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땅콩은 살아남았다.
땅콩은 시아버님이 좋아하셔서 귀촌한 첫해부터 매해 심어온 작물이다. 첫해엔 풍년인지 모르고 지나고 보니 풍년이었고 이후 평작은 꾸준히 됐는데 올해는 처참한 수확률을 기록한다.
아버님께 드리긴커녕 내년에 심을 씨땅콩도 다 사야 할 판.
한뿌리에 2~3알 달린 땅콩을 수확하며 그냥 다 엎어 버리는 게 나을까.... 몇 알이라도 건지자고 수확 작업을 하는게 맞을까 계속 고민하다가 올해 땅콩의 작황은 살아남은 걸로 하기로 결정했다.
족제비에 두더지 그리고 새들까지 다 먹어서 밭에 빈 땅콩 껍질은 사방팔방이다. 그 많은 천적들에게서 스스로 살아남은 땅콩들에게 살아남았구나 땅콩. 그렇게 생각하니 몇 알씩이라도 살아있는 용감한 땅콩은 수확하는 게 맞다는 결론이 났다.
하기사 땅콩의 입장에선 두더지든 사람이든 먹히는 건 피차일반일 테니 말이다.
올해 추수한 땅콩은 꽉 잘 담은 트레이 하나 정도 분량인데 그중 1/3은 친정엄마가 삶아 드신다고 가져가셨 이제 나머지는 추석에 아버님 오시면 챙겨드릴 예정이다.
올해는 모든 땅콩을 다 소진한다. 내년엔 씨땅콩부터 다시 사서 심는 걸로 결정했다.
살아남은 땅콩은 생명력도 강할 테니 좋은 땅콩 맛나게 먹고 내년 새 농사는 다시 시작해 보는 것으로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