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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오기 May 30. 2024

또 출장 전야

하필이면 출산한 큰 애가 산후조리원에서 나오는 날에 나는 출장을 간다

또 출장 전야다.

아니, 1시가 넘었으니 출장 당일이구나.


출장 준비 하느라 늦게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내일 산후조리원에서 나오는 큰 애에게 줄 미역국을  냄비 끓이고

그이가 운동 나가자고 해서 겨우 학교 운동장 몇 바퀴 돌고

내일 입을 옷 다림질 몇 개 하고

출장 가방 싸다가 갑자기 작년에 몇 푼 받은 '기타 소득' 종소세 신고해야 한다고 해서 뒤늦게

손텍스 왔다 갔다 하는데 1시가 넘어서 '서비스 불가 시간'이란다.

어쩔 수 없이 중단하고 노트북을 덮으려다가, 어느 작가님이 '출장전야'글에 라이킷을 눌러 주어

확인하다가 주저앉았다.

또 '출장전야'구나 싶어서


내가 출장 잦은 사람도 아니고, 어쩌다 1년에 서너 번 출장을 갈까 말까 하는데.

이상하게 집안에 큰 일과 꼭 중복이 된다.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작년 이 집으로 이사 오던 날.

이번엔 큰 애에게 내가 가장 필요한 산후조리원 나오는 날!

사실 다음 주부터 정부지원 베이비시터가 오기로 해서 다음 주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데

내일과 모레 도와줘야 하는 상황에 내가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사위는 아파트 계약 일)

게다가 정말 중요한 출장이라 미룰 수도 취소할 수도 없는 업무다.

내일 여수엑스포역까지 가야 하는 중차대한 업무 일정이라서...


일단 어떻게든 가긴 갈 것이다.

아직 준비가 백퍼 되지 않았지만 떠나긴 떠날 것이다.

여수행 기차 안에서 또 준비해 보는 거지 뭐.

매일 하던 일이니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거지 뭐' 싶긴 하지만

그래도 '잘해야 할 텐데'하는 간절함이 먼저라 걱정이 되긴 한다.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그나저나 난 중요한 일만 앞 두면 딴짓이 하고 싶으니 큰 일이다.

아무래도 중병인 것 같다. 자료를 더 봐야 하는데 이럴 때면 자꾸 끄적이고 싶어 지니~~



그이와 퇴근 후 합작으로 끓인 산모 미역국 냄새가 아직도 집안에 진동한다.

하나는 엄마 스타일. 다른 한 냄비는 아빠 스타일~

내일 아침 출장길에 건네주고 가려면 서둘러야겠다.


부디 우리가 끓인 미역국을 큰 애가 잘 먹고 몸도 잘 풀고

아기 모유도 잘 먹이길 소망해 본다.


아쉽지만 딸과 아기와의 만남은 토요일로 미뤄 둔다.

손주가 태어 난 지 보름이 지났는데 유리창 너머로 두 번 보고 아직도 품에 안아보지도 못했다.

산후조리원과 연동된 캠으로 앱에서 실시간 손주를 만난 게 전부다.

큰 애가 아기를 낳으니 새로운 육아 시스템을 하나 둘 접하게 된다.

삼십 년 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육아 환경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놀라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지...


'조금만 기다려라, 외할머니가 출장 갔다 올게'.

아직 여수 특산물을 사 와도 못 먹을 테니 건강히 잘 다녀오마.

이왕이면 일도 잘 마치고 올게~

머피의 법칙이 아니라 바쁜 할미가 좋은 일 있으려고 일이 겹칠 정도로 바쁜가 보다 생각할게.


투정인지 푸념인지 자랑질인지 출장전야가 깊어간다.

이제 잠시 꿈나라로 순간이동 해야겠다.


뿅~

내일 발표 연습은 꿈나라에서~~~




어제 마신 아카시아 디저트와 아메리카노~

서울역으로 향하는 길에 딸애 집에 미역국과 찬을 전달하고 왔다.

예전 우리네 엄마 맘이 이랬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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