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떻게? 나니깐 하는 거야

당한 사람만 있다.

by 민들레

다정다감한 엄마는 아니었다.

대부분 전업주부이던시절 일을 하셨고 앞서 나가긴 했지만 시련도 빨리 맞이했다.

사업이 부도나고 가정은 위태위태해졌고, 어찌어찌 유지하며 지금껏 잘 지내왔다지만 누군가의 몽글몽글한 어린 시절을 엿보게 될 때마다 늘 아쉬웠다. 나의 어린 시절이 따뜻한 색감이 아니었으므로.


친정 근처에 이사 와서 아이들을 키우는데 엄마가 수시로 드나드셨다.

사람이 집에 있으면 문을 잠그지 않는 터라 갑자기 문소리가 나면 엄마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얘. 기차 화통 삶아 먹었니? 밖에서 니 목소리만 들려 좀 차분히 이야기해라"


그런 류의 지적을 몇 번 듣다가 어느 날 울컥 억울함이 밀려들었다.


"엄마는? 엄마는 나한테 따뜻하게 말했어?"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지만 나의 표정으로 아마 읽히고도 남았을 것이다.

(엄마가 그렇게 말할 자격이 되시나요?)라고 묻는 뉘앙스를.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 그렇게 언성 높일 일의 빈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 마음에 여유 공간이 생기니 그때 그 감정들이 생각나고 엄마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엄마가 나에게 잘해서 그런 조언을 하는 게 아니다.

엄마가 당사자니까.

자신은 그렇지 못했지만 너는 실패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임을 이제는 안다.


흔히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듣는다.

하지만 에디슨의 일화처럼 99번 실패해 본 사람도 성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 실패했다는 말은 저렇게 하면 성공한다와 상응하는 말이 되므로.


나는 옆으로 걷지만 너는 바르게 걷길 바라는 개의 엄마처럼.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를 생각하고, 엄마의 딸, 그 딸의 딸을 생각해 보면 모두 아프다.

당한 사람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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