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에 대해서

아이를 피자에 비유한다면.

by 민들레

"피자"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한다.

피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피자에서 중요한 건 빵의 두께도 아니고 심지어 빵의 종류도 아니고 어느 토핑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피자라고 부르는가?

식빵 위에 간단히 올려서 만드는 피자부터 화덕에 굽는 피자, 천연치즈가 잔뜩 들어간 치즈 듬뿍 피자, 페퍼로니 피자, 콤비네이션 피자 등등 그 외에도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피자들이 무수히 존재할 것이다.

어떤 이름이라도 그저 피자는 피자일 뿐이다.

어느 피자는 빵의 두께에 포커스를 둘 것이고, 어떤 피자는 올리는 재료에, 어떤 사람은 굽는 시간이나 방법에 대해 중요성을 설파할 것이다.

그 어느 것도 결국 다 피자다.

토핑 없이 치즈만 잔뜩 들어간 피자도 맛나고 여러 가지 토핑을 기본으로 해서 내가 좋아하는 추가 토핑까지 이것저것 잔뜩 올린 피자도 맛이 있다. 그 어느 피자가 더 뛰어나거나 덜하지 않다. 모든 피자는 그저 피자일 뿐이다. 하여 피자의 중요한 요소는 따로 있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재료로, 어떤 방식으로 만들든 만드는 사람이 피자라고 명명한다면 그것이 피자가 되는 것이다.


시골에서 초등고학년 아이들을 키우면서 저 멀리 아파트 단지의 또래 아이들 소식을 듣다 보면 자주 조바심이 마음속에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기본적으로 학원 몇 개씩에 특강까지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여기저기 도서관 행사 찾아다니고 무료골프수업 다니고 배드민턴 다니고 우리 아이들은 그저 잘 먹고 잘 운동하고 열심히 노는 것만 같아서 불안해진다. 저 멀리 들려오는 소식들이 '정도'인 것 같아서 살짝살짝 바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아침 우산을 가지고 학교에 등교하던 아이가 급히 되돌아와서 큰일이 났다고 빨리 나와보라고 하여 따라나선 아스팔트 마당에 어디선가 나타난 사금들이 반짝반짝 웅덩이를 이루어 있는 걸 보면서 마음이 평안해졌다.

젖은 물 사이로 영롱하게 빛나는 웅덩이를 놓치지 않고 엄마에게 공유해 주고 오며 가며 자기 우산을 나에게 씌워주는 아이를 보면서 땅을 보는 아이면 됐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아이면 됐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토핑이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아이를 키우는 환경이 그럴싸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어느 피자도 피자가 될 수 있듯이 이 아이도 이 아이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든다.

화덕에서 굽든 에어프라이어에서 굽든 아이는 자기의 온도대로 구워질 것이고 자기의 맛을 내면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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