'분을 유지해 보라는 선생님 말씀을 명심하려 합니다.


사과향을 닮은 산사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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