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효도는 그저 존재하는 것
나는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신랑은 나와 나이 차이가 있는 편이라 마흔을 넘긴 조금 더 늦은 결혼이었다.
시댁에서 막둥이에 늦둥이인 신랑의 결혼이 늦어지니 아버님은 애가 타셨을게다.
본가는 전라도이고 신랑은 경기도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누군가 소개를 해서 연결하기에도 장거리 연애가 잘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버님의 팔순이 결혼 2달 전에 있어서 당시 예비신랑과 내려갔을 때 아버님께서 "네가 여기와 준 것만으로 제일 큰 선물이다"하셨다.
아마 진심이셨을게다.
주변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셔서 결혼 후 아이들도 바로 생겼는데 쌍둥이를 가졌다고 했을 때도, 성별이 궁금하지 않으시냐고 물었을 때도 "그러냐... 축하한다", " 남자 아니면 여자겠지"하시던 분이시니 그 팔순 때 제일 큰 선물이라는 말은 정말 너무나 마음에서 우러나오신 말이었음이 더욱더 느껴졌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 5학년 12살이 되었다. 아버님은 92세가 되셨고 매일 저녁 8시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한다.
매일 하는 전화라고 해도 저녁메뉴를 서로 확인하고 공부 잘하라는 격려 외에 그다지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지 않는 단순한 통화지만 그 통화를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그래 할아버지께는 너희들의 존재 자체가 축복이시겠지.
아흔 넘은 나이에 손자들과 영상통화하면서 보청기를 이리저리 조정하며 서로의 저녁식사를 묻고 하루의 일과를 묻는 단순한 일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에 그 별거 아닌 통화가 새삼스럽고 순간순간 별것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래 아이들이 있는 것 만으로 축복인데 그걸 너무 자주 망각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투거나. 주전자에서 물을 따르다가 쏟거나, 서로 가운데서 자겠다고 밤마다 싸울 때도. 아이들은 존재함으로 귀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의 영상통화를 엿들으며 깨닫는다.
오늘 아버님은 꼬막과 백김치에 식사를 하셨다고 했다.
아이들은 몇 달 전 사두고 못 먹은 컵에 담긴 로제떡볶이를 먹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아버님은 로제떡볶이를 알아들으시지 못하고 컵떡볶이로 시작된 대화는 아버님의 첫 라면 시식이 군대 제대할 때였다고 그전엔 라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역사를 배우는 것까지 진행되었다.
엿듣던 나는 명절에 차례 지내러 올라오시면 로제컵떡볶이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드시라고 해 볼까 하다가 어머님 생각에 얼른 마음을 접는다. 하던 대로 떡국을 끓이자 싶어서.
내일 저녁에도 영상통화는 계속될 것이다. 언제가 끝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매일매일 아이들에게도 이 통화가 할아버지와의 추억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나는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셔서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없는데 그러고 보면 아버님이 살아 계셔 주는 것만으로도 그 또한 복이다.
그래 세상에 존재함으로도 그 자체가 복이 된다.
누군가에게 나도 존재함으로 복이라고 그렇게 들을 수 있게 살아야지 하고 마음속 다짐을 했다.