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들리는 선택, 대안으로 선택당하는 건 싫다.

주님 오신 날. 새롭게 자원하는 마음을 주소서.

by 민들레

아이들이 엄마를 따라 자모실에서 예배를 드리던 시간은 길지 못했다. 코로나가 왔고 그 시기에 우리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새롭게 예배드릴 장소를 찾으러 가는 것조차 민폐가 될 상황이었다. 낯선 사람들의 방문을 꺼리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기존에 예배드리는 인원들도 시간을 달리하여 체크하고 오고 가는 입장에 선뜻 교회에 발걸음을 하지 못했다. 그것이 3년이나 흘렀고 그 사이 아이들이 쑥 자라 버렸다.

이제 다시 예배에 집중하여 다니고 싶어도 아이들은 코로나 때처럼 집에서 놀길 원하지 예배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집안에 아직 교회에 가지 않는 아빠도 있으므로 아이들의 선택지는 아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엄마 따라 교회 가는 것보다는 아빠 따라 집에 있는 것으로.

몇 번 그렇게 선택하다가 오늘은 예배를 가지 않으려면 그 시간 동안 공부를 하고 있으라고 했다.

아이는 2번 고민 안 하고 예배에 따라나섰다.

과연 그렇게 공부하기 싫어서 선택하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의 자리에 나가는 것이 중요할까?

예배에 가는 마음이 정말 애들 말로 쪼들리는 선택일 때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이렇게 찝찝한데 하나님은 어떠실지 생각이 든다.

하긴 아이들은 아직 하나님을 모르니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조금은 안다고 하는 나조차 하나님을 대안으로 선택할 때가 더 많음에 반성한다.

하나님!

작은 것이라도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예배에 가는 일에서도 봉사의 자리에서도 억지로 하지 않고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성탄을 맞아 다시금 하나님이 제 안에, 아이들에게, 모든 사람들의 힘든 마음속에 찾아와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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